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증명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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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미스터리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한 명 꼽으라고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도진기 작가다. 판사를 그만두고 이제 변호사 개업을 했지만 법조인답게 그의 작품들은

치밀한 논리와 구성을 자랑하며 특히 법률적 쟁점들을 사건 속에 잘 녹여내는 재주가 있다.

지금까지 그의 대표적인 두 주인공인 어둠의 변호사 고진과 백수 탐정 진구가 등장하는 여러 작품들을

만나봤었는데 이 책은 그들이 등장하지 않는 기발표 7편과 미발표 1편을 모아놓아

그의 직업적 변신에 맞춰 그동안의 작품활동을 정리하는 의미를 가졌다.

 

내가 이미 봤던 작품도 두 편이 있었는데 표제작인 '악마의 증명'은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4'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었는데 다시 봐도 어떻게 이런 트릭을 고안해냈는지 새삼 놀라웠다.

'시간의 뫼비우스'도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5'를 통해 왠지 작가 본인의 자전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었는데 역시나 '작가의 말'에서 본인이 자백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고백한다. 나머지 작품들은 처음 만나는 작품들이었지만 예상 외로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정글의 꿈'은 암선고를 받고 남은 삶이 얼마 되지 않은 노인이 자신이 직접 만든 정글 모형을 가지고

죽기 전에 못다 이룬 꿈을 이루는 얘기인데 마지막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반전을 보여줬다.

'선택'은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외과의사인 여자가 어린 딸과 함께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에서 여러 정황상 메스로 자신의 손목을 그어 자살한 것으로 경찰이 결론을

내려 보험금을 받지 못하자 '악마의 증명'에서 검사로 활약한 호연정이 변호사로 등장해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수사결과였지만 여러 가지 정황을 극복하지

못해 자살로 종결될 뻔한 사건을 파헤쳐 안타까운 모정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게 만든 변호사

호연정의 활약이 돋보였는데 '작가의 말'을 보면 아쉽게도 더 이상 그녀를 만나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외딴 집에서'나 '죽음이 갈라놓을 때'는 전혀 몰랐던 작가의 오컬트적 취향이 물씬 풍긴 작품이었는데

본격추리물에만 능할 줄 알았던 도진기 작가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에마 오르치의 작품에서 제목을 빌려온 '구석의 노인'과 록 그룹 퀸의 노래에서 영감을 얻은

'킬러퀸의 킬러'까지 끝까지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반전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도진기 작가의 작품 세계가 생각보다 훨씬 넓은 스펙트럼을 가졌음을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변호사가 되어 더 바빠져 작품을 쓸 시간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가 전업작가로서도 충분히 수입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제 작가 개인적으로도 터닝포인트를 지난 시점인데 앞으로는 과연 어떤 작품들로 독자들을 

즐겁게 할 것인지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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