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천재 열전 -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인문적 세계를 설계한 개혁가들
신정일 지음 / 파람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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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조선을 걷다'라는 책을 통해서도 조선시대에 맹활약을 한 인물들의 삶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조선의 천재들만 모아 그들의 인생을 다루는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저자 이름이 낯설지 

않아 확인해 보니 예전에 읽었던 '신정일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의 저자였다. 이 책에서는 총 9명의

조선시대 천재들을 다루고 있는데 익히 알고 있던 인물들도 있었지만 잘 몰랐던 인물들도 더러 있었다.


시대 순으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첫 번째 중인공은 생육신 중 한 명인 김시습이었다. 김시습의 천재성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8개월 만에 스스로 글을 알았다고 하고 '시습'이란 이름도 '배우면 곧 익힌다'는

의미로 최치운이 지어준 이름이라 하니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신동이라는 소문이 대궐에까지

퍼져 세종이 김시습을 승정원으로 불러 박이창에게 확인시켰고 비단 50필을 내려주면서 직접 가져가게

하니 김시습이 비단의 끝과 끝을 이어 묶어 허리에 잡아메고 갔다고 한다. 그야말로 떡잎부터 남달랐던

김시습은 세조가 일으킨 계유정난과 이어진 단종 폐위 사건을 보며 벼슬길에 안 나가고 세상을 떠돌며 

살게 되었으니 세조의 쿠데타가 아까운 인재 한 명을 낭비시켰다고 할 수 있다(그래서 최초의 한글소설

금오신화가 나올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5천원권의 주인공 이이는 그의 어머니와 세트로 자주 

언급되는데 아홉 번 과거를 보아 모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렸으니 요즘 고시 3관왕 정도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수준이었다. 서인의 영수로 여겨졌지만 서인과 동인 사이를 잘 조율했던 그가

49세로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정쟁이 극한으로 치닫기 시작했고 그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하며 경고했던

임진왜란이 터지면서 그의 부재를 절감하게 된다. 송강 정철은 국어 교과서에서 여러 가사작품들을

만나서 친숙한 인물인데 천재라고는 생각 못했지만 이 책에선 시인으로 천재로 취급해준 것 같다.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겨 조선시대 최고의 문장가라 여겨지지만 독선적인 성격 탓에 서인의 두목 역할을

하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된다.


이산해는 조금은 낯선 인물인데 성호 이익이 김시습과 함께 조선의 천재로 인정했다고 한다. 정치적으론

동인으로 정철의 맞상대였다고 할 수 있는데 정철과는 달리 성품이 온화한 편이어서 동인들이 대거

화를 당한 기축옥사에서도 무사했다. 유일하게 여성으로 선정된 허난설헌은 '조선을 걷다'에서도 자세히

살펴봐서 복습이라 할 수 있었는데 여성으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지만 않았으면 좀 더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준다. 신경준도 거의 잘 몰랐던 인물인데 '산경표'를 완성한 

실천적 천재 지리학자로 김정호 이전에 최고의 지리학자라 할 수 있었다. 정약용은 너무 유명한 인물이라

새삼스런 측면이 있었고, 김정희도 정약용과 같이 모진 유배생활 속에서 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 등

엄청난 작품들을 남겨 오히려 유배생활이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황현은 

한일합병이 되자 죽음으로 저항했던 인물이었다. 이렇게 9명의 조선 천재들을 보면 대부분 평탄한 

삶을 살았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천재라 할 정도의 능력을 가졌어도 시대를

잘못 만나면 제대로 꽃 피우지 못하게 되는데 개인적으론 불운했을지라도 자신들의 역량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과 책들로 영원히 이름을 남기지 않았나 싶다. 조선의 대표적 천재 9명의 삶을 통해 굳이 

천재가 아니어도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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