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182. 누리그물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을 두지 않는다. 여느 집에 가 보면 다들 텔레비전을 모시며 산다. 그냥 두지도 않고 모시기 일쑤이다. 가만히 보라. 마루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떡하니 텔레비전을 모시지 않는가? 더구나 온집사람이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울 자리에 텔레비전을 척 모시면서 서로 얼굴을 안 보는 얼거리 아닌가? 오늘날 삶터를 돌아보면 집집마다 ‘1. 텔레비전 모시기 2. 컴퓨터 섬기기 3. 손전화 붙잡기’를 하는구나 싶다. 첫쨋길을 안 가도 둘쨋길에서 묶인다. 셈틀을 켜서 누리그물에 흐르는 갖가지 자잘한 정보를 머리에 넣고 만다. 우리는 이다지도 넘치는 정보를 굳이 듣거나 보아야 할까? 정치꾼 이야기나 사건·사고 이야기를 왜 자꾸 쳐다볼까? 그런데 손전화로 언제 어디에서나 누리그물을 쓸 수 있다 보니, 텔레비전이나 셈틀이 아니어도 자질구레한 정보를 끝없이 쳐다본다. 걷는 길에 나무가 있는지 봄꽃이나 가을잎이 아름다운지 못 본다. 구름이 얼마나 멋진지 바람이 얼마나 싱그러운지 못 느낀다. 누리그물은 온누리를 거미줄처럼 곱게 엮어서 튼튼히 가꿀 적에 아름답다. 그러나 누리그물은 우리 몸과 마음과 삶을 꽁꽁 사로잡아서 가두는 그물이 된다면, 빠져나올 길 없는 그물이 된다면, 우리는 갇힌 삶이자 사람이 된다. 내가 굳이 ‘인터넷’이란 영어를 안 쓰고, 이를 손질해 ‘누리그물’이란 이름을 쓰는 까닭을 밝히자면 이렇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