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1930년대 텍사스 동부의 한 마을에 살던 소년 해리는 여동생 톰과 함께 키우던 개 토비가

등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자 안락사시키기 위해 인근 숲 속으로 갔다가 차마 죽이지 못하고

돌아오던 중 강가에서 참혹한 상태의 흑인 여자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지역 경관 역할을 맡고 있던 해리의 아버지만 사건수사에 동분서주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흑인 여자의 죽음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러다 백인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자 백인들이 광분하면서

용의자로 체포되었던 흑인 남자를 내놓으라고 해리의 아버지를 압박하는데... 

 

인종차별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민감한 문제이지만 1930년대라면 그 정도가 상상을 초월했을 것 같다.

비록 남북전쟁을 치르면서 법적으로는 흑인이 노예에서 해방되었지만 흑인에 대한 차별은

오늘날까지 그 정도만 조금씩 약해졌을 뿐 변함없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도 흑인 여자가 죽었을 때는 마치 동물이 죽은 것처럼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다가

백인 여자가 죽자 백인들 사이에 난리가 나서 관련된 흑인을 마녀사냥으로 죽이려고 난리를 친다.

그나마 흑인에 대한 편견이 없던 해리의 아버지가 KKK단 등 백인들의 난동을 가까스로 제지하지만 혼자서 집단적인 광기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20세기의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였는데 최선을 다했지만 폭동을 막지 못했던 해리의 아버지는 충격을 받아 술독에 빠진다. 이렇게 사건이 마무리될 거라 기대했지만 미스 매기마저 살해당하고 한 번 시작된 살인은 멈출 줄을 모르는데...

 

사실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져서 추리소설의 느낌도 났지만 1930년대의 심각한 인종차별의

분위기를 배경에 깔고 있어 단순한 미스터리로 치부하기 힘든 작품이었다.  

전에 읽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에서도 흑인이란 이유만으로 누명을 쓰는 얘기가 나왔는데

이 책에선 한 발 더 나아가 직접 린치를 가하는 끔찍한 장면이 그대로 등장한다.

지금도 여러 가지 차별들과 사람들의 바뀌지 않는 인식이 존재하지만 과거에 흑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웠던 일이었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해준 장면이었다. 

무고한 사람을 집단광기로 죽이고 나서도 연쇄살인사건이 계속 일어나자 마을 분위기가 살벌해진

가운데 해리의 여동생 톰마저 납치되자 절체절명의 순간에 해리가 간신히 톰을 구해낸다.

그리고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는 전혀 뜻밖의 인물이었는데 범인을 응징할 수 있는 기회에 머뭇거리다

오히려 해리와 톰이 역습을 당하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된다. 다행히 또 한 명의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등장해 이들 남매를 구해내는데 우리가 사람에 대해 얼마나 편견을 가지고 대하는지 잘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었다. 1930년대의 인종차별이 만연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지 않았다면 여자들을

상대로 한 전형적인 연쇄살인마 사건이라 규정할 수 있었는데 그 당시의 심각한 사회문제와 엮이다

보니 사회파 미스터리의 성격이 짙은 작품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등장하는 인종갈등의 문제를 보면

과거를 배경으로 한 극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지만 오늘날에도 잘못된 편견과 집단광기가 얼마나

끔찍한 사건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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