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192. 손목시계



  우리 할아버지는 밥을 따로 넣지 않고 흔들어서 움직이는 시계를 차고 다니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이 시계를 물려받았지만, 흔드는 바늘시계는 어린이한테 매우 묵직해서 손목에 차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즈음 1980년대 첫무렵에 수은전지로 움직이는 가벼운 전자시계가 널리 퍼졌고, 아이들은 이 시계를 얻고 싶어서 저마다 어버이를 졸랐다. 나도 전자시계를 얻었고, 어른들은 먼 마실길을 다녀오면 아이들한테 으레 전자시계를 선물하곤 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선물받은 시계가 자랑스럽고 좋았는데, 나는 시계를 찰 적마다 손목이 마치 끊어지는 듯 아팠다. 손목에 헐렁하도록 시계를 차더라도 피가 안 흐른다고 느끼면서 저릿저릿했다. 어른들은 왜 이러한지 알지 못했고, 속내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내 몸은 손목시계를 비롯해서 팔찌나 목걸이 모두 싫어했고, 얼추 열한두 살 언저리이지 싶은데, 그때부터 내 몸을 시계로 삼으며 살았다. 손목시계를 찰 수 없는 몸이니, 나 스스로 마음으로 몸에 말을 걸어서, 새벽 몇 시 몇 분에 일어나고, 어디로 갈 적에도 스스로 때를 어림하도록 몸한테 맡겼다. 열한두 살부터 마흔다섯 언저리까지 시계 없이 새벽에 일어나고픈 때에 마음대로 일어난다. 새벽 네 시이든 밤 세 시이든 몸이 잘 맞추어서 움직인다. 이러면서 살림을 돌아본다. 우리는 손목시계나 울림시계가 있어야 아침이나 새벽에 잘 일어나지는 않으리라. 옛사람은 시계 없이 바람, 볕, 물, 소리, 풀, 새, 풀벌레, 별, 하늘 들을 살펴서 때를 읽었다. 오늘사람도 누구나 이 여러 숲님을 헤아려 때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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