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문학] 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2006.12.24 00:13

- 책이름 : 유모아 극장
- 글쓴이 : 엔도 슈사쿠
- 옮긴이 : 김석중
- 펴낸곳 : 서커스(2006.11.4.)
- 책값 : 8800원


 지난달 끝무렵, 서울 마포구 공덕동을 찾아간 일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퍽 예전부터 알고 지낸 분을 만나 낮밥을 얻어먹었습니다. 날이 제법 쌀쌀해 술 한 잔도 곁들였습니다. 술 한 잔 걸치니 몸이 좀 녹더군요. 자전거를 타고 오며 길을 헤매느라 찬바람을 많이 맞았는데, 한결 나았습니다.


.. “이봐. 이봐. 노상방뇨는 일본의 법률에 벌금형이라는 것을 모르나? 파출소에 가자.” 경관의 말투를 흉내내 큰소리로 꾸짖었다.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상대는 몸을 이쪽으로 틀면서 돌았다. 그 순간 알았던 것이다. 범인은 글쎄, 내가 가자고 했던 그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젊은 경관이었다. “이, 이, 이거야…… 죄송…… 하게 됐습니다.” 그는 바지의 단추를 채우는 것조차 잊고 송구스러워 어쩔 줄을 몰라했다. 분명 그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삐질삐질 솟아나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순찰을 돌다가, 그만, 참을 수가 없게 되어서…….” “아니, 괜찮아요.” 나는 서글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  〈92쪽〉


 공덕동에서 만난 사람은 한때 ㅎ신문에서 판매부 일을 했고, 어느 날 마음먹은 일이 있어서 신문사를 그만두고 ㅇ이라는 출판사에 들어가 편집부서 한 곳에서 일을 맡았습니다. 때때로 헌책방에서 마주치기도 해서 헌책방 가까이에 있는 맥주집에서 술잔을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안정된 돈-이름을 얻을 수 있는 ㅇ출판사 자리를 떨쳐나오고 1인출판사를 차립니다.


.. “앗, 회충이다. 조심해.” “뭐라고, 회충?” “그래. 장 속에서 자네 여동생의 영양을 빨아먹고 있는 회충이다. 자네는 어떻게 여동생에게 구충제도 먹이지 않은 거야?” “이봐, 지금 그런 말 하고 있을 겨를이 없어. 메스로 죽이는 거야. 이 회충을.” 가까이 다가온 회충을 메스로 찔렀다. 하얀 액체가 주위로 흘러나왔다. 회충이 날카로운 입을 벌리고 온몸을 뒤틀며 괴로워했다 ..  〈29쪽〉


 1인출판사를 연 분은 사무실을 따로 낼 돈까지는 없기에, 당신이 아는 제법 큰 출판사 사무실 한켠에 책상 하나 빌려서 전화 한 대 놓고 일을 합니다. 먹고살기 어려운 세상이라고, 작은 출판사는 더욱이 살아남기 어렵다고 하는 판인데, 참 대단한 용기로 일을 벌였습니다.


.. 그때, 나와 쏙 빼닮은 얼굴의 남자가 내 쪽을 향해 빙긋이 웃었다. 나와 똑같은 얼굴의 뺨에는 붉은 피가 한 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와 똑같은 얼굴이, 나를 조소하듯이 빙긋이 웃었다. 저것은 나의 분신이었다. 나의 분신이, 매일 전서구처럼 직장을 통근하고, 점심시간에는 카레라이스를 먹고, 그리고 한 달에 두 번 아내한테 들키지 않게 가슴을 조마조마하며 바람을 피우고 있는 나를 비웃고 있었다 ..  〈167∼168쪽〉


 소설책을 오랜만에 펼쳤습니다. 소설을 쓴 ‘엔도 슈사쿠’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면서, 일본 소설은 여태 몇 권 읽지 않았으나, 당신이 처음 일을 벌여서(출판사 차리기) 손수 우리 말로 옮기기까지 한 책(첫 번역책)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런데 웬걸. 생각 밖으로 재미를 느낍니다. 금세 읽히는군요. 소설이란 이런 거였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하면서, 이 책 하나 엮어내려고 땀을 흘렸을 분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가 제대로 몰라서 그렇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큼직한 책방에서도 묻히는 책이 얼마나 많을까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져 가는 책은 얼마나 많으며, 딱 한 번이라도 읽는이 손에 쥐어지지 못하는 책, 평론가들 칭찬이든 깎아내림이든 비판이든 추켜세움이든 한 번이라도 들어 보지 못하고 역사에 묻히는 책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예전에는 ‘판매국 아저씨’라 했다가(그때 그분 나이는 서른도 안 되었을 텐데), ‘편집장 아저씨’라 바꾸었다가, 이제는 ‘사장 아저씨’로 바꾸어 부르는 선배가 어느 날 전화를 걸어 옵니다(그러고 보니 아직 장가도 안 갔는데 마구 ‘아저씨’라고 했네요).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으니 참 힘들다고. 그래, 참 힘든 세상입니다. 좋은 책을 내도 좋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이 적은 세상, 돈을 처바른 책을 내도 돈처바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 그런 세상입니다. 그래서 엔도 슈사쿠라는 분은 《유모아 극장》이라는 이야기책을 이런 세상에 내놓았을까요. (4339.12.23.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