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3박 4일의 일정 속에서 틈틈이 영화를 보았다. 버스 안에서, 기차 안에서, 혹은 비행기 안에서. 묘하게도 본 두 편의 영화가 어딘가 통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그 통하는 면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머리 속에서 자꾸만 영화 속 대사가 들려온다. "당신은 눈 멀었어요."


 영화 바깥에서 등장인물들을 보면 그들이 눈 멀었음이 보인다. <대부2>의 마이클 꼴레오레와 <시민 케인>의 찰리 케인. 그들은 눈 멀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눈 멀었음을 모른다. 배우자와의 관계의 삐걱거림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사랑과 헌신에 대해 배우자에게 호소하지만 배우자에게 닿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을 받고 싶어하지만 사랑을 주는 방법은 모른다.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 <장자>의 바다새 이야기가 떠오른다. 바다새에게 술과 고기를 대접했지만 바다새는 4일만에 굶어죽고 만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남을 사랑하면 실패한다. 때론 나의 사랑이 상대방을 숨막히게 할 수도 있다. 


 그들은 오만하다. 자기 자신외에는 아무도 믿지 못한다. 자신의 이성과 판단력을 믿는다.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주위사람들과 의견차이가 생길때 그 차이를 좁히지 못한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문제는 자신의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데 있다. 자신감과 자만심사이 신념과 과신의 사이에서 그들은 흔들거린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다. 남들의 흠을 찾고 비판하기는 쉬운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흠을 발견하고 그것을 고치는 것은 어렵다. 자신이 믿고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기란 힘든 일이다. 인간이란 습관의 동물이다. 반복은 우리의 사고를 무디게 만든다. 잘못된 사고나 행동이라도 그것이 반복되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잘못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안타깝게 느껴지면서도 나도 그들과 똑같이 어딘가 눈먼 것은 아닌가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들의 모습이 과거의 나의 모습들과 겹쳐보였다. 때문에 슬프고 안타까웠다. <시민 케인>에서 찰리 케인은 떠나려는 수잔을 붙잡는다. 앞으로는 당신이 바라는 모든 것을 해주겠다고, 자신도 바뀌겠다고 말한다. <대부2>에서 마이클 꼴레오레도 떠나려는 아내를 붙잡는다. 앞으로는 변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들의 아내는 떠난다. "당신은 눈 멀었어요." 라는 말과 함께.


 나는 눈멀진 않았는지. 과연 나는 나의 결점들과 잘못된 사고방식을 깨닫고 있는지. 확실히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같은 잘못들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들이 더욱 불편하고 무겁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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