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이다.
오늘 새로운 독서모임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친한 형과 그 지인들이 함께 하고 있는 모임이었다. 다들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었다. 배울 점도 많았고 좋은 책 소개도 받고 자극도 많이 됐다. 요즘 많이 나태해져서 예전만큼 책을 많이 읽지 못하고 있다. 나태해진 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을 거의 읽은 상태에서 오늘 모임 전에 뒷 부분을 마저 읽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읽었는데 밥 먹다 울뻔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되도록 울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래저래 할 이야기가 참 많은 책이다. 다음에 리뷰를 쓰면서 이야기하고 싶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여러 각도에서 비판하는 분들이 많다. 이 부분도 후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은데 작가의 의도를 벗어난 비판도 많아 보였다. 흔한 비유로 달을 가리켰는데 손가락만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채식주의자>는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 책이다. 이 부분을 다루지 않은 비판은 꼬투리 잡는 듯한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어쨌든 <소년이 온다>를 읽고 한강 작가를 더 이해할 수 있었고 더 좋아하게 되었다. 앞으로 그녀의 책들을 더 읽어보고 싶다. 비록 그녀의 소설을 읽는 것이 힘들고 괴롭더라도.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p95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을 짐승과 다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수많은 대답이 나올 수 있다. 그 대답들은 모두 상대적이고 단편적인 내용일 수 밖에 없다. 인간도 결국 동물에 불과할 뿐이고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존재다. 하지만 이런 대답만으로는 왠지 불편하다. 빌어먹을. 어느 페미니스트의 말이 생각난다. 제발 최소한 다른 사람을 살해하진 말자. 이것 하나만이라도 지키자.
수업 결손을 메우기 위해 대부분의 학교가 팔월 초순까지 수업을 했다. 방학하는 날까지 그녀는 날마다 정류장 옆 공중전화 부스에서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걸었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물을 잠가주세요. 손바닥에서 배어나온 땀으로 수화기가 끈적끈적했다. 예에, 의논해보겠습니다. 민원실 직원들은 인내심 있게 그녀를 응대했다. 꼭 한번 나이 든 여사원이 말했다. 그만 전화해요, 학생. 학생 같은데 맞지요. 물이 나오는 분수대를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요. 다 잊고 이젠 공부를 해요. -p97
누군가는 세월호 유가족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그만하라고. 나또한 그 분들이 그만 잊고 행복한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만약 그런 일이 자신에게 닥쳤다고 생각해보자.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희생되었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나는 그만할 수 있을까? 잊고 새출발 할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5.18도 잊고 세월호 사건도 잊는다. 하지만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마음 속으로 그 분들에게 감사해하고 지지하고 응원하고 잊지 않는 것, 그것만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는 그 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분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주고 있다. 만약 우리에게 똑같은 일이 닥쳤다면 우리들도 똑같이 행동하지 않았을까?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깐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p110
1980년 5월의 광주는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언제쯤이면 반복을 멈출 수 있을까? 아니 멈추는게 가능하긴 할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일단은 기억하자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소설을 소개하고 권하자는 것. 많은 사람들이 <소년이 온다>를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역사를 바로 알고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