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한정판 더블 커버 에디션)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알랭 드 보통의 사랑에 관한 3부작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우리는 사랑일까', '너를 사랑한다는

건' 을 예전에 읽었는데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사랑이라는 문제를

소설 형식으로 풀어내면서도 여러 가지 철학적인 문제들을 담아내서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오랜만에 사랑을 주제로 한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이 나온다기에 과연 이번엔 어떤 화두를 담아냈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는데 앞에 읽었던 책들에 비해 결혼과 육아 등 훨씬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건축가 라비가 커스틴과 일을 통해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담백하게 그리고 있는데

전에 읽은 작품들에 비하면 생각보다 압축적이고 큰 위기 없이 결혼에까지 이르렀다고 볼 수 있었다. 흔히 밀당이라고 부르는 남녀 사이의 줄다리기가 라비와 커스틴 사이에는 그다지 없었는데,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사귀는 사이가 되고 결혼이란 사회적 제도 속으로 편입되기까지

보통 많은 우여곡절과 아기자기한 사연들이 존재하겠지만 이 책에선 소설로서의 드라마틱한 설정보단

담담한 필치로 두 사람의 결합을 보여준다. 얘기가 진행되는 중간중간에 알랭 드 보통의 철학적 코멘트가

실려 있어 좀 더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 주었다. 이렇게 결혼에 골인한 두 사람의 신혼생활은 결혼 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들과 '아무것도 아닌 문제'들로 인한 신경전으로 미묘한 갈등이 이어진다.

당연히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던 남녀가 같이 살기 위해선 서로 맞춰가야 하는 부분들이 많을 것 같다.

결혼 전에는 콩깍지가 씌여 보이지 않던 부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습관

등은 자신이 사랑했던 그 사람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 사람일 수도 있는데 이는 상대방도 자신에게

똑같이 느끼는 부분들이라 웬만하면 상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결혼생활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이다. 부부 두 사람의 관계에서 아이들이

등장하자 모든 중심이 아이에게로 이동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부모가

되기 전에는 절대 모른다고 할 수 있는데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일인지 새삼 실감했다. 라비와 커스틴의 관계도 남녀간의 사랑하는 사이에서 아이를 키우는 육아공동체 관계로 전환하는데

자연스레 남자와 여자로서의 관계는 멀어지게 된다. 엄마, 아빠로서의 역할이 가정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지만 부부 사이의 관계도 중요한데 이 부분에서 상당수 부부들이 위기를 겪는 것 같다.

라비와 커스틴도 불륜 등으로 큰 위기를 맞지만 심리 치료 등을 받으면서 슬기롭게 극복해가는 데

역시 결혼생활이란 게 장밋빛으로 가득한 게 아닌 서로 다른 두 남자가 같이 살아가는 현실임을

잘 보여주었다. 전에 읽었던 두 작품이 남녀로서의 만남과 이별까지의 과정을 담은 연애 중심의

얘기였다면 이 책은 남녀가 결혼해서 살아가는 과정까지 담아내 훨씬 더 피부에 와닿은 내용이라

할 수 있었다. 일상의 철학자라 할 수 있는 알랭 드 보통은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사랑과 결혼의

실체를 소설 형식으로 잘 그려냈는데 사랑과 결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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