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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북한 문화유산답사기 - 상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유홍준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유홍준 교수의 '한 권으로 읽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 나니 앞서 나왔던 책들 중 못 본 책을
보고 싶었다. 특히 북한편은 작년에 통일교육을 받으면서 나름 활용(?)을 했던 책이라 실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했다. 사실 전 정권때 북한과 잠시 분위기가 좋을 때 혹시나 북한을 갈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아 책으로나마 북한을
여행할 기회가 생긴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이 책은 유홍준 교수를 비롯한 네 명이 1997년 9월 북한 평양 일대의 문화유적을 답사한 결과물로서
김영삼 정권 말기 IMF 사태가 터지기 직전에 있었던 답사기이다. 이제 거의 30년이 다 되어 가는 옛날(?)
시점이다 보니 괜스레 그 시절로의 추억여행을 떠나는 기분도 들었다. 아무래도 북한이란 곳 자체가
비정상인 동네다 보니 뭔가 조심스럽게 불안한 느낌도 들 것 같은데 그래도 당시는 남북 사이의 분위기가
지금처럼 험악하진 않아서 그런지 나름의 여유와 유머가 있었다. 평양 대동강 일대의 대동문으로
본격적인 답사가 시작되는데 대동문은 평양성의 정문격으로 작년 리움 전시를 통해 북한의 국보 1호가
평양성이란 사실을 알게 되어 우리로 치면 숭례문(남대문)부터 답사를 시작한 셈이다. 연광정, 부벽부,
을밀대 등 대동강변과 모란봉 일대의 명승지들을 책으로나마 둘러보는 감회가 남달랐다. 다음으론
보통강 보통문을 가는데 여기는 북한 국보 제3호이다. 이렇게 북한의 핵심 문화재들을 소개하는 가운데
북한의 여러 흥미로운 얘기들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호칭 관련해서 흔히 알고 있는 '동무', '동지',
'아바이'가 쓰임새가 달랐다. '동무'는 친구나 손아랫사람의 이름이나 관직에, '동지'는 윗사람이나
나이든 사람의 이름이나 직함에 붙이는 존칭이고 동지라 부르기에 나이가 많으면 '아바이'라 붙인다고
한다. 우리가 존칭으로 흔히 쓰는 '님'은 오직 김일성 일가에게나 붙이는 극존칭(?)이고 '선생'은 체제
밖에 있는 사람 모두 이름이나 직함 뒤에 붙이는 우리로 말하면 '~씨'에 해당되었다.
북한 유적 중에는 동명왕릉이나 단군릉 등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복원이라 하지 않고 '개건'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즉 옛 모습대로 살린 게 아니라 현재의 입장에서 새로 세운 것이라는 건데 어떻게 보면 이게
더 맞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최대한 옛 모습을 재현해 복원하는 게 원칙이겠지만 그것조차 어려운
경우에는 솔직하게 현재 관점에서 재건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화재 이후 복원된 숭례문 같은
경우에도 논란이 있었지만 숭례문은 여러 자료가 많아 원래 모습대로 복원이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묘향산 일대도 답사를 하는데 서산대사는 "금강산은 수려하나 장엄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장엄하나
수려하지 못하지만 묘향산은 장엄하고도 수려하다'며 극찬하기도 했다. 보현사의 주지의 안내를 받으며
북한의 스님은 대개 대처승이라 하는데 오직 김일성 일가를 신적 존재로 우상화하며 종교보다 강력한
이데올로기 신앙을 가진 북한에 우리가 아는 종교가 제대로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후반부는
강서의 고구려 벽화무덤들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는데 국립중앙박물관 고구려실에 있는 강서대묘
모사도를 직접 관람하면서 그중에서도 현무도가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세계미술사 무대에
당당히 내세울 수 있는 우리 유물 10점 중 하나로도 강서큰무덤의 현무도를 꼽았는데 이를 두고 그보다
훨씬 전인 알타미라, 라스코 동굴벽화보다도 못하다고 질문하자 고구려벽화가 그려질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세계 최고였다고 반론한다. 이 부분은 정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평가였는데 역시 어떤
관점을 가지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음을 새삼 실감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북한의 여러 문화
유산을 직접 가볼 수 있는 날이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김정은 정권이 붕괴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할 것 같은데 이 책을 통해서나마 북한 평양 일대의 주요 문화재들과 북한 사람들의
언어생활과 생활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