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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화가 - 한국 문단과 화단, 그 뜨거운 이야기
윤범모 지음 / 다할미디어 / 2021년 5월
평점 :
얼마 전에 '클래식 인 더 뮤지엄'이라는 책을 통해 음악과 미술의 환상적인 앙상블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는데 예술 분야 중 하나인 문학이 빠져 좀 섭섭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이번에는 책 제목대로 문학과
미술의 인연을 살펴볼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그것도 일제 강점기 이후 현재까지 한국 문단과 화단을
넘나들며 이어진 교류의 흥미진진한 얘기들을 담아내고 있어 과연 누가 누구와 특별한 인연을 갖고
어떤 사연들이 있을지 궁금했다.
총 17개의 사연들로 한국 문단과 화단 사이의 얽히고 설킨 인연을 잘 보여주는데 먼저 시대를 앞서간
여장부 화가 나혜석과 그녀가 진정 사랑했던 시인 최승구의 애달픈 얘기를 들려준다. 나혜석은 솔직히
이름만 들어봤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그녀가 얼마나 시대를 초월한 행보를 보인 선각자(?)인 줄 잘
알 수 있었다. 20세기 초중반 여자들의 활동에 여러 제약이 있던 시절 근대기 최초 여성 유화가란 호칭이
붙은 그녀는 유명 남성 작가들의 관심을 받았는데 일본 유학생 시절 열애를 했던 대상이 바로 최승구
라고 한다. 최승구가 요절하면서 두 사람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는데 최승구가 요절하지만 않았다면
나혜석이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박제된 천재 이상과 관련한 일화들은
그 자신이 시인이자 화가여서 더 흥미로웠다. 이상의 아내 변동림은 이상의 사후 김환기의 부인이 되는
김향안이라고 하니 그들의 묘한 인연이 놀라웠는데 이렇게 사연 많은 김환기는 노시산방의 주인인
김용준과의 인연 등으로 이 책에서 두 번이나 주연으로 등장한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배웠던 카프의 주역 김복진도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인물로 그의 몰랐던
활약상을 제대로 알게 되었고 100세 시대임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김병기도 이상, 백석, 이중섭 등
당대의 여러 문인, 화가들과의 특별한 사연들을 들려주었다. 결벽증이 심했던 백석은 그가 광화문에
나타나면 길거리가 환해졌다고 할 정도의 미남이었다고 하고, '향수'로 유명한 정지용과 화가 정종여는
신문에 화문기행을 연재하면서 남해 여행을 떠났다가 6. 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운명의 장난처럼 월북
예술가의 명단에 함께 등장하게 되었다. 박수근과 박완서의 특별한 인연은 전에 읽었던 '로자의 한국문학 수업 : 여성작가편'을 통해 대략 알게 되었지만 이 책을 통해 심화학습을 하게 되었는데 막연히
알던 박수근에 대해 그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시인 김남조의 남편 김세중이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만든 사람이란 사실이나 '갯마을'로 유명한 소설가 오영수의 아들 화가 오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까지 이 책을 통해 한국 문단과 화단 사이의 거리가 정말 가깝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요즘같이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시대에 한국 문단과 하단의 유명 작가들에게 이러한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있었는지는 전혀 몰랐는데 그들의 작품과 삶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이 책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우리 문학과 미술에 대해서는 관심이 좀 부족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단순히 작품 소개만 하는 것보다 작가들의 흥미로운 사연들을
소개하는 것도 우리 문화계를 좀 더 풍성하게 하는 일임을 잘 보여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