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만한 잡담 천년의 시조 1003
서성자 지음 / 천년의시작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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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30


작은 이야기를 상냥하게 노래해 본다
― 쓸 만한 잡담
 서성자
 천년의시작, 2016.10.12.


‘우리 딸 시집가는 날’ 달력에 크게 쓰고 / 아침이 참 맑다며 이불을 널다가 // 노을을 흠뻑 쏟아놓고 / 깔깔 웃는 엄마야 // 흘러간 어느 날의 구름 위를 거니는지 / 꽃이불 머리에 쓰고 사뿐히 앉았다가 (참 맑다)


  어버이가 아이를 품에 안고 들려주는 말은 모두 노래가 된다고 느낍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낳고 돌보는 동안 아이한테 말을 들려주고 가르치는데, 이 말이 늘 노래가 되면서 아이는 기쁨하고 사랑을 배우지 싶어요.

  어버이 곁에서 말을 듣고 배우며 자라는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말로 새롭게 이야기를 길어올려요. 이 이야기는 새삼스레 노래입니다. 아이 입에서 톡톡 터져나오는 말마디는 더없이 싱그러이 노래꽃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희끗한 사내가 운동장을 걷다 말고 전화기에 콧소리로 ‘사랑해’를 높이 보낸다 아장한 손녀 웃음에 먼 소년이 왔나 보다 (3월)

달덨다, 근린공원에 언니들이 달린다
왕언니 작은 언니 넘실넘실 파도 인다
“삶보다 살을 저주해”불룩해진 길도 웃고 (떴다, 달)


  틀에 맞춘 시조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조로 삶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담은 《쓸 만한 잡담》(서성자, 천년의시작, 2016)을 읽습니다. 시조집이라고 하는데 막상 펴서 읽으니 흔히 보던 ‘틀(글잣수)에 맞추는’ 글이 아닙니다.

  그러고 보면 시조이든 시이든 모두 노래입니다. 이름은 달라도 모두 삶을 노래하는 말입니다. 아침을 맞이하는 기쁨을 노래합니다. 낮에 바지런히 일하는 보람을 노래합니다. 밤에 고요히 잠들며 쉴 수 있는 즐거움을 노래합니다.

  아장걸음을 디디던 아이를 맞이한 기쁨을 노래합니다. 이 아이가 자라 스스로 꿈을 키우는 어른으로 새길을 걷는 모습을 지켜보는 보람을 노래합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낳는 새로운 아이를 마주하는 새로운 즐거움을 노래해요.


가슴으로 울 일 없어 목메도록 밥을 먹고
옷에 핀 보푸라기로 솜꽃을 굴리는 여자
그 손등 푸른 혈관이 낯선 길처럼 아득하다 (보푸라기 여자)

시 한 편 써보려고 / 아비를 토막 내고 // 시 한 편 건져보려고 / 어미를 발라먹고 // 구름길 먼저 건너간 피의 족보를 뒤적이다가 // 어찌할 바를 몰랐다면 / 알아도 할 수 없지 (쓸 만한 잡담)


  우리 모두 하루를 노래하면서 시를 써 보면 좋겠습니다. 문학잡지에 싣지 않아도 좋으니 즐겁게 시를 써서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숙제 때문에 시를 써야 하지 않습니다. 어버이하고 상냥하게 나눌 시를 쓰면 되어요.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바라보는 삶을 적고, 아이는 아이대로 지켜보는 삶을 적어서, 똑같은 일이나 살림을 두고도 이렇게 새로 느낄 수 있구나 하고 배우면 좋아요.

  “쓸 만한 잡담”이란, 언뜻 보면 자질구레한 이야기 같은 삶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모두 구슬처럼 빛나는 삶이라는 뜻이지 싶습니다. 노래하는 《쓸 만한 잡담》은 수수한 하루에서 길어올린 작은 삶 이야기라고 느껴요.


오랜 날 저 높은 한 남자를 사랑했네
위험한 확신인 줄 알았으나 눈 감고
흰 철쭉 무더기같이
나는 홀로 신부가 되네 (나의 시)


  시를 쓰는 하루를 살면 우리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사뭇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곁님한테 시를 써서 건네고, 아이한테 시를 써서 줍니다. 아이가 쓴 시를 받습니다. 이웃이 들려주는 시를 가만히 건네받습니다. 저마다 누린 하루를 저마다 참하게 적으니 노래가 피어납니다. 후미진 곳에서도, 구석진 곳에서도, 응달인 곳에서도 새봄 기운하고 빗물을 받으면서 푸르게 노래 한 송이 자라납니다. 2018.5.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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