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53


 빈수레


  저는 어릴 적에 “빈 수레가 요란하다”로 배웠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만 동무들도 ‘요란(搖亂)’이 뭔지 몰랐습니다. 학교에서 교사한테 여쭈었지요. “선생님, ‘요란’이 뭐예요?” 요즈음하고 달리 예전에는 아이가 어른한테 뭘 여쭈면 고이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먼저 꿀밤을 먹이고서 그것도 모르냐며 나무랐습니다. 아이는 아직 모르는 것투성이일 텐데, 아이가 모른다는 생각을 아예 안 하면서 가르친 배움터였다고 할 만하지요. 엉뚱하게 꿀밤을 먹어 눈물을 찔끔 흘리고 나서야 “그것도 모르냐? ‘요란하다’는 ‘시끄럽다’는 뜻이다!” 하고 윽박지릅니다.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생각했어요. 아니 ‘요란하다’가 ‘시끄럽다’라는 뜻이면, 처음부터 ‘시끄럽다’라고 하는 말을 쓰면 되지, 왜 못 알아들을 ‘요란하다’를 써 놓고서 우리(어린이)가 못 알아들을 말을 왜 못 알아듣느냐고 따지고 때려야 하나 하고 말이지요.


  우리 삶터를 보면, 푸름이나 젊은이가 한자나 한자말을 모른다고 타박하는 지식인이 꽤 많습니다. 어느 지식인은 일본 한자말을 마구 쓰다가 영어를 잔뜩 섞습니다. 지식인이라면, 또 작가나 교수나 기자쯤 된다면, 여느 사람이 쉽게 알아듣지 못할 말을 써야 한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이제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배움터를 생각하고 배움길을 생각하며 배움벗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배우고 누구하고 배우며 어디에서 배우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왜 배우는가를 생각해야지요.


  말은 나누려고 씁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내려고 쓰는 말이 아닙니다. 곁에서 사이좋게 흐를 적에 말입니다. 위아래 아닌 나란한 어깨동무가 말입니다.


  아마 1982년부터였지 싶습니다. 저는 그무렵 담임 교사한테 눈물 찔끔 꿀밤을 먹고서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옛말을 “빈수레가 시끄럽다”로 고쳐서 쓰기로 했습니다. ‘빈수레’는 ‘빈터’처럼 붙이고, ‘시끄럽다’라는 쉬운 말을 쓰자고 생각했습니다. 누구하고나 즐거우면서 쉽고 살가이 말을 나누자고 생각했어요. 2018.4.1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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