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의 아이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박하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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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형사인 아버지 미치오와 함께 시타마치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야기사와 준은

가정부 하나의 보살핌 속에 나름 즐거운 생활을 하는데

마침 시타마치의 아라카와 천에서 토막 시체의 일부가 떠내려오다가 발견된다.

각종 흉흉한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미치오가 사건을 맡게 되고 준도

절친인 신고와 함께 사건에 관심을 가지던 차에 '시노다 도고는 살인자'라고 적힌 편지가

아버지 앞으로 온 걸 발견하는데... 


'이유', '화차', '모방범' 등 주옥같은 작품으로 국내에서 미미여사란 애칭까지 얻은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 걸작이라는 이 책은 우리에게 친근한 작품들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모답게 벌어지는 사건 자체가 심상치가 않은데

토막 시체가 여기저기서 발견되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지게 된다.

형사인 미치오와 그의 아들 준은 각자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나름의 접근을 하는데 준은 집에 온 편지에서 살인자로 지목된 화가 시노다 도고와 가까워진다.

한편 추가로 발견된 토막 사체 등을 근거로 범인이 암매장했던 시신을 다시 파내서

토막 내어 버리고 있음을 알아내게 되는데 범인의 이해하지 못할 행동은

다음으로 사체를 버릴 예정지를 알려주는 편지가 경찰청에 도착하면서 계속되고

사건 수사는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경찰을 우롱하는 듯한 범인의 예상하기 어려운 행동이 계속되는 가운데

시노다 도고의 집 마당에서 시체 일부가 발견되면서

사건이 시노다 도고와도 무관하지 않음을 추측하게 된다.

시노다 도고의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던 중 시노다의 메니저 역할을 하는 사이가의 아들이

여자친구를 시노다의 모델로 소개시켜주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녀가 행방이 묘연한 상태임을 확인하게 된다.

두 명의 피해자가 소년법 개정을 주장하는 '행동하는 여성들 모임'이란 단체가 주최한

집회에 참여했음을 알게 되자 수사는 급물살을 타게 되고 준이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면서

결국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데 좀 뜻밖이었다.

'이유'나 '화차' 등을 읽을 때도 정말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

이 책에선 소년범 문제가 조금 다뤄지긴 했지만 맛만 보는 정도라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초기작이라 그런지 사회적인 문제를 심층적으로 파고들 정도의 스케일을 갖춘 작품은

아니었는데 이 작품을 발판으로 이후의 걸작들이 쏟아져 나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있듯이 이 책만 봐도 미미여사가

이후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가가 될 거란 사실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등장인물들도

하나같이 개성만점의 매력을 갖춘 인물들이라 시리즈물로 만들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형사인 아버지 미치오의 능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탁월한 수사감각을 지닌 준이 성장해

아버지와 함께 수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랜만에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만나서 반가웠는데

그녀의 작품은 잔혹한 사건들을 다루는 가운데도 뭔지 모를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세상의 치부를 부각하는 내용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미미여사의 시선때문인 것 같은데 그녀의 새로운 작품들과도 조만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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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꿈결 클래식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이병진 옮김, 남동훈 그림 / 꿈결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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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자기 고집대로 무모한 행동을 일삼던 나는 난폭한 악동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집안 일을 봐주던 기요 할멈만은 늘 도련님이라 부르며 따뜻하게 감싸줬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형마저 집을 판 돈 중 얼마를 주고 떠나자  물리학교에 진학하여 

졸업을 한 나는 우연히 교장 선생의 추천으로 시골 중학교 수학 교사로 내려가게 된다.

아무 준비 없이 내려간 그곳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나쓰메 소세키의 명성은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품을 만날 기회는 없었다.

일본 작품을 자주 읽는 편이지만 주로 추리소설이나 현대소설들만 읽어서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들은 왠지 난해하거나 낯설 것 같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직접 이 책을 읽어 보니 요즘 작가들 못지않는 유쾌발랄함이 느껴졌다.

특히 주인공인 도련님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연상되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교사 역할을 하게 된 도련님은 교장은 두더지, 교감은 빨간 셔츠,

영어 선생은 끝물 호박, 수학 선생은 아프리카 바늘두더지,

미술 선생은 아첨꾼이란 별명을 붙이며 시골 학교에 적응해보려 하지만

좋아하는 뎀뿌라 메밀국수를 네 그릇 먹었다고 뎀뿌라 선생님이라 놀려대는 학생들의 장난에 발끈한다.

시골이라 그런지 새로 부임한 교사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되어서

도련님이 뭔가를 하면 꼭 다음날 바로 학생들이 놀리며 장난을 친다.

심지어 숙직을 서는 날엔 메뚜기떼를 이불 속에 넣는 등 말썽꾸러기들의 장난이 계속되는데

소싯적에 한 가닥했던 도련님이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학생들과의 대결전선 못지 않게 선생들과도 원만한 관계가 아니었는데

아프리카 바늘두더지와 오해로 인해 잠시 틀어지기도 하지만 끝물 호박의 여자를 빼앗고

끝물 호박을 전근 가게 만든 교감 빨간 셔츠를 혼내주기 위해 힘을 모은다.

하지만 학생들이 사범학교 학생들과 집단 난투극을 일으키자 아프리카 바늘두더지와 함께 연루되어

화끈한 싸움을 벌이다가 지역신문에 폭력사건을 선동했다는 기사가 나면서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되는데...


전혀 교사답지 않은 철부지 도련님의 일으키는 소동이 코믹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재미들을 주었는데

이 작품은 일본 문학사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작품인 것 같다.

책의 말미에 실린 해설을 보면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 심리의 변주나 일상의 경험 등을

세밀히 그려낸 소설을 뜻하는 '사소설'에 해당한다고 되어 있는데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에서 메시지나 사상을 전달하려는 작품경향을 벗어나

개인의 자연스런 감정표현이나 삶을 그린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 같다.

메이지유신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연이은 승리로 동양에서 독보적인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한

일본의 모습이 작품 전반에 드러나고 있는데, 이런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소세키 나름의 방식으로 이 작품에 표현된 듯하다.

이 책의 문학적인 평가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돈키호테 같은 자기 주관이 뚜렷한 도련님이

여러 사람들과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저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막무가내인 소신파 도련님이 벌이는 소동들은 

세상사에 찌든 어른의 눈에서 보면 한심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이런 저런 눈치나 보며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겐 통쾌한 대리만족을 안겨주었다.

그런 점에서 처음 나쓰메 소세키의 이 책에 대해 막연히 고리타분할 거라 생각했던 예상은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졌는데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이런 유쾌발랄한 작품인지 확인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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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역사를 경계하여 미래를 대비하라, 오늘에 되새기는 임진왜란 통한의 기록 한국고전 기록문학 시리즈 1
류성룡 지음, 오세진 외 역해 / 홍익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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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한동안 평화를 누리던 조선을 완전히 뒤흔든 일대 사건으로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시대를 전기와 후기로 나눌 정도의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풍전등화의 위기를 겪고 구사일생으로 겨우 나라를 지켜낸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전쟁이었지만 이 책의 저자인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국정을 이끈 주역으로 참혹했던 전쟁을 반성하고

다시는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후세들이 경계하여 후환을 대비하도록 이 책을 썼다.

마침 드라마에서도 다루고 있는 내용인지라 과연 징비록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지 궁금해서

이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징비록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의 전쟁 징후에서부터 시작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류성룡이 직접 보고 들은 걸 중심으로 임진왜란의 전모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 정말 조선이란 나라의 왕과 대신들을 비롯한 권력층이

얼마나 한심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무능하고 뻔뻔했는지를 절감하게 된다.

일본은 조선의 정세를 꿰뚫고 있었던 것에 비해 통신사를 파견해 직접 일본의 상황을 보고도

서인인 정사 황윤길이 일본 침략을 예상한 반면 동인인 부사 김성길은 침략이 없을 거라며

의견대립이 있자 선조와 조정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안이하게 대응하고 만다.

그야말로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적어도 무참히 당하지 않을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쳤다고 할 수 있는데

이때부터 본격화된 당쟁이 결국 조선을 전쟁의 포화 속으로 몰아넣고 만다.

현재의 정치를 봐도 나라를 말아먹은 조선의 정쟁과 그리 다르지 않는데 여전히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고 잘못을 답습하고 있는 모습은 어찌 보면 구제불능이라 할 수 있었다.

암튼 아무 대책도 없고 준비도 없던 조선은 일본이 부산에 상륙한 이후 속수무책으로 패전을 거듭한다.

믿었던 신립마저 전혀 지형을 이용하지 못한 무능한 전술로 참패를 당하자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몰래 도망간다.

백성을 버리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야반도주하는 왕실과 조정의 모습을 보면서

당시 백성들이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을까 싶었다.

안 그래도 각종 수탈로 고통스런 삶을 살던 백성들에게 그나마 남아 있던 나라와 임금에 대한

한줌의 희망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으니 이런 상황에서 조선이 안 망하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암튼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했던 조선은 수군에서의 이순신의 맹활약과

전국 각지의 의병들의 분전, 명나라의 원군 등으로 인해 기사회생하게 된다.

여기서 류성룡의 인재 발탁이 빛을 발하게 되는데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한 게 조선의 운명에 결정적으로 작용을 했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으면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선조와 조정 대신들은 여전히 명나라만 쳐다 보며 한심한 작태를 일삼는다.

제해권을 장악하며 왜군의 진격을 저지하는데 일등공신이었던 이순신을 백의종군시키고

균을 중용해 기껏 만들어놓은 수군 전력을 한 입에 다 털어넣질 않나

명나라에 질질 끌려다니면서 왜군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순간을

빈번히 놓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분통이 터지는 장면들이었다.

외세에 휘둘리고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은 자기 이익만 챙기기 바쁜 파렴치한 인간들뿐인 상황인

조선의 모습은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데,

처절한 고통과 수모를 뼈저리게 겪고도 전쟁이 끝나자 마자 언제 그랬느냔 듯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조선 왕실과 조정은 절망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이 책은 임진왜란의 참상을 고스란히 담아내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후세가 참고하도록 하려 했으나 역사을 잊은 조선은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결국 일본에 나라를 뺏기고 말았으니 할 말이 없다.

몇 사람이 아무리 반성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한다 해도

대다수의 사람이 그렇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우리가 수많은 대형참사를 당하고도 계속 되풀이하는 것도 근본적인 개혁과 뼈를 깎는 노력이

지속되지 않기 때문인데 이 책은 과거나 지금이나 그리 당하고도 정신 차리지 못하며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금이나마 반성의 시간과 경각심을 일깨워주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류성룡은 분명 썩어빠진 조선 조정의 소금과 같은 존재였고

징비록은 그가 후세를 위해 남긴 보물과도 같은 책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징비록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주변 사정들까지 풀어내어 징비록에 담긴 소중한 교훈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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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 바로 지금 여기에서, 고유명사로 산다는 것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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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백가쟁명이라 불리며 수많은 사상들이 난립했다.

그 중에서 현재에도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양대산맥을 고르라면

단연 공자의 유가와 노자의 도가가 아닐까 싶다.

특히 조선시대 이후 유교사상이 지배했던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공자, 맹자 등의 유가사상가들이

득세하고 있는 반면 노자와 장자의 도가사상가들은 상대적으로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나도 노자에 대해선 학창시절에 배운 '무위자연'과 현실도피적인 사상이란

막연한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상황인데,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EBS에서 '인문학 특강'으로 다뤄진 최진석 교수의 노자 강의를 다룬 이 책은

기존에 노자의 사상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게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었다.


이 책에선 노자의 사상에 대한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가기 앞서

생각의 탄생과 생각하는 힘이 어떻게 역사를 바꿨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이 다른 동물을 지배하는 만물의 영장이 된 이유로 불을 사용한 것을 들고 있는데,

불에 익힌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소화에 에너지 사용을 줄이게 되고

강한 턱뼈와 근육이 필요하지 않게 되어 뇌가 발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구강 내부의 공간도 넓어지면서 혀 사용이 자유로워지게 되어

언어도 구사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인간의 삶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한편 혈연을 중시하는 태도는 인류가 태초부터 가져온 자연스런 본능이라 생각했었는데

이 책에선 생각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천명으로 봤던 은나라와 달리 주나라는 덕을 강조하게 되는데

신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던 세계관이 점차 인간에게 주목하게 된다.

천명을 천자가 독점하면서 생긴 비의성, 임의성, 주관성을 극복하기 위해

투명성, 보편성, 객관성이 확보되는 인간의 길인 도를 확립하려고 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상가가 바로 공자와 노자이다.

공자가 인간의 내면에서 영감을 얻고 '인'을 주장한 반면

노자는 자연의 존재형식을 사유의 원천으로 삼았다.

공자가 인간의 내면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주관성에서 탈피하지 못해 가치판단을 하게 되므로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에는 폭력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인간의 주관성에서 벗어나

자연의 객관성으로 나아가자는 것이 바로 노자의 사상이 공자의 사상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었다.

이렇게 공자와 노자의 사상이 극명하게 대립됨을 이 책을 통해 제대로 알게 되었는데

공자의 사상이 구별을 전제로 각자의 지위에 맞는 역할을 하는 것을 강조했다면 노자의 사상은

그런 구별을 타파하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면서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었다.

전에 읽었던 신영복 교수의 '강의'에서도 관계론을 중시했는데

이 책도 노자의 사상을 관계론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잘못 알고 있던 노자의 사상을 제대로 알게 된 부분이 많은데

특히 노자의 사상을 한 마디로 압축하는 '무위자연'의 '무위'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견고한 틀이나 방식에 갇힌 상태가 아님을 뜻했다.

'유위'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이 봐야 하는 대로 본다면, '무위'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보여지는

대로 보기 때문에 이념이나 기준과 같은 관념에 수동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세계의 변화에 따라 자발적이고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노자를 비롯한 도가의 사상을 현실도피적이라고 오해를 하는데 

오히려 어떤 잣대에도 얽매이지 않고 개방성과 자율성, 다양성을 맘껏 발휘하여

현실적인 성취를 이루는 것을 지향했다.

우리가 흔히 '대기만성'으로 잘못 알고 있는 말도 사실 '대기면성'으로 읽어야 맞다고 하는데

'정말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는다'고 해야 앞의 구절과의 관계에서 옳은 해석이라 한다.

즉 큰 그릇은 특정한 모습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말로 모든 걸 품어낼 수 있는 걸 의미하는 것임에도

엉뚱하게도 늦게 이뤄진다고 잘못 사용되고 있으니 우리가 아무런 비판과 검증도 없이

무작정 기존 지식들을 받아들였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 책을 통해 완전히 새롭게 알게 된 노자의 사상은

기존의 우리 사회의 병폐를 해소시켜줄 대안이 될 것 같다.

국가나 사회, 부모가 정해준 기준에 따라 무작정 따라하기 바빠서 자기 생각이라곤 없이 살아왔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부터 소중하게 생각할 줄 모르고 남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재단하며

고통스런 삶을 살아갔던 것은 전형적인 유가식 사고의 폐해였다.

공자식의 일반 명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노자식의 고유 명사로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자신에게

집중하며 자기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나간다면 각자의 자발성과 자율성, 책임감이

획일적인 기준에 따라 서열화시킨 병든 사회를 치유하는 대책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물론 우리 사회가 워낙 유가식 시스템이 확립된 상태라 결코 쉽진 않겠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도가식 시스템을 접목하고 궁극적으로 도가식으로 점차 개선시켜 나간다면

생존경쟁에 허덕이는 우리의 삶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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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미술관이다 - 로마, 바티칸,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미술관 순례
최상운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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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 시대의 우수한 문화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한 나라라서

언제나 유럽 여행지 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선망의 대상이다.

나도 짧게나마 이탈리아를 가본 적이 있어서 남다른 감정이 드는데

이 책에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로마, 바티칸,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의 다섯 곳에 있는

유명 미술관 및 관광지들과 그곳에서 소장 중인 명작들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먼저 고대 로마의 영광이 남아 있는 로마에선 사실 미술관보다는 여러 유적들이 더 유명하다 보니

미술관의 존재 자체도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을

시작으로 여러 성당과 보르게세 미술관 등 미술관들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저자는 로마에서 중점으로 볼 작가로 베르니니와 카라바조를 들고 있는데,

카라바조는 얼마 전에 읽은 '명화와 수다 떨기'로 친숙해져선지 더욱 반가웠다.

바티칸은 이 책에 소개된 곳 중에서 내가 가장 많이 둘러본 곳이라 직접 본 작품들이 다수 등장했는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나 최후의 심판 등은 그때의 감동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당시 사전에 아무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뭐가 뭔지도 제대로 모른 채 명작들을 감상해서

사실 누구의 무슨 작품인지도 몰랐는데 이 책을 보니 그때 미리 공부하고 갔다면 훨씬 많은 걸 얻고

기억에도 오래 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교황의 주거 공간인 아파트먼트, 라파엘로의 방에는 가보지 못했는데

다시 바티칸을 갈 수 있다면 라파엘로의 명작들을 볼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해야겠다.


르네상스의 중심지인 피렌체에는 우피치 미술관, 아카데미아 미술관 등 유명 미술관들이 많은데

안타깝게도 이런 미술관에는 들르지 못하고 두오모 등 건축물들만 실컷 보고 온 기억이 남아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명작들이 바로 입구까지만 갔던 미술관들 안에 소장되어 있었다니

정말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혹시 다음에 갈 기회가 있다면

이런 명작들을 놓치지 않아야겠다는 작은 바람만 가져본다.

밀라노의 경우 더욱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데 하필 내가 갔을 때

대성당이 공사 중이어서 전면을 가림막으로 가리고 있었다.

이 책에 소개된 사진으로 보니 그 웅장한 자태가 압도적이었을 것 같은데

여기도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 것 같다.

한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여기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는데 건식 프레스코화라 보존, 복원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이나

2차 대전때 폭격에도 살아남았다는 사연, 하루에 제한된 횟수에

한 번에 15명만 입장 가능하다는 등 세계적인 명작에 얽힌 여러 에피소드들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베네치아는 산 마르코 광장 등 유명 관광지들뿐만 아니라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베니스 영화제 등 현대적인 예술이 잘 조화를 이루는 도시였는데

물의 도시답게 그곳에서 곤돌라를 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렇게 이탈리아의 5대 핵심도시들만 간략하게 둘러본 책이지만 나름 중요한 포인트들을 놓치지 않고

망라한 느낌이 들어 나중에 다시 갈 기회가 있다면 참고하기에 좋을 것 같다.

물론 저자가 미술쪽에 전문가는 아닌 듯 보이고 한정된 분량에 많은 내용을 담다 보니

수박 겉 핣기 식이 된 점도 없진 않은데 대중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이탈리아를 사전답사하는 의미에선 괜찮은 책이었다.

전에 봤던 '파리 미술관 산책'과도 비슷한 설정의 책이라 할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론 예전의 이탈리아에서의 추억을 하나씩 꺼내볼 수 있게 해줘서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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