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었던 책인지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 중간에 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좋은 책은 다시 읽어도 좋다. 어딘가에서 읽었는데 누군가는 '2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1번 읽을 가치도 없다' 라고 했다.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내가 2번 이상 읽은 책들은 정말 좋아하는 책들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2번 이상 읽은 책은 평생 읽을 가치가 있다."

 

 

 

 

 

 

 

 

 

 

 

 

 

 

 

 <돈 좀 굴려봅시다>는 추천의 글을 쓴 홍춘욱씨의 책이다. 이 책은 탈레브의 자산 배분 전략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책이다. 한국 주식과 미국채에 대한 분산 투자 전략이 담긴 책이라 하니 꼭 읽어보고 싶다. 탈레브는 90%는 안전 자산인 미국국채에 투자한다고 한다. 미국국채만큼 안전한 자산이 또 있을까? 미국채 투자에 대해 알아와야겠다.

 

 

 아래에는 탈레브의 사상의 뿌리와 그의 사상에 대한 요약이 담긴 글이다.

 

 다른 한편에는 인류를 비극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원래부터 한계와 결함이 있으며, 개인 및 집단적 행동에 앞서 이런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으로 칼 포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 애덤 스미스, 허퍼트 사이먼,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 투기꾼 조지 소로스 등이 있다. 특히 찰스 샌더스 퍼스는 가장 간과되는 인물인데, 그는 100년쯤 너무 일찍 태어났다(그는 '교황 무오설'의 반대 개념으로 과학적 '오류주의' 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이 책에 담긴 생각이 비극적 부류에 속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원래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애써 결함을 고치려고 수고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결점이 많은데다 자연 환경과도 어울리지 않아서, 이러한 결함의 주변을 맴돌 뿐이다. 이것이 내가 (행운에 속지 않는) 두뇌와 (행운에 완전히 속아 넘어가는) 감정 사이에서 평생 치열한 싸움을 벌인 끝에 확신하게 된 사실이다. 회의적 경험론자로서 나는 세상 누구보다도 설교만 해대는 도덕 선생님을 경멸한다. 효과도 없는 기법을 그들이 왜 맹신하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은 우리의 행동을 유효하게 통제하는 것은 감정보다는 인식 기관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런 주장이 완전히 틀렸음을 현대 행동과학을 통해서 확인할 것이다. -p36

 

 나도 한 때는 도덕 선생님처럼 계몽과 설교의 힘을 믿었다. 물론 그것이 전혀 쓸모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계몽과 설교로 인간의 행동을 바꾸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그리고 그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훨씬 편해진다.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는 몹시 재미있는 책이라고 한다. 이 책도 여기저기서 많이 소개되는 책이라 얼마나 재미있을지 궁금하다. 탈레브는 비행기에서 이 책을 읽으며, 너무 자주 웃음보를 터뜨려서 승객들이 그를 쳐다보며 수근댔다고 한다.

 

 

 아래는 모든 사람들이 명심해야 될 말이다. 과학자 뿐만이 아니라.

 

  이들은 대담한 아이디어가 있지만,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이들은 우선 자신의 아이디어가 틀리지 않았는지 확인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추측을 반박하려고 대담한 추측과 엄격한 검증을 시도한다. -p175

 

 한의학은 비과학적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상 과학이 무엇인지 모르며 비과학적인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과학적인 사고를 잘 못한다.) 비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한의사들이 있을 뿐이다. (비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의사도 똑같이 존재한다. 나는 거의 같은 비율일 것으로 예상한다) 한의학 자체는 충분히 실험으로 검증 가능한 학문이다. 침의 효과나 한약의 효과 모두 이중맹검 실험을 통해 검증 가능하다. 아직 본격적인 연구들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계속 연구되고 있고 효과들이 입증되고 있다. '증거가 없다' 고 해서 '없음의 증거' 가 되지는 않는다. 부디 이것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살인용의자의 살인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해서 그 용의자가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증해주지는 못한다. 물론 법정에서는 무죄가 선고 되겠지만 그 사람이 살인자인지 아닌지를 100% 확신할 수는 없다.  

 

 

 

 

 

 

 

 

 

 

 

 

 

 

 

 

 

 

 

  

 

 

 

 

 

 

 

 

 

 

 카프카의 소설들도 항상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보지 않는 소설 중 하나이다. 그의 명성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아직 <변신> 밖에 보지 못했다. <심판>, <성> 등의 책들은 언젠가 꼭 보고 싶은 책이다. 삶은 부조리하다. 카프카의 소설은 그것을 보여준다.

 

 

 아마 아래의 글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사람들이 내게 어떻게 처신해야 한다며 훈계할 때 가장 화가 난다.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아는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매일 치실로 치아 사이를 청소하고, 사과를 먹고, 운동을 해야 한다는 따위의 낡아빠진 설교를 늘어놓는 멍청한 사람을 보면 넌더리가 난다. 이는 실적에서 소음 부분을 무시하라는 말과 같다. 그러나 소음을 무시하려면 우리가 단지 동물에 불과하므로 설교가 아니라 저급한 요령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p287

 

 나 역시 그렇다. 나도 어떻게 처신해야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나쁜 습관 탓에 그렇게 하기가 무척 힘들다. 올바르게 처신하기 위해서는 항상 매순간 의식해야하고 노력해야 한다.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특히 청소와 정리정돈이 내겐 그렇다. 자기 전에 스마트 폰을 보는 습관도 그렇다.) 그런데 나도 환자 분들에게 낡아빠진 설교를 늘어놓고 있다. 걷기 운동을 하세요. 스트레칭을 자주 하세요. 음식을 천천히 꼭꼭 씹어드세요. 물론 멍청한 설교라는 것을 나도 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하지만 알고 있더라도 도덕적 의무감(이 또한 감정이다) 때문에 이런 설교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아래는 매우 멋진 글이라 꼭 소개하고 싶다. 인생에 지침으로 삼을 만하다. "품위를 지키라."

 

  서사시의 영웅들은 결과가 아니라 행동으로 평가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우리가 아무리 정교하게 선택하고, 운을 잘 지배할 수 있다고 자만해도 결국 최후는 운이 결정할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해결책은 품위뿐이다. 품위란 환경에 직접적으로 얽매이지 않고 계획된 행동을 실행한다는 뜻이다. 그 행동은 최선이 아닐 수도 있지만, 분명히 최상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이다. 억압 속에서 품위를 유지하라. 이는 아무리 보상이 크더라도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태도다. 또는 체면을 지키려고 결투를 하는 것이다. 배우자감에게 이렇게 구혼할 수 있다.

 "나는 당신에게 반했소. 당신에게 완전히 사로잡혔소. 그러내 내 품위를 떨어뜨리는 짓은 하지 않겠소. 당신이 나를 조금이라도 모욕한다면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오." -p302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의 <세네카 삶의 지혜를 위한 편지>는 탈레브가 주위 동료 들에게 나눠준 책이라고 한다. 위안을 주면서도 놀랍도록 쉬운 책이라고 한다. 세네카의 책들을 읽다가 요즘 안 읽고 있는데 다시 읽어보고 싶다.

 

 

 아래의 글은 내게 많은 교훈을 준 글이다. 앞으로는 나도 효율성보다는 불확실성을 즐겨야 겠다.

 

  일정을 조금만 무작위로 바꾸면 지나치게 효율성을 높이려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불확실성을 조금만 더하면 시간 압박을 잊어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그는 극대화가 아니라 충족을 추구하게 된다. 행복에 관한 어떤 연구에 따르면, 최적화를 추구하면서 자신을 압박하는 사람들은 즐기는 동안에도 어느 정도 고통을 받는다. -p314

 

 혹시 당신은 어플로 버스 도착 시간을 일일이 확인하는지? 나는 그렇다. 시간 낭비를 싫어하기 때문에 최적화 효율성을 지나치게 추구한다.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시간을 확인하고 뛰기도 한다. 그런데 실상 그 버스의 배차 간격은 5~7분인 경우도 많다.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 느긋하게 주위를 구경하며 걷다가 정류장에 도착해도 기다리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닫는 것은 항상 즐겁다.

 

 

 

 나는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주는 책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비판하기는 어렵다. 비판 받는 사람의 마음을 해칠까 두렵기 때문이다. 때문에 성인이 되면 주위에서 비판을 받기가 힘들다. 우리는 과연 비판받지 않을 만큼 완벽한가? 나의 어리석음을 비판해주는 탈레브가 고맙다. 멍청한 사람이라 말해줘서 고맙다. 품위가 없다고 말해줘서 고맙다. 멍청하고 품위없는 사람이라 비판받고 싶은 분께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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