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 10점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출연 하비에르 바르뎀, 마리셀 알바레즈, 에두아드 페르난데즈, 디아리아투 다프, 쳉 태 쉔

장르 드라마

 

 

 안타깝다. 너무나 안타깝다. 내게는 이 영화의 감상을 풀어낼 능력이 없다. 그것이 너무 안타깝다. 표현의 부족, 어휘의 부족. 나는 우주에서 지구를 보아도 그저 '아름답다.' 라는 말로 밖에 표현을 못할 것 같다. 이 영화 무척 '아름답다.'

 

 그래도 이 영화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적인 이야기가 안되면 외적인 이야기라도, 혹시라도 운 좋으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을 아주 조금은 풀어내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안고서.

 

 하나씩 해보자, 우선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최근작 <레버렌트>의 감독이자, 내가 작년 최고의 영화로 꼽는 <버드맨>, 그리고 보지는 못했지만 <21그램>과 제법 괜찮게 본 <바벨>의 감독이시다. 이 영화로 인해 나는 그의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보고 싶다.

 그리고 우리의 명배우 하비에르 바르뎀. 하... 연기란 이런 것이다. 신들린 것 같은 연기가 아니다. 그저 담담히 모든 감정들을 표현해낸다. 눈빛, 작은 몸짓 하나 만으로도... 과함이 없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부드럽다. 완벽하다. 이 영화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지금까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유일한 스페인배우라고 한다. 나는 이 배우를 알고 있었다. 바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았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인상적이어서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배우였다. 정말 소름돋는 연기를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연기로 손꼽고 싶기도 할 만큼. 하비에르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골든글로브를 포함한 8개의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탔다. 한마디로 싹쓸이했다.

 

 영화 내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가 않다. 그저 "일단 보라!" 라고 말하고 싶은 영화이다. 예를들면 최고의 음악을 듣거나, 최고의 명화를 감상하거나, 최고의 음식을 먹었을 때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혹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지 생각해보시라. 그냥 "들어봐.", "가서 봐.", "가서 먹어봐." 이 한 마디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그저 한 번 보셨으면 좋겠다. 이정도의 감독과 배우, 그리고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준 영화라면 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이 감독의 팬이시거나 배우의 팬이시라면 이미 보셨겠지만, 혹시나 안보신 분들은 꼭 보시길 추천드린다.

 

 자꾸 걷돌고 있다. 영화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감이 안온다. 그리고 스포가 될까봐, 감상에 오히려 방해가 될까봐 그것이 더욱 두렵다. 명작을 망치고 싶지 않다. 아무튼 앞으로의 글은 영화를 보신 분들에 한해서 이야기를 계속해나가겠다.

 

 일단 제목 '비우티풀' 이란 무슨 뜻일까? 극중에서 주인공의 딸이 주인공에게 '뷰티풀(beautiful)' 의 스펠링을 물어본다. 주인공은 "소리나는 대로야. '비우티풀(biutiful)'" 이라고 알려준다. 왜 감독은 이것을 제목으로 했을까? 나의 생각은 이렇다. 이 영화 속 배경은 바르셀로나이다. 그리고 주인공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들은 밀입국한 세네갈인이거나 중국인이다. 이방인들은 단어의 스펠링에 서툴다. 제목은 이러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비우티풀'과 '뷰티풀'은 얼마나 다른가? '뷰티풀'이라고 쓰는 자국인들과 '비우티풀'이라고 쓰는 이방인들은 얼마나 다른가? 소리나는 대로 쓰는 '비우티풀'이 더 진실된 것은 아닐까?

 

 영화는 진실되고 아름답다. 삶이 진실이고, 아름다운 것처럼. 하지만 주인공의 삶은 진실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누추하고, 더럽고, 힘들다. 요약하면 가난하다. 이혼남에 자식 둘을 키우고 있는 형편이다. 하는 일도 합법적인 일들이 아니고 벌이도 시원찮고 모아놓은 돈도 얼마 없다. 하지만, 그런 삶 속에서도 그는 진실되고 싶고 아름답고 싶어한다.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영화 속 다이아몬드 반지는 주인공에게서 딸로 전달된다. 진실되고 아름다운 것이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그리고 딸로 전승된다.

 주인공은 영화 속에서 암으로 죽어가고 죽는다. 하지만 주인공은 죽고 싶지 않다. 아들과 딸을 남겨놓고 떠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죽기전에 좀 더 진실된 삶을 살고 싶다. 남들을 돕고 싶다. 하지만 죽음은 자비가 없다.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때론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세금처럼 정확하다. 다가오는 죽음 속, 그리고 혼란스러운 삶 속에서 한 남자의 행보는 비틀거린다.

 

 '비우티풀'의 뜻은 '아름답다'에 '진실하다.'를 더한 것이다. 그것은 이며, 죽음이며, 그리고 이 영화이다. 우리들또한 마찬가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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