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전 <미움받을 용기>를 읽고 굉장히 감명받았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관련 책들을 읽어보고 있습니다. 일단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의 책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는 <미움받을 용기> 이후로 아들러 심리학 관련 책을 많이 냈습니다. 비슷비슷한 내용의 책들이지만 모두 하나같이 베스트셀러입니다. 역시 한 번 뜨면 후속작들도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프렌차이즈점을 늘려나가듯이 활발히 책들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아들러 심리학 좋습니다. 배울 점, 깨닫게 되는 점들이 많습니다. <미움받을 용기>, <나답게 살 용기>,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을 현재 읽었습니다. 역시 가장 처음에 읽었던 <미움받을 용기>가 가장 좋았습니다. 대화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내용을 따라가기 좋았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은 우선 태도의 심리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삶의 태도와 자세에 대해 기존의 통념과 조금 반대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원인론보다는 목적론을 강조합니다. 남들을 벌주거나 칭찬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때문에 다소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일견 타당한 면이 있다. 긍정적인 면이 있다.' 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과거보다는 미래지향적입니다. 나 자신, 주위 사람을 긍정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이, 노인 등 과도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지향합니다. 자기수용, 타자긍정, 타자공헌 세 가지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행복을 이야기하고 추구하는 심리학입니다. 


 아들러 심리학을 보다 잘 정리 요약해서 소개해드리고 싶지만, 이는 후에 리뷰로 미루겠습니다. 책에서 제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 구절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이 책의 구성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부는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아들러의 심리학을 다룹니다. 2부는 2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들러의 생애과 그의 강의 내용을 소개해줍니다. 저는 2부 부터 읽었습니다. 

 1부는 미움받을 용기, 평범해질 용기, 행복해질 용기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미움받기를 각오해야합니다. 타자의 시선, 타자의 요구에만 맞추어서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항상 문제나 실패의 원인을 타인, 환경에 돌리게 됩니다. 주체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역설적이지만 평범해질 용기도 필요합니다.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수용하기란 힘든 일입니다. 자신의 평범함을 수용하고 긍정할 수 있어야합니다. 열등감을 극복할 때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고 행복한 인생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행복해질 용기는 앞서 자기수용 단계를 거쳐서 타자를 신뢰하고 타자에 공헌하면서 함께 삶을 살아가는 용기입니다. 혼자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행복은 주고 받으면서 함께 나누어야지만 가능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타인에게 사랑받고 신뢰받기 위해서는 타인을 사랑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남에게 공헌하는 사람들은 행복해보입니다. 역사 속 위대한 이타주의자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서려있습니다. 


 리뷰에 써야할 사설이 길었습니다. 책 내용 소개로 넘어가겠습니다. 첫 내용은 '배려의 세계에서 벗어나라.' 라는 주장의 글입니다. 남을 배려하지 말라는 의미일까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요청해야 한다. 자신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면 도움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선의에 달린 것이지 의무는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의 마음을 미리 알아주고 배려해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한 자신의 생각은 타인에게 전해질 수 없다. 잠자코 있으면 아무도 협력해주지 않는다. 만약 다른 사람의 협력이 필요하다면 분명한 언어로 그 뜻을 올바르게 전해야 한다. -p48

  

 우리는 배려의 세계에서 살아갑니다. 남들을 배려하고 남들이 나를 배려해주기를 원합니다. 물론 배려의 상호작용이 원활히 만족스럽게 일어나면 세상은 참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배려가 상대방에게 무시 당하거나 보답이 돌아오지 않거나, 상대방의 배려가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하면 갈등이 발생합니다. 이는 연인관계, 혹은 여타 인간관계에서 다툼과 불만의 원인이 됩니다. 여자들은 보통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꼭 말로 해야 돼? 알아서 해줄 순 없어?" 미리 말로 안해도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나 남자들은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요청하지 않으면 요청이 없는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배려나 도움을 원한다면 속으로 기대만 하지 말고 요청해야 합니다. 이 때 상대방이 요청을 받아들일지는 상대방의 몫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요청을 거절할까봐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데 상대방의 거절을 상대방의 몫으로 받아들이면 요청하기 쉬워집니다. '나는 요청한다. 상대방이 받아들이고 말고는 나의 권한 밖이다.' 라고 규정하면 훨씬 요청하기 쉬워집니다. 저도 때문에 어제 친구에게 어떤 일을 요청했습니다.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미리 상대의 거절의 가능성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거절을 듣고도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풀었을 때는 상대방의 답례를 원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호의를 베풀면 상대방의 답례가 없으면 서운해하고 혹은 분노하게 됩니다. 상대를 배려할 때는 어디까지는 진심에서 보답을 바라지 않고 호의를 베풀어야 합니다. 


 다음은 인간관계에 관한 내용입니다. 


 첼리스트 요요마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무대 연주를 하기 전 이렇게 긴장을 풀 수 있는 것은 내가 이미 충분히 나이를 먹어 더 이상 내 자신이 잘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 맞다. 나 자신을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될 때 우리는 편안해진다. -p155

 

 저에게 많이 해당되는 가르침입니다. 저또한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다. 때문에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긴장을 풀고 자신을 내어놓지 못합니다. 바보스럽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감추려고 노력합니다. 저자는 이런 원인을 인간관계를 수직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수평적인 관계라면 자신이 남에게 친절하다는 것을 과시할 필요가 없다.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인간관계를 수직적으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저는 한 살 차이만 나도 선배에게 깍듯합니다. 선배에게 좀처럼 말을 놓거나 편하게 대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가까운 동갑 친구가 아니면 편하게 대하질 못합니다. 윗사람에게 깍듯하고 예의를 차리고 아랫사람에게는 허술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신경쓰다보니 인간관계에서 부자연스러움을 연출하게 됩니다. 아아... 글을 쓰면서 저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저는 남들에게 편한 사람이 아닙니다. 남과 일정 거리를 두려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심리적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앞으로는 인간관계를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다음은 자기수용에 관계된 내용입니다. 아들러는 자신에 대한 시점을 바꿔서 자신은 수용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일종의 정신승리같기도 하지만 필요한 부분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누군가 자신의 성격이 어둡다고 고민한다면 '당신의 성격이 어둡다기보다 다른 사람이 상처받지 않도록 늘 남을 배려한다는 점에서 착하다' 고 시점을 바꾸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면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서랍에 붙어 있던 '어둡다' 는 라벨이 '착하다' 는 라벨로 바뀌게 된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의 내용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그게 아들러가 말하는 자기 수용이다. 그때에만 우리는 변할 수 있다. -p161 

  

 자신을 수용하되 시점을 변화시켜서 긍정적인 모습으로 수용하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 수용 참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내면에 그립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좌절합니다. 이 경계를 해소해야합니다. 지금 이대로의 모습 그대로를 긍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야합니다. 현재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면서 다른 모습을 꿈꾸면 다른 모습으로 변할 때까지 불행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현재 자신의 모습을 나름 긍정하면서 다른 모습으로 변화해나간다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행복해야합니다. 지금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는 불변이고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입니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시간도 현재뿐입니다. 


 다음은 '타자공헌' 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들러는 다른 사람을 자신의 친구로 인정하지 않고 늘 지나치게 긴장하는 사람에게는 파티 호스트가 되어보기를 권한다. 파티 호스트가 되어 친구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고, 또 친구가 관심을 가지는 것에 자기 자신도 관심을 기울여보기를 권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 지금껏 대인관계 속에서 즐기지 못했던 사람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는 아무도 자신을 즐겁게 해주지 않는다며 받기만을 기대했던 사람이었다면, 파티 호스트로서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고쳐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p167

 

 신선한 조언입니다. 파티 호스트가 되어보라니. 저도 그동안 원치 않은 모임이나 자리에 참석하면 긴장하거나 재미가 없다고 느끼고 얼른 자리를 끝내고 싶다고 불평했습니다. 받기만을 원하는 이기적인 마음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즐겁지 않다.' 라는 생각때문에 자리에 있는 시간동안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참석한 모임이라면 아들러의 조언처럼 마인드를 바꿔보는 것은 어땠을까요? 나 자신이 파티 호스트라고 생각하고 주위 사람들을 챙기고 즐겁게 해주려고 관심을 기울였다면 어땠을까요? 어쩌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한 번 써먹어봐야겠습니다. 받기만을 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주려는 마음을 가져야 삶은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제가 이것은 경험으로 압니다. 이기적인 마음, 자신만 생각하는 마음으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다음은 굉장히 핵심적인 중요한 문단입니다. 행복의 세 가지 조건을 알려줍니다. 아들러 심리학의 목적이자 핵심입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기 수용, 타자 신뢰, 타자 공헌 중 어느 하나도 결여되어서는 안 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야 하고, 다른 사람들은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것을 믿어야 하며, 스스로의 존재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p170


 기억합시다. 자기 수용, 타자 신뢰, 타자 공헌. 책을 읽으실 때도 이것들을 염두해 두고 읽으시면 좋습니다. 단어들만으로는 느낌이 안 오실겁니다. 책을 읽어보셔야지 어떤 이야기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목적론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결정론에 반대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아들러는 트라우마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들러는 우리가 겪는 어떤 경험도 그 자체만으로는 성공이나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아들러는 우리가 어떤 경험을 겪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겪은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경험을 트라우마로 보면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트라우마로 보지 않는다면 트라우마가 되지 않는다. 그게 똑같은 사건을 겪거나 똑같이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도 서로 다른 현재를 마주하게 되는 이유다. 만약 어떤 경험에 의해서 사람들이 똑같은 영향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그리고 그 이외의 삶은 우리 인간이 선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 순간부터 우리를 지금과는 다른 삶으로 이끌어주는 교육이나 육아, 치료는 애당초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p231


 놀라운 주장입니다. 저는 이를 사실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트라우마는 존재합니다. 이는 명백히 사실입니다. 어떠한 기억은 평생 우리는 잡고서 괴롭힙니다. 하지만 아들러의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트라우마는 우리가 트라우마라고 인정할 때만 트라우마입니다. 다분히 불교적입니다. 우리는 고통과 트라우마를 놓아버릴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요. 당연히 이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해탈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듯이요. 슬픈기억, 괴로운 기억을 우리는 놓아버릴 수 있습니다. 그 기억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그 기억, 그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는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환경과 그 환경에 속한 개인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합니다. 같은 환경 속에서도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하고 행동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실패하고 좌절하지만 어떤 사람은 성장의 발판으로 삼고 이겨내고 성공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 동의하고 이러한 삶의 자세를 가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섣불리 말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과연 다른 환경에 처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나 자신이 되었을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합니다. 사뭇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두 가지 모두에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환경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환경에 어떤 영향을 받을지 스스로 선택할수 있는 힘도 있습니다. 어디에 더 주목할지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거기에서 삶의 태도가 결정됩니다. 


 이렇게 정리해보니 '아들러 심리학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것들을 새로이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좀 더 아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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