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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평점 :
환상적이었습니다. 5편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은 하나의 주제로 통합되며 멋지게 어울어집니다.
과학이 가져온 번영과 파괴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실존 과학자들의 흥미롭고 다채로운 이야기에 픽션을 곁들여서 선보입니다. 과학자들의 고뇌와 광기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과학 바깥에서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출 때 어떤 파괴와 종말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무관심합니다. 원자와 우주의 원리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고 알아가고 있지만 인간의 광기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란츠 하버는 화학적으로 질소를 만들어 냄으로 인해서 인류에 번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질소 비료 덕분에 농업생산성이 높아져 수억명의 사람이 기근을 면했고 인구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그가 만든 독가스는 전쟁에서 수백만명을 희생시켰습니다.
독가스의 위력은 너무나 강해서 독가스가 지나간 자리에는 사람은 물론이고 곤충을 비롯한 어떤 생물체도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계 1차 대전이 끝나고 전쟁국들은 다시는 독가스를 사용하지 말자고 합의합니다.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말자고 합의할 수는 없었을까요? 수많은 부상자를 몰고 온 싸움이 끝나고 "자, 우리 앞으로는 싸울 때 눈찌르기, 낭심차기는 하지 맙시다." 라고 전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합의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아마도 세계 3차 대전이 끝나면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고 합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합의할 사람들이 남아있다면요.
블랙홀을 처음 발견한 슈바르츠실트의 고뇌.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깨달은 하이젠베르크의 고뇌를 간접적으로 나마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포함해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직관과 너무도 다른 세상의 진리는 아인슈타인 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상대성이론에는 핵폭탄이 딸려 왔습니다. 양자역학에는 어떤 무시무시한 패키지가 따라올까요?
파괴적 종말 직전에 번영을 맞이하는 레몬나무, 연어의 이야기를 보면서 지금 인류의 번영이 종말의 전단계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과학을 좋아하는 제게는 행복한 선물이었습니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번역되어서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