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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ㅣ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왜 읽는가? 책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이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왜 책을 읽는지,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떻게 읽는지 궁금할 것이다.
이 책은 굉장히 읽고 싶었던 책이다. 책이 애용하는 도서관에 없어서 못 읽고 있었는데 다른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되었다. 나는 요즘 책을 별로 사지 않는다. 주로 소장하고 싶은 책과 전공도서 위주로 사려고 하다보니 대부분의 책들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 때문에 보고 싶은 책들을 이렇게 오랜시간 후에 읽게 되는 경우도 있다.
김영하작가의 <말하다>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었다. 김연수작가의 <소설가의 일>만큼이나 좋았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문학이야기는 정말 재미있다. <말하다>를 읽고 김영하작가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었는데, 에세이 보다 별로였다. 매우 빠르게 읽히고 전반적으로 좋긴 했는데, 먼가 결말의 반전과 함께 책이 끝나버리는 느낌이었다.
<읽다>는 오로라^^님의 리뷰를 보고 난 후 무척이나 있고 싶었었다.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가 이야기한 '중심부 찾기'라는 개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소설가는 소설 속에 '중심부'를 숨겨 두고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그 중심부를 찾아간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중심부가 없는 소설들도 있다. <마담 보바리> 라던가, <롤리타>는 작가가 그런 '중심부찾기'를 거부하고 소설 그 자체, 이야기중심의 소설을 썼다. 진부한 교훈은 접어두고 소설 속 인물, 대화, 상황을 즐기고 음미할 수 있는 소설을 썼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설에 '중심부'가 있든, 없든 모두다 좋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중심부'를 찾지 못해서 헤매도 좋고, '중심부'를 발견해서 기뻐해도 좋고, '중심부'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소설을 즐기는 것도 좋아한다.
<이방인>과 <좀머씨 이야기>는 중심부를 찾지 못하고 헤맸던 소설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은 '중심부'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즐겁게 읽었다. 하지만 재독을 하게 되니 '중심부'를 발견하는 기쁨들도 누릴 수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중심부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중심부가 미로인 경우이다. <죄와 벌>은 죄와 벌의 문제, 신앙과 구원의 문제, 정의의 문제 등의 중심부를 발견했는데, 그 중심부가 너무 크고 깊은 문제여서 오히려 중심부에서 헤매게 되었다. 하지만 <죄와벌>은 소설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도 재미있었다.
최근에 읽고 있는 스티븐 킹의 <언더 더 돔>도 '중심부' 가 조금 보이긴 하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고 읽어도 너무도 재미있게 술술 읽히는 책이다. 왜 스티븐 킹이 베스터 셀러 작가인지 알게 되었다. 그의 책은 처음 읽어보았는데, 벌써 팬이 되었다. 그리고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라는 책을 읽고 재미있는 소설이란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플롯 중심보다 스토리 중심의 소설을 훨씬 좋아하는 것 같다. 작가가 미리 전체적인 플롯을 짜고 이야기를 만든 것보다 등장인물과 초반의 이야기만 설정해 놓고 이야기를 만들어 간 것을 더 좋아한다. 스티븐 킹과 무라카미 하루키는 후자이다. 소설을 쓰면서 등장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이끌어 나간다. 결말을 미리 계획해 놓고 소설을 쓰지 않는다.
반면에 <살인자의 기억법>은 플롯중심의 소설 같았다. 미리 결말을(반전으로) 정해놓고 소설을 맞추어 놓은 것이다. 이런 소설은 그 반전이 너무도 예상 밖이거나 충격적이지 않으면 크게 감흥이 오지 않는다. 영화 <식스센스>를 넘는 반전이 아닌 이상 모두다 식상할 뿐이다.
총 6편으로 구성된 즐거운 문학수업이었다. 소설가의 소설이야기는 언제나 즐겁다. 이 책에 소개된 고전들을 읽어봐야겠다.
독서는 왜 하는가? 세상에는 많은 답이 나와 있습니다. 저 역시 여러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독서는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과의 투쟁일 겁니다. 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을 읽으며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믿는 오만'과 '우리가 고대로부터 매우 발전했다고 믿는 자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됩니다. 독자라는 존재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 제 믿음을 흔들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교양인의 책 읽기>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독서는 자아를 분열시킨다. 즉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이 흩어진다. 이는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p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