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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막이 내릴 때 (저자 사인 인쇄본) ㅣ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추리소설계를 대표하는 작가를 꼽으라고 하면 여러 사람들이 떠오르지만 가장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작가를 꼽으라고 하면 거의 히가시노 게이고로 수렴되지 않을까 싶다. 국내에서도
'용의자 X의 헌신'을 필두로 해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보유하고 있어
왠만한 국내 작가 이상의 인지도를 가진 작가인 데다 끊이지 않고 신간들이 나오다 보니 이 사람은
책을 기계처럼 막 써내는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이번에도
그의 대표 캐릭터 중 한 명인 가가 형사를 등장시켜 기이한 살인사건 속에서 숨겨진 슬픈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얘기의 시작은 가가 형사의 친모인 유리코의 죽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가출한 유리코가 죽은 후 그녀의 유품을 찾아가라는 연락을 받은 가가 형사는 유리코와 함께 술집을
운영했던 야스요로부터 유리코가 사귀던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 남자는 정체도
행방도 묘연한 상태로 10년 이상의 시간이 훌쩍 지나고 만다. 한편 도쿄 변두리의 한 아파트에서
타살로 추정되는 오시타니 미치코라는 여자의 시신이 발견되고, 집 주인인 고시카와 무쓰오의 행방도
묘연한 상태에서 하천 둔치에 비닐로 지어진 오두막에서 발생한 화재로 불에 탄 남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서로 무관한 사건들로 보였지만 이들 사건들 사이에 접점이 조금씩 밝혀지고 가가 형사가
직접 사건 수사에 관여하면서 사건의 중심에 연극 배우이자 공연 기획자인 아사이 히로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누구에게나 말할 수 없는 비밀이나 사연이 있고 과거가 있기 마련이지만 히로미에게는
확실히 뭔가가 있음이 쉽게 짐작이 갔는데 과연 그녀의 과거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의
관계, 그리고 가가 형사와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가가 형사를 중심으로 한 경찰의 수사망이
조금씩 그녀를 조여가기 시작한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왠지 예전에 읽었던 '백야행'과 비슷하단
느낌을 받았는데 부모가 어떠냐에 따라 한 가족의 운명이 요동칠 수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드러난
사연과 진실을 보면 그런 상황에 처하면 누구라도 쉽게 헤어나오기 어려울 것 같은데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의 기구한 삶이 참 안쓰럽고 딱한 심정이었다. 이 책이 가가 형사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라고 하는데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가가 형사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그가 더욱 멋진 형사로 활약하면서 달달한 로맨스(?)까지 보여줄 것 같은 모종의 기대감이 생겼는데 너무 쉽게 가가 형사를 은퇴(?)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왠지 가가 형사와 작별하는 느낌이 들진 않았는데 죽었던 셜록 홈즈가 돌아오듯이 가가 형사도
다시 독자들 품으로 돌아올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