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융합 - 인문학은 어떻게 콜럼버스와 이순신을 만나게 했을까
김경집 지음 / 더숲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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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여러 분야를 통섭하는 게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다.

각 전문분야의 시각에서는 발견하지 못했을 부분들을 발견하게 되고

상상력과 창조의 밑거름이 된다는 점에서 다양한 분야들의 융합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데

이 책도 인문학적 융합이라는 관점에서 서로 무관할 것 같은 역사 속 인물들의 만남을 주선한다.


먼저 콜럼버스와 이순신이 첫 만남의 주인공이다.

1492년이 콜럼버스가 인도로 가기 위해 항해를 시작했던 의미 있는 해라면

그로부터 100년 후인 1592년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이 책에선 임진년 조일전쟁이 바른 표현이라 한다).

100년이란 시간 간격과 동서양의 서로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이

과연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은데 은이 둘을 묘하게 이어준다.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에 도착한 후 유럽 제국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은을 착취해간다.

약탈한 은으로 중국의 도자기, 비단 등을 구입하는 무역이 활성화되던 와중에

우연히 포르투갈인을 통해 조총만드는 법을 배운 일본이 이를 바탕으로 조선을 침략하게 되는데

이를 물리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니

좀 억지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나비효과의 전형이라볼 수도 있었다.

코페르니쿠스와 백남준은 변화와 혁신의 공통점을 가졌는데, 코페르니쿠스가 천동설이 지배하던

중세에 지동설을 주장함으로써 기존의 세계관을 완전히 뒤흔들었다면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은 이전까지 미술에서 꿈도 꾸지 못한 시간과 동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다음으론 에밀 졸라와 김지하는 같은 듯 다른 행보를 보인 두 사람의 얘기를 다루는데,

간첩조작사건으로 회자되는 드레퓌스 사건에서 용감하게 그가 무죄임을 외쳤던 에밀 졸라와는

달리 대표적인 저항시인이었던 김지하의 어색한 행보는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어찌 보면 세상 사람들이 불의에 침묵할 때 용기 있게 이를 고발하기는 결코 쉽지 않지만 에밀

졸라와 같은 살아 있는 양심이 존재해야 세상의 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아쉬움이 남는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낸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신화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었고,

대한민국 축구의 4강 신화의 주역인 히딩크와 거장 렘브란트의 조국인 네덜란드는

'자유로운 개인'에 대한 신념을 가졌기에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전반적으로 느낀 점은 단순히 인문학적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준다는 점이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고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함에 있어서 인문학이 상당한 역할을 하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들도

내가 그동안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지 제대로 모르고 있던 부분들이었다.

김홍도의 '씨름도'나 김정희의 '세한도'에 얽힌 다양한 의미와 사연들도 신선했는데

어떤 특정 텍스트에만 매몰되지 않고 마음껏 질문하고

다양한 답을 찾아내는 힘이 바로 인문학의 힘이라 할 수 있었다.

음력 8월 15일인 추석이 종종 이른 9월에 찾아와서 비싼 값에 제수상을 차려야 했던 사람들이

추석 날짜의 변경을 제안했다는 부분은 정말 생각도 못한 점이었는데,

왜 추석이 꼭 음력 8월 15일이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과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암기식의 지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들을 고려하고 검토하는 사고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만큼 인문학은 저자의 말대로 '내가 묻는 것'에서 출발해서

'물었던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이 목적이 아닌

질문과 이에 대한 답을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삶과 미래의 가능성을 확대하는

진정한 실용의 힘이 바로 인문학의 힘임을 잘 가르쳐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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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여자 밀리언셀러 클럽 137
가노 료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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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헤어졌던 고바야시 료코를 지하철 역 계단에서 우연히 만난 변호사 스모토 세이지는

갑자기 떠나버린 그녀와의 재회가 반가워 얘기를 좀 나누고 싶어하지만

그녀는 뭔가에 쫓기듯 전화번호만 남긴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난다.

그녀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씁쓸한 마음에 빠져드는 것도 잠시

다음 날 아침 경시청의 후지사키 형사로부터 그녀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게 되는데...


2008년 네이버 일본 미스터리 즐기기 카페에서 최고의 일본 미스터리로 선정된

'제물의 야회' 가 아직까지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 데다 제52회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이란

훈장까지 달고 있는 가노 료이치의 이 책은 관심이 가던 작품이었다.

게다가 제목부터 윌리엄 아이리시의 고전인 '환상의 여인'과 유사해 묘한 기대감마저 주던 작품인데

정작 내용은 얼마 전에 읽은 할렌 코벤의 '6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유도 모른 채 헤어졌던 여자친구의 소식을 오랜만에 접하게 되는 거나

자신이 알던 여자친구의 정체가 도대체 뭔지 알아내기 위해

남자 주인공이 동분서주한다는 설정은 비슷한 감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5년만에 만난 옛 여자친구가 바로 다음 날 죽었다는 이 책의 설정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사랑했던 여자와의 추억을 회상하던 순간도 잠시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게 된 스모토는

그녀가 도대체 왜 죽게 되었는지에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 더 황당한 건 장례를 치르기 위해

그녀의 친척들을 수소문하던 중 료코가 왠지 자신이 알고 있는 료코와 다르다는 점이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스모토는 생업을 잠시 중단하고 그녀의 흔적을 찾아나선다.

료코가 마담으로 일하던 가게를 찾아갔다가 사요코를 만나 그녀로부터 도움을 받고

흥신소에 의뢰해 료코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그녀의 죽음에 야쿠자가 관련되어

있는 데다 그녀가 료코로 신분 세탁을 한 사실을 밝혀낼 증거가 어디에도 없었다.

심증은 충분히 가지만 료코의 과거를 밝히는 일에 진도가 안 나가던 중

13년 전에 일어난 토지 브로커의 뺑소니 사건과 개발과장의 살인사건에

그녀가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스모토는 목숨을 걸고 진실에 다가가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스모토가 왜 그렇게 료코의 과거를 밝히는 데 집착하는지 좀 이해가 안 되었다.

5년 전 만났던 여자의 갑작스런 죽음에 충격을 받았을 수는 있고 그녀의 정체가 궁금했을 수도 있지만

야자쿠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발버둥치는 스모토의 모습에 좀 짠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료코가 숨기고 있던 진실은 너무나 엄청난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파고들수록 점점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개발 관련 비리나 의료폐기물에 얽힌 비리에 야쿠자 등 폭력 조직까지 연루되어

감당하기 힘든 진실이 조금씩 드러났는데 마지막에 결국 확인되는 진실은 좀 안타까운 느낌도 들었다.

스모토와 료코는 왠지 너무 닮은 꼴이라서 서로 통했던 것 아닌가 싶은데 5년만의 재회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던 점을 생각하면 두 사람의 인연이 더욱 안쓰러웠다.

'제물의 야회'때도 충분히 느꼈지만 이 작품도 강렬한 스토리에 많은 사회 문제까지 녹여내고

다양한 등장인물들과 풍성한 얘기들을 만들어 냈는데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세상 풍파에 휩쓸리며 남의 신분을 위장하여 살아야만 했던 여자와

그녀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안간힘을 쓴 남자의 안타까운 사연이 

사회의 거대악 속에 그대로 파묻혀버릴 뻔했다가 겨우 나름의 정의를 찾게 되었지만

오랜 세월동안 불의에 무참히 당할 수밖에 없었던 무기력한 모습을 보면 

이 책 속에 일어나는 일들을 단순히 픽션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스모토와 같이 끝까지 진실을 추구하는 용감한 사람들이 있기에

상투적인 말이지만 진실은 언젠가는 승리한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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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의 아이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박하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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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인 아버지 미치오와 함께 시타마치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야기사와 준은

가정부 하나의 보살핌 속에 나름 즐거운 생활을 하는데

마침 시타마치의 아라카와 천에서 토막 시체의 일부가 떠내려오다가 발견된다.

각종 흉흉한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미치오가 사건을 맡게 되고 준도

절친인 신고와 함께 사건에 관심을 가지던 차에 '시노다 도고는 살인자'라고 적힌 편지가

아버지 앞으로 온 걸 발견하는데... 


'이유', '화차', '모방범' 등 주옥같은 작품으로 국내에서 미미여사란 애칭까지 얻은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 걸작이라는 이 책은 우리에게 친근한 작품들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모답게 벌어지는 사건 자체가 심상치가 않은데

토막 시체가 여기저기서 발견되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지게 된다.

형사인 미치오와 그의 아들 준은 각자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나름의 접근을 하는데 준은 집에 온 편지에서 살인자로 지목된 화가 시노다 도고와 가까워진다.

한편 추가로 발견된 토막 사체 등을 근거로 범인이 암매장했던 시신을 다시 파내서

토막 내어 버리고 있음을 알아내게 되는데 범인의 이해하지 못할 행동은

다음으로 사체를 버릴 예정지를 알려주는 편지가 경찰청에 도착하면서 계속되고

사건 수사는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경찰을 우롱하는 듯한 범인의 예상하기 어려운 행동이 계속되는 가운데

시노다 도고의 집 마당에서 시체 일부가 발견되면서

사건이 시노다 도고와도 무관하지 않음을 추측하게 된다.

시노다 도고의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던 중 시노다의 메니저 역할을 하는 사이가의 아들이

여자친구를 시노다의 모델로 소개시켜주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녀가 행방이 묘연한 상태임을 확인하게 된다.

두 명의 피해자가 소년법 개정을 주장하는 '행동하는 여성들 모임'이란 단체가 주최한

집회에 참여했음을 알게 되자 수사는 급물살을 타게 되고 준이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면서

결국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데 좀 뜻밖이었다.

'이유'나 '화차' 등을 읽을 때도 정말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

이 책에선 소년범 문제가 조금 다뤄지긴 했지만 맛만 보는 정도라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초기작이라 그런지 사회적인 문제를 심층적으로 파고들 정도의 스케일을 갖춘 작품은

아니었는데 이 작품을 발판으로 이후의 걸작들이 쏟아져 나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있듯이 이 책만 봐도 미미여사가

이후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가가 될 거란 사실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등장인물들도

하나같이 개성만점의 매력을 갖춘 인물들이라 시리즈물로 만들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형사인 아버지 미치오의 능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탁월한 수사감각을 지닌 준이 성장해

아버지와 함께 수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랜만에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만나서 반가웠는데

그녀의 작품은 잔혹한 사건들을 다루는 가운데도 뭔지 모를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세상의 치부를 부각하는 내용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미미여사의 시선때문인 것 같은데 그녀의 새로운 작품들과도 조만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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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꿈결 클래식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이병진 옮김, 남동훈 그림 / 꿈결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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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자기 고집대로 무모한 행동을 일삼던 나는 난폭한 악동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집안 일을 봐주던 기요 할멈만은 늘 도련님이라 부르며 따뜻하게 감싸줬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형마저 집을 판 돈 중 얼마를 주고 떠나자  물리학교에 진학하여 

졸업을 한 나는 우연히 교장 선생의 추천으로 시골 중학교 수학 교사로 내려가게 된다.

아무 준비 없이 내려간 그곳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나쓰메 소세키의 명성은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품을 만날 기회는 없었다.

일본 작품을 자주 읽는 편이지만 주로 추리소설이나 현대소설들만 읽어서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들은 왠지 난해하거나 낯설 것 같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직접 이 책을 읽어 보니 요즘 작가들 못지않는 유쾌발랄함이 느껴졌다.

특히 주인공인 도련님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연상되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교사 역할을 하게 된 도련님은 교장은 두더지, 교감은 빨간 셔츠,

영어 선생은 끝물 호박, 수학 선생은 아프리카 바늘두더지,

미술 선생은 아첨꾼이란 별명을 붙이며 시골 학교에 적응해보려 하지만

좋아하는 뎀뿌라 메밀국수를 네 그릇 먹었다고 뎀뿌라 선생님이라 놀려대는 학생들의 장난에 발끈한다.

시골이라 그런지 새로 부임한 교사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되어서

도련님이 뭔가를 하면 꼭 다음날 바로 학생들이 놀리며 장난을 친다.

심지어 숙직을 서는 날엔 메뚜기떼를 이불 속에 넣는 등 말썽꾸러기들의 장난이 계속되는데

소싯적에 한 가닥했던 도련님이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학생들과의 대결전선 못지 않게 선생들과도 원만한 관계가 아니었는데

아프리카 바늘두더지와 오해로 인해 잠시 틀어지기도 하지만 끝물 호박의 여자를 빼앗고

끝물 호박을 전근 가게 만든 교감 빨간 셔츠를 혼내주기 위해 힘을 모은다.

하지만 학생들이 사범학교 학생들과 집단 난투극을 일으키자 아프리카 바늘두더지와 함께 연루되어

화끈한 싸움을 벌이다가 지역신문에 폭력사건을 선동했다는 기사가 나면서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되는데...


전혀 교사답지 않은 철부지 도련님의 일으키는 소동이 코믹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재미들을 주었는데

이 작품은 일본 문학사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작품인 것 같다.

책의 말미에 실린 해설을 보면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 심리의 변주나 일상의 경험 등을

세밀히 그려낸 소설을 뜻하는 '사소설'에 해당한다고 되어 있는데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에서 메시지나 사상을 전달하려는 작품경향을 벗어나

개인의 자연스런 감정표현이나 삶을 그린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 같다.

메이지유신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연이은 승리로 동양에서 독보적인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한

일본의 모습이 작품 전반에 드러나고 있는데, 이런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소세키 나름의 방식으로 이 작품에 표현된 듯하다.

이 책의 문학적인 평가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돈키호테 같은 자기 주관이 뚜렷한 도련님이

여러 사람들과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저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막무가내인 소신파 도련님이 벌이는 소동들은 

세상사에 찌든 어른의 눈에서 보면 한심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이런 저런 눈치나 보며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겐 통쾌한 대리만족을 안겨주었다.

그런 점에서 처음 나쓰메 소세키의 이 책에 대해 막연히 고리타분할 거라 생각했던 예상은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졌는데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이런 유쾌발랄한 작품인지 확인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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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역사를 경계하여 미래를 대비하라, 오늘에 되새기는 임진왜란 통한의 기록 한국고전 기록문학 시리즈 1
류성룡 지음, 오세진 외 역해 / 홍익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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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한동안 평화를 누리던 조선을 완전히 뒤흔든 일대 사건으로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시대를 전기와 후기로 나눌 정도의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풍전등화의 위기를 겪고 구사일생으로 겨우 나라를 지켜낸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전쟁이었지만 이 책의 저자인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국정을 이끈 주역으로 참혹했던 전쟁을 반성하고

다시는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후세들이 경계하여 후환을 대비하도록 이 책을 썼다.

마침 드라마에서도 다루고 있는 내용인지라 과연 징비록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지 궁금해서

이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징비록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의 전쟁 징후에서부터 시작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류성룡이 직접 보고 들은 걸 중심으로 임진왜란의 전모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 정말 조선이란 나라의 왕과 대신들을 비롯한 권력층이

얼마나 한심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무능하고 뻔뻔했는지를 절감하게 된다.

일본은 조선의 정세를 꿰뚫고 있었던 것에 비해 통신사를 파견해 직접 일본의 상황을 보고도

서인인 정사 황윤길이 일본 침략을 예상한 반면 동인인 부사 김성길은 침략이 없을 거라며

의견대립이 있자 선조와 조정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안이하게 대응하고 만다.

그야말로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적어도 무참히 당하지 않을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쳤다고 할 수 있는데

이때부터 본격화된 당쟁이 결국 조선을 전쟁의 포화 속으로 몰아넣고 만다.

현재의 정치를 봐도 나라를 말아먹은 조선의 정쟁과 그리 다르지 않는데 여전히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고 잘못을 답습하고 있는 모습은 어찌 보면 구제불능이라 할 수 있었다.

암튼 아무 대책도 없고 준비도 없던 조선은 일본이 부산에 상륙한 이후 속수무책으로 패전을 거듭한다.

믿었던 신립마저 전혀 지형을 이용하지 못한 무능한 전술로 참패를 당하자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몰래 도망간다.

백성을 버리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야반도주하는 왕실과 조정의 모습을 보면서

당시 백성들이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을까 싶었다.

안 그래도 각종 수탈로 고통스런 삶을 살던 백성들에게 그나마 남아 있던 나라와 임금에 대한

한줌의 희망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으니 이런 상황에서 조선이 안 망하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암튼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했던 조선은 수군에서의 이순신의 맹활약과

전국 각지의 의병들의 분전, 명나라의 원군 등으로 인해 기사회생하게 된다.

여기서 류성룡의 인재 발탁이 빛을 발하게 되는데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한 게 조선의 운명에 결정적으로 작용을 했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으면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선조와 조정 대신들은 여전히 명나라만 쳐다 보며 한심한 작태를 일삼는다.

제해권을 장악하며 왜군의 진격을 저지하는데 일등공신이었던 이순신을 백의종군시키고

균을 중용해 기껏 만들어놓은 수군 전력을 한 입에 다 털어넣질 않나

명나라에 질질 끌려다니면서 왜군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순간을

빈번히 놓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분통이 터지는 장면들이었다.

외세에 휘둘리고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은 자기 이익만 챙기기 바쁜 파렴치한 인간들뿐인 상황인

조선의 모습은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데,

처절한 고통과 수모를 뼈저리게 겪고도 전쟁이 끝나자 마자 언제 그랬느냔 듯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조선 왕실과 조정은 절망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이 책은 임진왜란의 참상을 고스란히 담아내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후세가 참고하도록 하려 했으나 역사을 잊은 조선은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결국 일본에 나라를 뺏기고 말았으니 할 말이 없다.

몇 사람이 아무리 반성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한다 해도

대다수의 사람이 그렇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우리가 수많은 대형참사를 당하고도 계속 되풀이하는 것도 근본적인 개혁과 뼈를 깎는 노력이

지속되지 않기 때문인데 이 책은 과거나 지금이나 그리 당하고도 정신 차리지 못하며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금이나마 반성의 시간과 경각심을 일깨워주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류성룡은 분명 썩어빠진 조선 조정의 소금과 같은 존재였고

징비록은 그가 후세를 위해 남긴 보물과도 같은 책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징비록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주변 사정들까지 풀어내어 징비록에 담긴 소중한 교훈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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