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중화권 대표적 인문학자 양자오 선생님의 책입니다. 예전에 서양고전 시리즈 3권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최근에 동양고전 시리즈가 나왔더군요. 유유출판사에 다른 좋은 책들도 많은 것같아서 찾아보려 합니다.

 

 

 

 

 

 

 

 

 

 

 

 

 

 

 

 

 

 

 

 

 

 

 

 

 

 

 서양고전 시리즈 <자본론을 읽다>, <종의 기원을 읽다>, <꿈의 해석을 읽다> 이 세 권 함께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19세기말을 뒤흔들었던 지식혁명을 그 시대상과 더불어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최근에 <장자를 읽자>와 <논어를 읽자>를 함께 읽었습니다. 고전을 읽으려면 그 시대상과 저자를 깊이 있게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겨 주는 책이었습니다. 그동안 <논어>와 <장자>를 읽었지만,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후로 <맹자를 읽자>와 <노자를 읽자>도 읽어보려 합니다. 양자오선생의 책은 강추입니다.

 

 <논어를 읽다>를 통해 성인공자가 아닌 인간공자를 만났습니다. 논어의 구절들을 성인군자가 아닌 인간공자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니, 더욱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진리가 아닌 공자의 감정과 생각, 유머를 보게되었습니다.

 

 책 속 좋은 구절들을 소개합니다.

 

 남이 알아주든 말든, 자신의 학문과 능력을 인정해 주든 말든 개의치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바로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학문을 추구하고 능력을 쌓는 사람입니다. 나중에 순자가 한 말을 살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그는 '군자의 배움' 을 가리켜 '자신을 위한 배움' 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소인의 배움' 은 외적인 명성이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배움으로, 배움을 명리와 바꾸는 도구로 취급합니다. 군자의 배움은 그렇지 않아서, 배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수단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배움이 군자에게 가져다주는 동시에 군자를 매료시키는 것은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따라오는 기쁨입니다. 학습과 정진 속에서 이미 보상을 얻기에 군자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개의치 않으며 화를 내거나 원망하지도 않는 겁니다. -p67~68더

 

 최근에 성공을 위해 책을 읽지 말고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어라는 글을 썼습니다. 위 글도 같은 취지라고 생각합니다. '배움' 을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서 기쁨을 얻는 것이 '군자의 배움' 입니다.

 

  언제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할까요? 가장 흔한 상황은 그런 말과 그런 일을 하면 다른 사람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지 의식하지 못할 때입니다. 달리 말하면 다른 사람이 안중에 없어 그들이 어떻게 느끼고 반응할지 세심하게 생각하지 못할 때이죠. 자기만 알고 자기만 신경쓰는 것, 그것이 바로 무절제한, "예가 아닌 것' 입니다. 이런 말과 이런 일은 해서는 안됩니다. -p111

 

 깊이 반성하게 하는 구절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 세심하게 생각하고 배려해야겠습니다. 제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제 생각만 하는 것, 그것은 "예가 아닌 것' 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공자는 자신의 말을 통해 전자의 노력과 조건이 현재의 결정과 성취를 보증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내가 이미 수백만 삼태기의 흙을 쌓았더라도, 마지막 삼태기의 흙을 쌓지 않는 바람에 그 공사가 미완성으로 끝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넓은 평지에 앞으로 수백만 삼태기의 흙을 쌓아야 산이 완성된다고 하더라도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 거대한 공사를 절대로 끝내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일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객관적인 형세와 조건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느냐 마느냐는 그런 객관적 조건들과 필연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순전히 나의 주관적 의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래서 공자는 "멈춘다면 내가 멈추는 것"이고 "나아간다면 내가 가는 것" 이라고 말한 겁니다. 멈추거나 나아가거나 모두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지 객관적인 형세와 조건에 강요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좀 더 강하게 말한다면 인간은 객관적인 형세와 조건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거부할 수 있는 주관적 결정의 힘을 갖고 있습니다. 한 삼태기의 흙만 남은 상태에서 내가 기필코 산을 완성해야 한다고 누가 정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평지에 산을 쌓을 생각은 하지 말라고 또 누가 내게 강요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인간의 주관적 의지를 존중하고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자는 영락없는 '유심론자' 였습니다. -p129-130

 

 굉장히 기분좋은 구절이었습니다. 저도 '유심론자' 입니다.

 

 결론: 지금 공자를 읽는 의미

<선진> 편을 중심으로 일부 다른 편의 내용을 곁들어 <논어>를 골라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읽기를 통해 어떤 가치를 뚜렷하게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논어>를 추상적인 이치로 받아들여 암송하기보다는 <논어>를 통해 춘추 시대의 특수한 상황, 공자라는 훌륭한 인물 그리고 그가 시대의 격변 앞에서 내놓은 갖가지 주장과 함께, 그 주장들에 통합된 근본 신념들을 살피는 편이 낫다는 사실입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논어>를 읽을 때마다 어김없이 흥분과 놀라움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공자 같은 인물과 그런 개성이 존재할 수 있었는지, 또 그는 어떻게 그런 안목으로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고 지혜가 가득한 언어를 토해 낼 수 있었는지 경탄을 금치 못할 겁니다. 공자는 우리보다 강력하고 지혜로운 인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강력함과 지혜에 감화되어야지, 단지 그의 생각과 말을 흉내 내어 우리 시대에 대응하고 우리의 현실 문제를 처리하려고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p188 

 

 책은 마지막 결론 부분입니다. 왜 이 책을 읽어야하는지, <논어>를 어떻게 읽어야하는지 알려주는 핵심문단입니다. 공자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훌륭한 스승입니다. 성인이 아니라 아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입니다. 너무나 인간적이기 때문에 성인인걸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