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 강의 - 생명의 역사, 그 모든 의문에 답하다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정은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일반인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한 지식인들이 많았습니다. 종교적인 영향도 있었겠지만, 굉장히 복잡한 구조를 가진 기관들이 진화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윈조차도 '인간의 눈이 가진 복잡성과 우수성' 때문에 진화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눈'은 생각만큼 완벽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습니다. 한 공학자는 인간의 눈이 만약 누군가의 설계로 만들어졌다면, 그 설계자에게 다시 만들어오라고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일부러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눈도 깊이 알고보면 이해하기 힘든 비효율성이 있습니다.


 기린의 목의 한 혈관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어떤 혈관은 목을 타고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다가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갑니다. 모든 포유류들이 이렇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는 목의 혈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린은 문제가 목이 너무 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혈관도 위로 올라가다가 한참을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옵니다. 만약 설계자가 있었다면 이처럼 어처구니없이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혈관이 오르락 내리락 할 어떤 기능적 필요도 없습니다. 초기에 그렇게 세팅되었기 때문에 계속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진화는 이런 비효율성을 가지게 됩니다. 진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납니다. 때문에 기린의 목이 아주 조금씩 길어지면 혈관도 아주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을 것입니다. 갑자기 혈관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대돌연변이를 일으켰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아주 작은 점진적인 진화가 계속 일어났을 것입니다. 때문에 아래로 내려가는 혈관은 아주 조금씩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고 마침내 현재의 기린을 보면 혈관이 롤러코스터처럼 위 아래로 오르락 내리락하는 너무나 어이없는 광경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수학적 모델과 비유를 통해 진화를 보여줍니다. 언뜻 보기에는 불가능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이 충분히 점진적진화로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불가능한 산' 비유를 듭니다. 너무 높아서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가파는 산이라도 그 뒷길에는 완만하고 충분히 오를만한 비탈길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보면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지만, 한 걸음 한 걸음씩 오르다 보면 정상까지 오르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진화는 굉장히 느리게, 가끔은 급진적으로 일어납니다. 우리에게는 진화에 필요한 40억 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떤 생명체는 이미 가파른 정상에 도달하였기 때문에 다른 산봉우리로 가기 위해서는 정상에서 내려와서 다시 올라가야 됩니다. 진화는 이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침팬지와 인간은 600만년 전에 서로 다른 길을 찾았고 서로 다른 봉우리에 도달했습니다. 인간이 침팬지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 산봉우리에서 600만년을 거슬러 내려간 후 다시 침팬지로 가는 길을 찾아서 산봉우리를 올라가야 합니다. 침팬지도 인간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나름대로 막다른 진화의 산봉우리에 올라있습니다. 물론 그 산봉우리는 갈수록 높아질수도 있고, 급격한 지각변동에 의해서 사라질 수도 아니면 갈라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만 바라본다면 모든 생명체는 각자의 환경에 최적의 방식으로 적응했습니다.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없지만, 조류나 약간의 포유류는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날개를 진화시킬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룡은 날개를 진화시켰습니다. 인간은 물 속에서 3분도 살 수 없지만, 많은 생물들이 물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물에서 나왔습니다. 인간은 이미 물 위로 올라왔기 때문에 되돌아 갈 수 없습니다. 인간은 산소가 없으면 역시 3분도 버티지 못하지만, 일부 박테리아는 산소가 없어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진화게임의 최종 승자는 박테리아가 될 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생존력과 번식력, 적응력은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핵전쟁이 일어나서 지구 상의 모든 생물체(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제외하고)가 다 죽는다면 박테리아는 다시 번식하고 새로운 진화게임을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리셋 후에 다시 시작하는 것이지요. 공룡이 멸종하고 그 빈자리를 포유류와 조류가 채웠듯이 새로운 진화가 일어나려면 빈자리가 필요합니다. 대멸종 후에는 급격한 진화가 일어납니다.


 아주 재미있는 진화론 강의였습니다. 흥미로운 부분도 많았습니다. 특히나 대칭에 관한 이야기는 저의 궁금증을 풀어주어서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왜 거의 모든 생명체는 대칭을 이루고 있을까요? 왜 인간은 대칭을 아름답게 여기는 걸까요? 인간은 외모를 볼 때 대칭적일수록 호감을 느낍니다. 왜 이런 걸까요? 대칭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책을 읽는 재미를 위해서 자제하겠습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진화는 대칭을 선호했습니다. 좀 더 힌트를 드리자면 대칭이 비대칭보다 유리한 점이 있었습니다.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궁금하시면 이 책의 대칭부분이라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진화는 너무 재밌고 너무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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