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 책꽂이
일본 오사카로 배움마실을 다녀오고 부산에서 내립니다. 기차를 타고 순천을 거쳐 고흥으로 돌아갈는지,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까지 네 시간을 내처 달릴는지 어림하다가 시외버스를 타기로 합니다. 시외버스 일꾼은 언제나 그러했다는 듯이 텔레비전을 켭니다. 이 시외버스는 우리 집 아이들이 함께 탔는데, 버스 일꾼은 ‘아이가 탔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아무 방송이나 틀어 놓습니다. 곁님은 이를 보고 얼른 앞으로 걸어가서 버스지기님한테 말을 여쭙니다. 아이들이 타서 저 방송에서 나오는 얘기나 소리가 안 좋으니 소리를 끄거나 화면을 꺼 주십사 하고. 버스지기님은 처음에는 안 끄겠다고 하셨는데 조금 뒤에 갑자기 꺼 줍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때 불쑥 한 가지 생각이 들어요. 시외버스에 놓은 텔레비전을 몽땅 치우고, 그 자리에 ‘책꽂이’를 두면 좋겠구나 싶은. 시외버스에는 아이를 이끄는 어버이가 으레 타곤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타고, 젊은이라든지 군인이라든지 길손이라든지 나라밖 마실벗이 타기도 해요. 이주노동자도 타고 푸름이나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도 타지요. 시골지기도 타고 여느 회사원이나 공무원도 탑니다. 이렇게 온갖 자리 갖은 사람이 드나드는 시외버스이니, 그냥그냥 맞춰서 갖추는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가 아닌, 책을 잘 알거나 사랑하는 책지기가 찬찬히 가려서 뽑은 책을 두면 좋겠구나 싶어요. 그림책, 어린이책, 시집, 만화책, 사진책, 문학책, 인문책, 과학책, 때로는 국어사전까지도. 시외버스 텔레비전 크기를 헤아리면 적어도 예순 권쯤은 꽂을 만한 책꽂이를 둘 만해요. 이렇게 시외버스에 책꽂이를 둔다면, 사람들 눈길이나 손길이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요? 멍하니 화면을 좇는 눈길이 아닌, 스스로 생각을 살찌우는 길로 시나브로 바뀔 만하지 않을까요? 아마 한동안 책을 아무도 안 빌려 읽을는지 모르고, 때로는 책을 훔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래도 ‘시외버스 책꽂이’를 문화부와 지자체와 버스회사와 출판사가 서로 손을 잡고서 알차고 알뜰히 건사하고 다룰 수 있다면, 버스지기님도 일을 쉬면서 책을 틈틈이 펼 수 있다면, 우리 삶자리는 차근차근 새로워질 만하지 싶습니다. 2018.7.26.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