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고흥신문>에 실으려고 썼습니다.
<고흥신문>은 고흥에서만 나오고 읽히는 종이신문인 터라
이곳에도 이렇게 글을 걸쳐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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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에 새로운 천경자가 없는 까닭
― 군수·군의원 후보는 교육정책을 세워야
6월 13일에 고흥군수를 새로 뽑습니다. 작은 시골 지자체인 고흥군뿐 아니라 서울시장도 전남도지사도 새로 뽑습니다. 지자체마다 서로 다른 터전에 맞추어 후보자들은 저마다 뜻있게 정책을 헤아려 공약을 내놓습니다. 그렇다면 작은 시골인 고흥은, 전국에서 ‘어르신 인구(늙은 인구)’ 비율이 가장 높다는 고흥은, 그러니까 어린이·푸름이·젊은이가 가장 적다고 할 만한 고흥은, 군수 후보나 군의원·도의원 후보로 나오는 이들은 어떤 생각이나 마음일까요?
고흥군은 이제껏 선거를 치르는 동안 후보자를 불러모아 ‘정책 제안회’라든지 ‘정책 토론회’를 연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군민이 마련한 제안회나 토론회가 없었다면, 후보자 스스로 ‘정책 제안회·정책 토론회’를 연 일은 있었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없었지 싶어요. 올 2018년에 고흥군에서는 교육·문화 쪽에서 일하는 군민·단체가 모여 ‘교육정책 공론화위원회’를 꾸렸고, 앞으로는 고흥 어린이·푸름이를 헤아리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제껏 선거 후보자들은 어르신 정책만 내놓았으나, 어린이·푸름이를 비롯한 젊은이가 고흥이라는 시골을 사랑하면서 뿌리내려 살아갈 터전을 북돋우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어요.
고흥이라는 고장에서 천경자라는 분이 태어났습니다. 다만 옛날 일입니다. 더욱이 고흥군은 천경자 전시관을 마련한다고 해 놓고 이 일을 미루다가 한바탕 말썽을 피우는 바람에 천경자 그림은 이제 고흥에 없습니다. 고흥군에 돈이 없어서 천경자 전시관이나 미술관을 못 지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고흥군이 밝히기로도 500억 원이 웃도는 돈을 들여서 으리으리한 새 군청사를 지었거든요. 이밖에 고흥 곳곳에 온갖 토목공사가 끊이지 않기에, 고흥군에 돈이 없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비록 재정자립도는 전국에서 뒷꽁무니를 차지하지만 고흥군이 쓰는 돈은 무척 큽니다. 그저 이 돈을 제대로 제자리에 쓸 줄을 모를 뿐이라고 느낍니다.
돈은 있되 쓸 줄 모른다는 소리는, 고흥에서도 틀림없이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지만 이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키워서 즐겁게 배운 뒤에, 이 고장에서 아름답고 씩씩한 젊은이로 살아가는 길을 넉넉히 뒷바라지하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할 만합니다. 군수·군의원 후보가 어르신 복지를 말하는 일은 좋습니다. 그런데 고흥이라는 고장에 앞으로 젊은 사람이 모조리 사라지고 어르신만 남기를 바라는지, 아니면 고흥에 있는 어르신 곁에 어린이하고 젊은이가 함께 있어서 서로 돕고 아끼고 가르치고 배우는 오순도순한 마을살림을 바라는지를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읍내에 어르신 복지시설을 커다랗게 짓는대서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어르신한테 복지 혜택이 돌아갈까요? 마을 어르신이 반기는 손님은 언제나 오직 하나입니다. 바로 ‘도시로 나간 딸아들이 낳은 아이’입니다. 시골 어르신 손전화는 백이면 백, 손자나 손녀 사진으로 가득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시골 어르신을 헤아리는 복지 정책을 내놓으려 한다면, 시골 어르신 곁에서 한 해 내내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삶터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를 아끼는 정책을 제대로 세워서 고흥에서 젊은 인구가 떠나지 않도록 해야, 또 도시에서 젊은 인구가 고흥으로 들어오도록 해야, 비로소 어르신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면서 마을살림이나 마을문화가 자랄 만하다고 느낍니다.
기무라 아키노리라는 일본사람이 있습니다. 이녁이 살아온 이야기는 《자연재배》, 《흙의 학교》, 《기적의 사과》 같은 책으로 나왔고, 2013년에는 〈기적의 사과〉라는 영화까지 나왔습니다. 이분은 1949년에 태어났는데 스물아홉이란 나이에,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한창 새마을운동으로 농약·비료·비닐을 마구 써대던 때에 ‘농약 한 방울’ 안 쓰고서 능금밭을 일구는 길을 갔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농약 한 방울 없이 능금을 키울 수 있었을까요?
처음 아홉 해는 쓰디쓴 맛을 보았고, 마을에서 바보 소리에 손가락질을 받으며 괴로웠다는데, 마침내 목숨을 끊고 이 바보짓을 멈추어야겠다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목숨을 끊으려고 멧골에 올랐는데, 멧골에서 ‘아무도 농약이나 비료나 거름을 안 준 나무’가 아주 잘 자란 모습을 보았대요. 숲에서 스스로 싹이 터서 자란 나무에서 맺은 열매가 매우 달며 맛났다지요. 죽음길로 가려고 오른 멧골에서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던데, 숲은 어떻게 사람 손도 안 탔는’데 이렇게 나무도 열매도 튼튼할까 싶어 놀라다가, 새까만 숲흙을 보고 벼락을 맞은듯이 깨달았다고 해요. 숲흙은 언제나 새까만 빛깔에 구수한 냄새로 나무를 살찌우지만, 사람들이 약을 치고 비료를 뿌리며 비닐을 씌우는 밭은 푸석푸석한데다가 싯누랬다지요. 이때 뒤로 이녁은 ‘농약 아닌 길’로, 능금밭 흙이 숲흙처럼 새까맣고 구수하게 거듭나도록 돌보는 길을 갔고, 드디어 “기적의 사과”라고 일컫는 놀라운 능금을 얻었다고 합니다.
고흥 군수·군의원 선거를 앞두고 천경자 님하고 기무라 아키노리 님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을 군수·군의원 후보자가 깊고 넓게 헤아려 보기를 바랍니다. 예전에는 천경자라는 분이 고흥에서 태어나 멋진 그림밭을 일구었습니다만, 오늘날에는 이런 사람이 태어나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고흥 교육은 어린이·푸름이가 도시로 나가서 다시 안 돌아오도록 하는 흐름이거든요. 그리고 천경자 님이 어릴 적 누렸을 정갈하며 아름다웠을 고흥 숲을 떠올려 보아야 합니다. 요즈막 고흥에 숲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요즈막 고흥은 경관이 좋은 멧기슭마다 태양광집열판이 잔뜩 들어섭니다. 고흥만을 갯벌로 돌리려고 하는 몸짓은 없이, 고흥만 간척지에 경비행기시험장을 들이려 할 뿐 아니라, 이 비행시험장을 더 키우려고 하는 몸짓이 있습니다. 그동안 고흥군 행정은 핵발전소·화력발전소·폐기물발전소를 끌어들이려고 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이런 시설이 들어선 고흥이란 고장에 어린이·푸름이·젊은이가 뿌리를 내려 살고 싶을까요?
고흥 교육은 “기적의 사과”를 일군 기무라 아키노리 같은 사람한테서 배우는 ‘흙살림 교육’이 되어야 어울린다고 봅니다. 고흥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드론이나 자동차 정비를 가르칠 까닭이 있을까요? 이런 학과는 도시 고등학교에 있어야 걸맞지 않나요? 고흥 중·고등학교는 ‘친환경·유기농’뿐 아니라 ‘자연농’까지 짜임새있고 알차게 가르칠 수 있는 얼개로 거듭나야지 싶습니다. 바다에 염산을 뿌려서 김을 거두는 길이 아닌, ‘무염산 김 짓기’를 배워서 펼치는 길을 고흥 중·고등학교에서 이끌어야 할 테고요.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아름답고 뜻있는 교육 정책은 얼마든지 펼 만합니다. 고흥 곳곳에 있는 폐교는 읍내하고 먼 마을을 살리는 꼭짓마당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사라져서 학교마다 문을 닫지만, 이렇게 문을 닫은 학교를 손질해서 배움마당, 문화마당, 살림마당, 예술마당, 책마당으로 바꾸어 낼 수 있습니다. 폐교 터에는 운동장이 있기 마련이기에 이 운동장을 너른 놀이마당으로 꾸미면, 마당도 놀이터도 마땅히 없어 아쉬운 도시 젊은 인구를 고흥 곳곳으로 넉넉히 끌어들일 수 있어요. 일자리를 억지로 만들려 하지 맙시다. 고흥이 어린이와 젊은이가 살기 좋은 터가 되면, 일자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내거나 지어낼 수 있습니다.
땅을 깨끗하게 가꾸고, 밥을 정갈하게 나누며, 마을을 아름다이 돌보는 살림이 고흥이 살아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흥은 이런저런 테마파크나 골프장이나 비행시험장이 아닌, 하늘이 물려준 숲하고 바다하고 들을 푸르게 보살펴야지 싶습니다. 이웃한 순천에 왜 관광객이 넘칠까요? ‘갯벌’을 보려고 넘칩니다. 깨끗하게 보살핀 숲하고 바다하고 들을 보려고 사람들이 넘치지요. 관광시설을 지어야 손님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있는 숲’을 ‘태양광집열판한테 잡아먹힌 폐허’가 아닌 ‘푸른 숲’으로 가꾸려는 정책·손길·마음·눈길·생각·사랑·꿈을 세울 적에 고흥군은 어르신뿐 아니라 어린이와 젊은이 모두 기쁘게 살아갈 곳이 되리라 봅니다. ㅅㄴㄹ
글 : 최종규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