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대단한 저자
알라딘 도서팀 엮음 / 알라딘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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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ebook으로 꽁짜로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끝내주는 책>과 <대단한 저자>는 알라딘 창사 16주년을 기념하며 알라딘 도서팀에서 만든 책자이다. 모두 ebook에서 무료로 만나볼 수 있다. ebook은 핸드폰에서 알라딘 ebook어플을 다운받아서 보면 된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끝내주는 책>도 얼마전에 읽었었다. <끝내주는 책>은 ebook이 아니라 종이책으로 읽었다. 아마 사은품으로 왔었던 것 같다. 즐겁게 읽었다. <대단한 저자>는 ebook에 담아뒀던 책인데, 아예 이북(ebook쓰기 너무 힘들다. 앞으로 한글로 대신하겠다.)은 신경을 안쓰고 있어서 잊고 있던 책이었다. 최근에 이북의 효용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마침 이북을 읽을 기회가 찾아왔다. 


 회식에서 술을 마신 날, 자다가 새벽에 깼다. 다시 자려고 했지만 잠이 잘 오질 않았다. 방에 읽을 만한 책들이 없었다. 갑자기 이북(생각해보니 전자책이란 단어가 있다;;) 이 떠올랐다. 예전에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는 몇몇 권을 다운받아 놨었는데, 그 중 <대단한 저자>라는 책이 있었다. 전자책으로 처음 책을 읽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읽기도 편하고, 집중도 잘 되었다. 어쩌면 책이 재미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은 <끝내주는 책>과 비슷한 형식이다. <끝내주는 책>은 다양한 저자들이 책을 소개해주는 것이었다면, <대단한 저자>는 다양한 저자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저자를 소개해준다. 책을 소개해주는 것이나 저자를 소개해주는 것이나 큰 차이는 없지만 작은 차이는 있다. 책을 사랑하게 되면 그 책의 저자도 사랑하게 된다. 그 저자를 사랑하게 되면, 그 저자의 책을 모두 사랑하게 된다. 물론 그 저자의 책들 중에 좋은 책도 있지만, 그저 그런 책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그런 책들도 보다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게 된다. '아, 이 때는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았구나. 그래도 지금의 문체가, 가능성이 보이는구나.'


 내게 대단한 저자를 소개하라고 하면, 무라카미 하루키씨를 소개할 것 같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저자이자, 가장 많은 작품을 읽은 작가이니깐.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좋아하고 있는 작가이니깐. 그리고 가장 잘 아는 작가라서 소개하기도 편하다.


 이 참에 책 소개는 제쳐두고 무라카미 하루키씨를 소개해볼까 한다. 역량 부족이지만, 그래도 한 번.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씨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 때는 재수시절이었다. 그 때도 책을 조금은 좋아하던 때라 그리고 원래 공부를 하다보면 공부 외의 것들이 모두 재미있어지니깐 재수 초중반에는 책도 몇 권 틈틈히 읽었다. 같은 기숙사에 있던 친구에게 <해변의 카프카>란 책을 빌려 읽었다. 그 당시에는 책을 볼 때 작가가 누구인지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던 때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고, 그의 이름도 기억에 담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책은, 기억 속에 아주 깊숙히 자리잡게 되었다.


 <해변의 카프카>를 아주, 정말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고독하고 터프한 15살의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했던 것 같다. 재수때 처음으로 집을 벗어나 전혀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그리고 고독했다. 그 당시에는 책에서 무슨 의미를 찾는다는지, 어떤 교훈을 얻는다는지, 상징을 발견한다던지, 이런 것은 전혀 몰랐고 생각초자 하지 않았다. 그냥 소설에 푹 빠져서 재미있게 읽었다. 등장인물 하나하나 모두 흥미로웠고, 소설 속의 판타지 같은 요소와 분위기들도 매력적이었다. 환상적이었다. <해변의 카프카> 덕분에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소설 속에서 말하는 고양이들이 너무나 신기하고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무라카미 하루키씨는 내게 첫 대면부터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그 다음에는 다시 어떻게 무라카미 하루키씨를 만나게 되고 알게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대학시절 공부는 안하고 도서관에 가끔 기웃거렸다. 그 때 아마 다시 무라카미 하루키씨를 만나게 되었던 것 같다. 아마도 에세이였던 것 같다.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였을까? 아니면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이었을까? 하루키씨의 소설 속에 단단한 판타지가 있었다면, 하루키씨의 에세이 속에는 작고 소소한 그렇지만 확실한 행복이있었다. 그렇다. 일상의 행복, 사소한 웃음, 미소가 있었다. 그당시 약간 지루하고 따분한 대학생활, 그리고 약간은 우울하고 불만족스러운 그런 대학생활 속에서 하루키씨의 에세이는 그렇게 내 맘을 어루만져줬다. 용기를 주지도 위로를 해주지도 않지만, 위안이 되는 그런 글들이었다. 


 우리가 언제 사랑에 빠지는지 모르는 것처럼, 나도 언제부터 하루키씨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첫 만남때였을까? 아니면 점점 익숙해진걸까? 무엇이 그토록 내 맘에 들었을까? 내가 하루키씨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그의 사고방식이 나와 잘 맞았기 때문이다. 어딘가 공통점을 발견했다. 어디서 어떻게 연결되지는 모르겠지만 하루키씨의 말대로 작가와 독자로써 저 깊은 곳 어딘가에서 분명하게 연결되었다. 나와 하루키씨와의 정신세계의 공통점에는 고양이가 있는 것 같다. 약간은 무리 생활에 어울리지 못하는, 자기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고 남들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 점들, 그리고 일상에서 소소한 재미와 행복을 찾는 점들이 마치 고양이같다.


 하루키씨가 나이를 먹어가듯 나도 어느새 그를 알게된지 10년의 세월이 넘게 흘렀다. 그의 소설들을 통해 참 많이 위로받았다. 20살의 나는 그에게 이렇게 위로받을 것을 알았을까? 그가 '상실' 의 시대를 통과한 '상실' 을 이야기하는 작가인지 마치 알았던 것처럼, 나는 20살 때부터 그를, 그리고 그의 소설들을 좋아했다. 상실의 무게를 조금은 덜어준 그의 글들에 감사한다.


 나는 그의 문장과 문체를 사랑한다. 아침에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스푸트니크의 여인>을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정말 너무나 아름답고 좋은 문장이다. 나도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 물론 그런 문장을 쓴다고해도 전혀 죽고 싶지는 않지만, 그 때의 내 느낌은 그랬다. 그만큼 좋았다. 하루키씨의 책을 읽다보면 너무 좋은 문장들을, 문단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글은 마치 음악같다. 리듬감있고, 서사가 있다. 마지막에 확실한 방점을 찍어준다. 클라이맥스가 있다. 대단원의 막을 확실하게 내려준다. 그리고 감동과 여운을 준다. 


 하루키씨의 책이 많아서 행복하다. 아직도 그의 모든 책을 읽지 못했고,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책들도 있다. 그의 장단편 소설들을 다시 읽고 있다. 다시 봐도 새롭고 좋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다시 10년 후에 그의 소설들을 읽으면 지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게 될까? 평생을 함께 할 작가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루키씨에게 감사한다. 그는 아직 살아있으면 아직 힘차게 뛰고 있다. 그의 마라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결승점에 그가 도착했을때, 나는 아마 환호하고 축하해주겠지만 몹시 서운할 것 같다. 어쩌면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다. 그의 마라톤이 끝나더라도, 나의 마라톤은, 수많은 독자들의 마라톤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와 함께 뛸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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