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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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작 중 하나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클로즈드 서클의 고전이다 보니 이후

여러 작가들이 이를 모방(?)한 작품들을 쏟아내었다. 전에 읽었던 나쓰키 시즈코의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도 오마주 내지 패러디 버전이라 할 수 있었고, 이 책의 띠지에서 언급하고 있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도 그 영향 하에 있는 작품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십각관의 살인' 이전에

이 책이 있었다고 해서 과연 어떤 작품일까 궁금하고 기대가 되었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의 저자인 

니시무라 교타로와는 초면이 아니었다. 제34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종착역 살인사건'

저자였는데 첫 페이지부터 마치 엘러리 퀸이 국명 시리즈에서 '독자에의 도전'을 하는 것처럼 대놓고

이 책의 메인 트릭이 쌍둥이를 활용한 것이라고 알려 주고 시작한다.


쌍둥이 트릭이라고 하면 도진기 작가의 '악마의 증명'이라는 단편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었는데, 이 

책에서도 딱 그런 설정으로 쌍둥이 트릭이 등장한다. 쌍둥이인 고시바 가쓰오와 고시바 도시오가 대놓고

강도짓을 하는데도 둘 중 누가 범행을 한 것인지를 밝히지 못해 경찰들이 속수무책인 상황이 되고 만다.

가쓰오 형제들이 도쿄에서 강도 행각을 벌이고 있는 동안 도호쿠의 외딴 호텔 관설장에는 무료 숙박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다. 하야카와라는 주인 혼자 운영하는 관설장에 초대받은 6명은 아니나

다를까 폭설로 외부와 고립된 상태에서 한 명씩 차례대로 죽어나가는 상황을 맞는다. 한 명씩 죽을 

때마다 볼링핀이 없어지는 등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설정을 최대한 가져와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사실 관설장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보다는 오히려 도쿄에서 가쓰오 형제가 벌이는 강도 행각이

더 흥미진진했다. 얼굴을 드러내고 강도행각을 해도 쌍둥이라 특정을 못하니 뻔히 알고도 당하는 

상황이 계속되는데 훔친 돈도 우편 등의 기발한 방식으로 경찰의 추적을 피한다. 수사의 돌파구가

열리게 되는 건 쌍둥이들에게 범행을 지시했다는 편지가 오면서인데 경찰들을 갖고 노는 쌍둥이 

범죄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자와 관설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쇄살인사건의 연관성은 마지막에 

가서야 드러난다. 결국 관설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죽고 경찰을 비롯한 언론, 피해자 가족들이 

쌓인 눈을 뚫고 현장을 찾아오는데, 피해자가 남긴 유서는 물론 피해자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다가

피해자들이 죽을 때마다 남겨진 카드에 있던 이상한 마크의 비밀을 발견하게 되면서 서서히 거대한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의 범행 동기도 좀 특이했지만 이 책에서 

범인의 동기는 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과연 죽을 만한 짓을 했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충분히 들 수 있었는데 처절한 복수의 대가로 엉뚱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으니 결코

정당화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대놓고 쌍둥이 트릭을 쓴다고 선언하면서 흥미진진한 얘기를 선보인

이 작품은 동기 등 좀 작위적인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다. 전에

봤던 '종착역 살인사건'도 인상적이었는데 이 책까지 읽고 나니 니시무라 교타로도 믿고 볼 수 있는

작가로 등록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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