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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오르는 길
마리안느 뒤비크 지음, 임나무 옮김 / 고래뱃속 / 2018년 4월
평점 :
어린이책 읽는 삶 183
할머니랑 멧꼭대기까지 천천히 오르는 길
― 산으로 오르는 길
마리안느 뒤비크/임나무 옮김
고래뱃속, 2018.4.30.
아이는 어린 사람입니다. “어린 사람”이 아이입니다. 아이는 어릴 뿐, 어른하고 똑같은 사람입니다. 다만, 아이는 어른하고 똑같은 사람이되 어립니다. 그래서 아이는 어른하고 똑같은 마음이 있고 느낌이 있으며 생각이 있어요. 그렇지만 어린 터라 몸으로 쓰는 힘은 어른하고 댈 수 없이 여리지요.
이야기책 《산으로 오르는 길》(마리안느 뒤비크/임나무 옮김, 고래뱃속, 2018)은 숲짐승을 빗대어 사람살림에서 어른하고 아이가 맞물리거나 어우러지는 자리를 넌지시 보여줍니다. 오래도록 높은 멧자락을 타고 오르면서 멧꼭대기에 오른 어르신 한 분이 이제 막 앳된 티를 벗으려고 하는 젊은 내기한테 ‘왜 멧길을 오르는가’를 이야기로 가르쳐 주는 줄거리를 다룹니다.
블레로 할머니는 나이가 아주 많아요.
할머니는 살면서 많은 것을 보았어요.
할머니의 부엌에는 그중 몇 가지가 있어요. (2쪽)
책을 며칠에 걸쳐 읽으면서 우리 아이들을 새삼스레 바라봅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아직 많이 어릴 무렵에는 자전거 발판을 못 굴렀습니다. 아니, 자전거 발판 구르기는커녕 자전거에 앉기조차 벅찼어요. 처음에는 자전거에 앉혀서 자전거를 슬슬 끌 적에도 무섭다 울었지만, 이렇게 울다가도 바람이 상긋상긋 얼굴하고 몸에 와닿는 느낌이 시원해서 이내 울음을 웃음으로 바꾸었습니다. 나중에는 발이 안 닿아도 발판을 굴러 보고 싶어하고, 이제는 씩씩하게 자전거를 구르면서 땀을 흘리고 바람을 마실 줄 압니다.
이야기책 《산으로 오르는 길》은 멧길을 오르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멧길도 자전거 타기하고 비슷해요. 아이들은 처음부터 멧길을 잘 오를 수 없습니다. 얼마쯤 걷다가 아주 지칩니다. 다리에 힘이 쪼옥 빠지지요. 아무리 기운을 북돋우려 해도 퍽 어린 아이더러 멧꼭대기까지 오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차근차근 기다리고, 업거나 안아 주면서 멧꼭대기에 오른다면, 이리하여 아이가 멧꼭대기에서 부는 아주 새로운 바람을 쏘여 준다면, 아이는 천천히 꿈을 마음에 심어요. 다음에는 더 기운을 내어 더 높이 올라 보겠노라고. 머잖아 어버이 손을 타지 않고서 홀로 씩씩하게 멧꼭대기까지 올라 보겠노라고.
블레로 할머니는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 금방 알아차려요.
할머니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어요.
가끔 누군가는 그것을 믿지 않지요. (15∼16쪽)
블레로 할머니는 친구를 즐겁게 하는 법을 알아요.
가끔은 노래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도 있어요.
특히나 작은 발을 가진 친구는 쉽게 지치기 마련이죠. (35∼36쪽)
이야기책에 나오는 숲짐승 볼레로 할머니는 젊은이를 다그치지 않습니다. 서두르지도 않습니다. 그저 빙긋이 웃으며 기다리면서 지켜보고, 쉬엄쉬엄 멧길을 오르면서 이것저것 함께 돌아보자고 이야기를 합니다. 숲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지, 숲이 우리 삶에서 무엇인지, 풀하고 꽃하고 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아름다운 숲에 얼마나 아름다운 새가 노래하는지, 이 아름다운 새는 얼마나 아름다운 하늘을 가로지르는지 찬찬히 이야기합니다.
몇 주가 흘러요. 룰루는 산을 더 잘 알게 되고……
산이 간직한 비밀들을 스스로 발견해요.
룰루는 산에서 내려오면 서둘러 블레로 할머니에게 달려가요.
산에서 본 것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보물들을 선물했지요. (61∼62쪽)
이야기책에 나오는 할머니는 어느 날 자리에 눕습니다. 자리에 눕고 나서 더는 멧길에 오르지 못합니다. 그동안 할머니하고 함께 멧길을 오르던 젊은이(또는 아이)는 이제 혼자서 멧길을 오릅니다. 함께 멧길을 오를 적에는 할머니를 믿고 가면 되었으니 ‘이 길이 맞는지 안 맞는지’ 더 깊이 살피지 않았습니다만, 막상 혼자 숲길을 헤치다 보니, 외려 낯설면서 힘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낯설면서 힘든 길에 예전에는 못 보거나 못 느낀 모습을 보거나 느낄 뿐 아니라, 젊은이(또는 아이) 나름대로 생각을 새로 키울 수 있습니다. 멧길을 오르고 나서 늘 할머니한테 찾아가서 새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이야기하지요.
아마 할머니도 어리거나 젊을 적에 곁에서 이끌어 주는 고운 어른이 있었겠지요. 고운 어른 곁에서 숲길을 익히고 멧길을 배우면서 삶길도 새삼스레 받아들였겠지요.
서둘러 배우지 않습니다. 높든 낮든 멧꼭대기까지 빨리 오르지 않습니다. 빨리 가르치거나 다그치듯 가르치지 않아요. 느긋하게 가르치고 차근차근 가르칩니다. 《산으로 오르는 길》은 좀 느리게 배우는 아이들한테 ‘빠르기는 대수롭지 않단다. 둘레를 살피면서 기쁘게 받아들이고 넉넉히 헤아릴 줄 알면 돼’ 같은 마음을 밝혀 주지 싶어요.
오늘은 노래하면서 걷습니다. 이튿날은 춤추면서 걷습니다. 이다음에는 목 좋은 데에서 도시락을 먹으면서 쉽니다. 이렇게 두고두고 찬찬히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어느 날 비로소 꼭대기까지 오릅니다. 차근차근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인 줄, 즐겁게 나누며 함께하는 사이인 줄, 어른하고 아이는 서로 아끼는 사이인 줄 다시금 되새깁니다. 2018.6.20.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