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 EBS <인문학 특강> 최진석 교수의 노자 강의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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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백가쟁명이라 불리며 수많은 사상들이 난립했다.

그 중에서 현재에도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양대산맥을 고르라면

단연 공자의 유가와 노자의 도가가 아닐까 싶다.

특히 조선시대 이후 유교사상이 지배했던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공자, 맹자 등의 유가사상가들이

득세하고 있는 반면 노자와 장자의 도가사상가들은 상대적으로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나도 노자에 대해선 학창시절에 배운 '무위자연'과 현실도피적인 사상이란

막연한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상황인데,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EBS에서 '인문학 특강'으로 다뤄진 최진석 교수의 노자 강의를 다룬 이 책은

기존에 노자의 사상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게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었다.


이 책에선 노자의 사상에 대한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가기 앞서

생각의 탄생과 생각하는 힘이 어떻게 역사를 바꿨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이 다른 동물을 지배하는 만물의 영장이 된 이유로 불을 사용한 것을 들고 있는데,

불에 익힌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소화에 에너지 사용을 줄이게 되고

강한 턱뼈와 근육이 필요하지 않게 되어 뇌가 발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구강 내부의 공간도 넓어지면서 혀 사용이 자유로워지게 되어

언어도 구사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인간의 삶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한편 혈연을 중시하는 태도는 인류가 태초부터 가져온 자연스런 본능이라 생각했었는데

이 책에선 생각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천명으로 봤던 은나라와 달리 주나라는 덕을 강조하게 되는데

신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던 세계관이 점차 인간에게 주목하게 된다.

천명을 천자가 독점하면서 생긴 비의성, 임의성, 주관성을 극복하기 위해

투명성, 보편성, 객관성이 확보되는 인간의 길인 도를 확립하려고 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상가가 바로 공자와 노자이다.

공자가 인간의 내면에서 영감을 얻고 '인'을 주장한 반면

노자는 자연의 존재형식을 사유의 원천으로 삼았다.

공자가 인간의 내면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주관성에서 탈피하지 못해 가치판단을 하게 되므로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에는 폭력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인간의 주관성에서 벗어나

자연의 객관성으로 나아가자는 것이 바로 노자의 사상이 공자의 사상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었다.

이렇게 공자와 노자의 사상이 극명하게 대립됨을 이 책을 통해 제대로 알게 되었는데

공자의 사상이 구별을 전제로 각자의 지위에 맞는 역할을 하는 것을 강조했다면 노자의 사상은

그런 구별을 타파하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면서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었다.

전에 읽었던 신영복 교수의 '강의'에서도 관계론을 중시했는데

이 책도 노자의 사상을 관계론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잘못 알고 있던 노자의 사상을 제대로 알게 된 부분이 많은데

특히 노자의 사상을 한 마디로 압축하는 '무위자연'의 '무위'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견고한 틀이나 방식에 갇힌 상태가 아님을 뜻했다.

'유위'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이 봐야 하는 대로 본다면, '무위'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보여지는

대로 보기 때문에 이념이나 기준과 같은 관념에 수동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세계의 변화에 따라 자발적이고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노자를 비롯한 도가의 사상을 현실도피적이라고 오해를 하는데 

오히려 어떤 잣대에도 얽매이지 않고 개방성과 자율성, 다양성을 맘껏 발휘하여

현실적인 성취를 이루는 것을 지향했다.

우리가 흔히 '대기만성'으로 잘못 알고 있는 말도 사실 '대기면성'으로 읽어야 맞다고 하는데

'정말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는다'고 해야 앞의 구절과의 관계에서 옳은 해석이라 한다.

즉 큰 그릇은 특정한 모습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말로 모든 걸 품어낼 수 있는 걸 의미하는 것임에도

엉뚱하게도 늦게 이뤄진다고 잘못 사용되고 있으니 우리가 아무런 비판과 검증도 없이

무작정 기존 지식들을 받아들였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 책을 통해 완전히 새롭게 알게 된 노자의 사상은

기존의 우리 사회의 병폐를 해소시켜줄 대안이 될 것 같다.

국가나 사회, 부모가 정해준 기준에 따라 무작정 따라하기 바빠서 자기 생각이라곤 없이 살아왔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부터 소중하게 생각할 줄 모르고 남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재단하며

고통스런 삶을 살아갔던 것은 전형적인 유가식 사고의 폐해였다.

공자식의 일반 명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노자식의 고유 명사로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자신에게

집중하며 자기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나간다면 각자의 자발성과 자율성, 책임감이

획일적인 기준에 따라 서열화시킨 병든 사회를 치유하는 대책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물론 우리 사회가 워낙 유가식 시스템이 확립된 상태라 결코 쉽진 않겠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도가식 시스템을 접목하고 궁극적으로 도가식으로 점차 개선시켜 나간다면

생존경쟁에 허덕이는 우리의 삶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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