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흙이 된다는 것 - 제일 2세 김창생 에세이
김창생 지음, 양순주 옮김 / 신생(전망)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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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2세부터 4세까지, 모두 같은 이웃
― 제주도의 흙이 된다는 것
 김창생/양순주 옮김
 전망, 2018.4.3.


내 모어는 일본어이며 감성 역시 일본어로 형성되었다. 그런 내가 오빠의 강요로 고교 3년간을 민족학교에 다녔다. 본명을 대고 조국의 역사와 언어를 배우는 과정 속에서 나의 뒤틀림이 무지 때문에 생겨난 것임을 알게 되었다. (42쪽)


  1951년에 일본 오사카 이카이노에서 태어난 분은 일본말을 듣고 쓰고 배우면서 자랐다고 합니다. 이녁 어버이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며 제주말을 듣고 쓰고 배우면서 자랐다지요. 이녁한테는 손녀가 있고, 손녀는 영화 〈귀향〉에 나왔다고 하는데, 이 영화에는 손녀뿐 아니라 이녁 딸도 나왔대요.

  《제주도의 흙이 된다는 것》(김창생/양순주 옮김, 전망, 2018)을 읽으면 영화 〈귀향〉하고 얽혀서 일본 ‘넷 우익(극우 사이트 사람들)’이 글쓴이를 괴롭히는 이야기가 살며시 나옵니다. 글쓴이는 손녀가 영화 〈귀향〉에 나왔기에 몹시 대견스러우면서 자랑스러웠다고 해요. 우리 아픈 발자국을 돌아보는 뜻있는 영화에 나오며 우리 옛자취를 찬찬히 돌아보고 배우는 손녀가 이뻐 보였다지요.

  그런데 일본 ‘넷 우익’은 영화 〈귀향〉에 흐르는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라고 외치면서, 이 영화에 나오는 글쓴이 손녀가 ‘일본에서 살아가기 힘들’리라는 말을 쏟아내었다고 합니다.

  영화 하나가 달래려고 하는 아픈 넋은 어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에 나와서 오늘 우리한테 무엇을 보고 생각하면서 삶을 새롭게 가꾸어야 할까 하고 밝히는 넋은 오늘 이야기입니다.


재일4세인 나의 사랑스러운 손녀가 (영화 〈귀향〉에서) 주인공 정민 역을 연기했다. 일본 상황을 고려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그 사실을 공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을 들여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손녀가 살아갈 일본의 현실에. 넷 우익의 충실하고 부지런함에……. 치가 떨렸다. (176쪽)


  출입국 심사대에서는 국적을 따집니다. 그 국적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떤 마음앓이를 했는지는 살피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국적을 매기는 정치나 사회를 헤아릴 틈이 없습니다. 지구라는 별에서 나라가 서로 평등하거나 평화로우려면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 돈을 풀어 준다는 외국 관광객한테는 문을 열되, 한겨레한테는 국적 때문에 문을 열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어떤 길을 가는 모습일까요.

  그리고 한겨레가 왜 서로 죽이고 죽어야 했을까요. 모든 사람은 생각도 말도 삶도 다르기 마련일 텐데, 생각이 다르대서 서로 죽이고 죽어야 했던 지난날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을까요. 돈이나 계급이 있고 없고에 따라 사람을 가르던 봉건사회도 어리석지만, 이쪽이냐 저쪽이냐로 갈라서 총칼을 들어야 하던 나날도 어리석습니다. 무엇보다 흙을 가꾸며 살던 이들한테는 이쪽도 저쪽도 없이 ‘마을·보금자리·이웃’이 있을 뿐이었어요. 어느 쪽도 아닌 숱한 사람들은 훤한 낮에 떼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바로 제주에서.


일본인 관광객이 한 해에 2백만 명 이상 방문하는 한국에 조선국적이라는 이유로 조상의 땅을 여지껏 밟지 못하는 재일3세 청년이 있다. (85쪽)

4·3 사건을 직접 겪은 고령자가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보다 더해수다. 그땐 더 심해십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은 이 영화의 가치를 폄하하는 표현이 아니다. 평소라면 영화관에 올 일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영화관에 찾아오게 만든 업적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100쪽)


  《제주도의 흙이 된다는 것》을 쓴 분은 늘그막에 가시버시 두 사람이 제주로 삶터를 옮깁니다. 글쓴이 어버이가 제주사람이기는 했어도 글쓴이로서는 그 고장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기에 제주에서 누가 이웃이거나 동무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한겨레이지만 한국이라는 터전이 외려 더 낯설 수 있습니다.

  ‘내 뿌리란 무엇인가’ 하고 물으려고 삶터를 옮겼다고 해요. 일본에서 제주로 삶터를 옮긴 ‘재일2세’인 글쓴이는 틈나는 대로 제주 곳곳을 다니면서 1940년대 끝자락에 아프게 살아야 했던 자취를 마주하려고 합니다. 이녁 어버이가 그무렵 어떤 삶을 치러야 했는가를 느껴 보려 하고, 이녁 또래가 그즈음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를 느껴 보려 합니다.

  이러던 어느 날,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터에 들어간 적이 있대요. 해군기지를 막아내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이곳저곳 걷다가 ‘열린 울타리’ 안쪽으로 살며시 걸음을 옮겨 보는데, 테니스 경기장에, 절에, 교회에 갖가지 건물이 늘어섰다지요.


이곳저곳 걷다 보니 보수공사 중인 해군기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자재를 들여오기 위해 펜스를 열어둔 게 아닌가.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몰래 들어갔다. 잔디밭이 깔린 테니스코트, 해군을 위한 사원과 교회가 그 옆에 각각 세워져 있었다. 호도는 거대한 선박 때문에 시야에 가려져 볼 수 없었다. (227∼228쪽)


  재일1세라는 이름을, 재일4세라는 이름을, 앞으로 이어질는지 모를 5세나 6세나 7세라는 이름을 가만히 읊어 봅니다. 앞으로도 이런 이름을 읊어야 할는지, 앞으로는 이런 이름을 털어내고 ‘한이웃’으로 마주할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마을하고 마을 사이에 울타리가 없기를 바랍니다. 고장하고 고장 사이에도, 나라하고 나라 사이에도 울타리가 없기를 바라요. 울타리를 치기에 서로 군대를 두고 으르렁거립니다. 울타리가 없으면 군대가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쳐들어갈 일도 쳐들어올 일도 없을 적에 평화와 민주와 평등이 함께 싹틀 수 있지 싶어요. 군대를 지키는 길이 아닌 평화를 지키는 길에서 따사로이 한이웃이 되어 손을 잡을 수 있지 싶습니다.

  제주에서 흙이 되려고 하는 글쓴이는 평화라는 걸음으로 고이 눈을 감고 싶은 꿈을 꿉니다. 이웃을 아끼려는 마음으로, 이웃이 되려는 마음으로, 남남이 아닌 서로 손을 잡으려는 마음으로 마지막 걸음을 곱다시 딛고 싶습니다. 2018.5.10.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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