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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5 - 번지는 들불, 개정증보판
시내암 지음, 이문열 평역 / 민음사 / 199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수호지> 1권부터 2, 3권 까지는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재밌는지 이해가 안될만큼 재미있었습니다. 혼자서 곰곰히 수호지의 재미의 요소는 무엇일까 따져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4권부터 점점 재미가 떨어집니다. 스토리 전개가 익숙해져서 일까요? 역시 저에게 이렇게 긴 장편은 잘 안맞는 걸까요?
<로마인 이야기>도 1, 2권 까지는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3권도 재미있었지만 1, 2권에 비해 아쉬웠습니다. 4권을 보고나니 5권부터는 손이 가지 않네요. 카이사르의 뒷이야기가 궁금합니다만, 흐름이 끊겨버렸습니다.
그래도 수호지는 현재 6권까지 보았습니다. 절반을 넘어섰으니 완독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비해 재미는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술술 읽힙니다. 5-6권은 같은 패턴의 반복입니다. 동료가 적에게 잡히고 구해내고, 그러면서 새로운 동료를 얻습니다. 6권에 비로소 108명의 호걸이 모두 모입니다.
점점 수호지의 재미가 떨어지는데는 공감의 결여도 큰 것 같습니다. 호걸이라고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기에는 그냥 살인마일 뿐입니다. 너무 사람을 쉽게 죽입니다. 입으로는 충과 의를 부르짓지만, 복수 앞에서는 잠시 눈을 감습니다. 특히 쌍도끼 이규 이놈은 진짜 나쁜놈입니다. 감초같은 역활을 합니다만, 너무 천방지축입니다. 왠만하면 소설이나 영화에서 아이는 건드리지 않습니다. 불문율같은겁니다. 영화감독이나 관계자, 소설가, 출판업자가 원탁에 모여서 "아이는 건드리지 말자!" 라고 결의를 한 것은 아닙니다만, 아이를 건드리는 것은 굉장히 드뭅니다. 수호지에는 애도 어른도 남녀도 없습니다. 이규는 도끼로 아이의 머리를 세로로 이등분합니다. 어처구니 없는게도 이유는 다른 호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서입니다. 동료로 얻고싶은 호걸이 있는데, 그 호걸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서 양산박에 데리고 가려고 그런 만행을 저지릅니다. 여기서 무슨 충과 의가 있습니까? 또 한 번은 여걸 호삼랑을 동료로 맞아들이는데, 쌍도끼 이규가 명령을 어기고 호삼랑을 일가족을 몰살시킵니다. 하지만 호삼랑은 양산박의 동료로 들어가고 심지어 바로 다른 호걸과 결혼까지 합니다. 이런 상식 밖의 일들이 허다하다보니 점점 소설에 거리를 두고 몰입을 못하게 됩니다.
이런 부분들을 현대적으로 각색하면 어떨까요? 그럼 수호지가 수호지가 아닌게 될 겁니다. 시대가 바뀌면 사람들의 가치관과 사고방식도 바뀝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과 도덕이란 개념들이 천년 후에는 얼마나 우습게 느껴질지 생각하면 이상합니다. 몇 백년 후면 인종차별이라는 개념조차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남녀차별도 물론이고요. 우리의 후손들은 현재의 문학작품이나 자료들을 보면서 "아니 이때는 남녀차별이란게 있었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정말 웃긴다." 하는 이야기를 나눌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많은 것들이 미래에는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미래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과거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수호지>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요. 가부장제에 살았던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이해는 커녕 인식조차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