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스완>의 저자 니콜라스 나심 탈레브의 책 <안티 프래질>을 읽고 있습니다. <블랙스완>은 2008년 금융위기를 예언한 책입니다. 세네카는 탈레브가 예찬한 로마 시대의 스토아 철학자입니다. 세네카의 철학이 궁금해서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처럼 모든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무한한 존재라도 된 것처럼 온갖 것을 갈구한다. -p34

 

 세네카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유한한 삶을 이야기합니다. 곧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필연적으로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서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죽음을 멀리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혹은 그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매사에 죽음을 걱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지만 삶을 죽음에 비추어 보는 것은 삶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유익한 일입니다.

 

 세네카는 어떤 것이 시간낭비인지 어떤 것이 인생을 잘 사는 것인지 자신의 생각을 말해줍니다. 그에게 동의하는 사람은 금욕주의자 일 것이고 부정하는 사람은 쾌락주의자 일 것입니다. 지나치게 단순한 이분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먼저 술과 욕정에 모든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이들보다 더 어리석은 것에 몰두한 자들이 있을까? 야망이라는 헛된 꿈에 사로잡힌 자들만 해도 겉보기에는 그럴싸해 보인다. 이렇듯 탐욕이나 화, 혹은 부당한 증오심과 전쟁에 집착하는 자들의 이름을 열거해보면 호전적이라는 변명의 여지라도 있을 텐데, 자기 발로 욕정에 완전히 굴복해버린 자들의 불치병은 그저 불명예스러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p55

 

 술과 욕정을 순간적인 쾌락으로 바꾸어도 세네카의 의도에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너무 쉽게 순간적인 쾌락에 빠져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스트레스 해소라는 핑계로 말입니다. 당장의 스트레스가 해소될지는 모르나 장기적으나 본질적으로나 올바른 해법은 아닙니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해결되지 않으며 낭비된 시간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래 글 역시 시간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글입니다.

 

  인간적인 과오를 완전히 초월한 사람들만이 자기 수명을 어디에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들이 아주 오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스스로를 위해 아낌없이 바치기 때문이다. 하릴없이 흘려보내거나 빈둥거리는 시간, 타인의 손에 좌우되는 시간 따위는 전혀 남겨두지 않는다. 그것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바꿀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기에 애초에 주어진 시간만 경제저으로 관리한다.

 그런 사람들은 본인이 가진 것에 충실하고 만족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시 시간을 많이 빼앗긴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p59

 

 도움을 받는 데 익숙한 사람은 여가를 즐기지 못한다

 

 편한 안락의자에 앉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남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절대 안 되는 것처럼 구는 사람들이나 목욕할 시간, 수영할 시간, 저녁을 먹을 시간까지 누군가 챙겨주어야만 하는 사람들도 여가를 즐긴다고 볼 수 없다. 그저 정신적으로 무력하고 나약해져서 스스로 배가 고픈지도 모르는 사람들일 뿐이다.

 이렇듯 남의 도움을 받는 데 익숙해진 나약한 사람들은 욕조에 앉아 있다가 안락으자로 옮겨지고 나서야 "내가 자리에 앉은 건가?" 라고 되묻는다고 한다. 자기가 의자에 앉은 건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진짜 살아 있고 무엇인가를 보고 있으며 여가를 즐기는 것일까? 정말 몰랐을 수도 있고, 아니면 모른 척했을 수도 있지만 둘 중 어느 쪽이 더 불쌍한지 모를 정도다. -p97

 그런 자들은 실제로 수많은 일들을 망각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망각한 척하기도 한다. 아마도 악덕을 행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근거라 생각하고 즐기는 모양이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안다면 남들 눈에 천박하고 경멸스러워 보인다는 것도 알 수 있을 텐데. -p98

 

 이런 자들은 진정 여가를 즐기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말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 그들은 병든 것이고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본인 스스로 여가를 즐기고 있다고 인식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여가다. 남의 말을 들어야만 본인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만큼 반쪽짜리 인생이라면 대체 언제쯤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p99

 

 뜨끔한 글이었습니다. 저는 집안 일이나 여타의 생활에 게으릅니다. 다행이 현재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처지는 안되지만 과거에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데 익숙했습니다. 그것이 습관이 된 탓인지 저는 여가를 잘 즐기지 못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 처럼 누군가의 도움없이 자신의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이 여가를 잘 즐기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여가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세네카의 답을 들어봅시다.

 

  철학을 위해서 시간을 할애하는 자들만이 진정 여가를 즐긴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살아 있는 것이다. 그들은 주어진 인생 여정을 잘 지켜낼 뿐만 아니라 한 해 한 해를 더하면서 살아간다. 또 지금까지 보내온 오랜 세월들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감사하게도 다양한 학파를 창시한 철학자들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양한 지침을 정리해두었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나올 수 있었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것들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우리는 온갖 세기들을 만끽할 수 있으며 그를 행해 다가갈 수 있다. 마침내 인간의 나약함으로 인한 좁은 경지를 벗어나 고매한 정신을 터득하기 위해 저 광활한 시간 속을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p103

 

 여가는 즐기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겠지만 세네카는 철학을 가장 우선시했습니다. 세네카는 철학이야말로 인생을 잘 살기 위해 그리고 지식을 쌓고 고매한 정신을 터득하기 위한 즐거운 여가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죽음과 삶에 대한 세네카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그는 네로 황제의 가정교사였습니다. 네로 황제는 세네카에게 아내와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자살을 명합니다. 세네카는 소크라테스에 비견될 정도로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기에 아래의 글은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은 줍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절대로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없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스스로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고 주어진 조건에 맞추어 사는 사람은 강인한 정신력으로 단련되어 언제 어디서 벌어질지 모르는 일들에 맞설 수 있다. 언젠가 자신에게 벌어질 수도 있는 일에 대비함으로서 엄청난 불운으로 인한 충격을 경감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항상 불운에 대비하고 있는 사람은 막상 큰일이 닥쳐도 크게 놀라지 않지만 무사태평하게 운이나 바라며 안일하게 사는 사람은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다.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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