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40
사전이라는 책 3
따지면 따질수록 사전이라는 책은 ‘말을 다루는 책’이라고만 여길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사전은 ‘말을 다루는 책’을 넘는다고 느낍니다. ‘말을 다루는 책’ 너머에 있기에 사전이라고 할 만하다고 봅니다.
사전을 짓는 사람으로서 밝혀 본다면, 사전이란, ‘말을 다루는 길을 이야기하는 책’이지 싶습니다. 그저 말을 다루거나 싣는 책이 아닌, 말을 우리가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쓰며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이야기할 적에 즐겁거나 새롭거나 뜻있는가를 넌지시 짚는 책이지 싶습니다.
한 사람으로서 ‘생각하는 길’을 돕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말을 마음에 씨앗으로 심어서 생각하는 길’을 이끄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똑같은 날이 아닌 날마다 새로운 날이듯, 모두 똑같은 말이 아닌 모두 새로운 말인 줄 느끼도록 북돋우거나 살리는 책이라고도 할 만해요.
우리가 아직 말을 모를 적에는 ‘우리 손에 말이 있어’도 이 말을 어떻게 엮어야 이야기가 되는가를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씩 말을 알아차리면 ‘우리 손에 있는 몇 줌어치 말’을 이리 엮거나 저리 엮으면서 새롭게 이야기를 짓습니다.
그렇다면 ‘말을 모른다’는 무슨 뜻일까요? ‘말을 모른다’는 ‘삶을 모른다’이지 싶습니다. 우리 손에 ‘10만 가지 낱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10만 가지 낱말을 제대로 부릴 줄 아는 사람이 드뭅니다. ‘10만 가지 삶’을 모르거나 부릴 줄 모른다면 말도 모르거나 부리지 못합니다. 손에 쥔 말이 몇 줌뿐이라 하더라도 ‘말이 나타내는 삶을 안다’면 아주 적은 낱말만으로도 새롭게 엮는 길을 슬기롭게 찾아내서 더없이 새로우면서 즐거운 이야기를 지필 수 있습니다.
사전이 말만 잔뜩 담았으면, 마치 광처럼 말을 쟁이기만 하는 책이라면, 이 같은 책은 널리 쓰기 어려우며, 사람들도 제대로 못 씁니다. 사전은 더 많은 말을 담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말을 차근차근 살리는 길’을 헤아리면서 차근차근 나아가야 합니다. 사전 하나를 적어도 이백 해에 걸쳐서 짓는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2018.3.3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