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형수 - 지상에서 만난 가장 따뜻한 시간, 877일
박철웅.양순자 지음 / 시루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인생9단>, <어른공부>, <인생이 묻는다 내가 답한다>의 저자 양순자 어르신이 돌보았던 사형수 박철웅에 대한, 아니 박철웅이 직접 쓴 책이다. 양순자 어르신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형수로 박철웅을 이야기 하신다.

 

 그가 감옥에서 몰래 휴지에 볼펜심지로 쓴 편지를 양순자어른께 전달하고 그의 목에 밧줄이 걸린 후에 양순자 어른이 출판한 책이다. 사형집행 후 그의 장기는 모두 기증되었고(8명에게 기증되었다), 출판 수익금은 모두 기부의 형태로 쓰였다. 책의 인세로 3명의 생명을 살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죽인 3명의 생명을 되살릴 순 없었다.

 

 양순자 어른의 책을 보고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구입해놓고 오랫동안 읽지 않고 있다가, 최근에 읽게 되었다.

 

 음, 살인자가 쓴 글이라서 먼가 리뷰를 쓰기 꺼려진다. 왠지 별점 5개를 준 것부터 그를 두둔하려는 것 같고 괜한 오해를 사게될까 싶다. 어찌되었든 솔직하게 리뷰를 써보겠다.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아니, 예상 밖이었다. 그의 글솜씨, 교양 모두 뛰어났다. 마치 한국 실사판 <죄와 벌>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다. 이 책은 실화이다. 논픽션이다. 박철웅 개인의 고백, 삶의 이야기이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는 없지만, 죽기전에 허튼 소리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진실된 고백이었다.

 

 그는 3명을 살인하고 시체를 은닉했다. 그리고 사형을 선고받고 사형이 집행되었다. 1979년 '서울 금당살인사건'의 주범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지만 세상을 떠들석하게 한 사건이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에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면 아주 잠시 회자될 것 같다. 너무도 흉악한 범죄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뉴스에서 가방에서 여성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 가방을 열어본 택시기사분은 얼마나 놀랐을까ㅠ?)

 

 나는 이 책을 왜 읽었을까? 살인자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살인자가 직접 쓴 책은 처음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살인자의 이미지와 박철웅은 너무도 달랐다. 그게 가장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살인자하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혹은 극악무도한 악당, 악을 떠올린다. 피도 눈물도 없는, 혹은 감정도 자비도 없는. 물론 모든 살인자가 이런 것은 아니다. 살인의 대부분이 치정살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발적 살인이라고 한다. "죽일 생각까진 없었다." 흔한 살인자의 변론이다. 책을 읽으면서 '무엇이 박철웅을 살인까지 몰고 갔는가?' '왜 그는 살인자가 된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되돌아오는 대답은 '잘 모르겠다.' 였다.

 

 물론 박철웅은 나쁜 놈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살인자만큼의 나쁜 놈은 아니었다. 가끔 좋은 면 진실된 면도 보여준다. 이 정도의 나쁜놈은 흔해 빠졌을 것이다. 아니 이보다 더 나쁜 놈들도 우리 주변에 분명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예상 외로 박철웅의 어린시절은 행복했다. 살인자 하면 어린시절에 학대받고 사랑도 못받고 자랐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니었다. 그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여자', '향락' 이었다. 부유한 부인을 얻게 된 그는 사업도 하면서 밤문화에 빠져든다. 돈을 펑펑쓰면서 요정, 나이트클럽을 전전한다. 책을 읽어보면 여자들에게 참 인기가 많았다. 하긴 1년에 하루도 빠짐없이 나이트클럽을 다녔으니... 아무튼 그는 끝없는 향락에 빠져들어 자신의 힘으로는 빠져나오려고 해도 나올 수가 없었다. 어쩐 날은 그의 부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며 회개를 다짐하지만, 이미 중독된 생활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향락'이 그를 망쳐놓았다.

 그리고 그는 정의감이 부족했다. 옳고 그름에 대한 선(線)이 부족했다. 이성보다는 본능이 앞서는 남자였다. 때문에 가끔 남들이 보통 넘지 않는 선을 그는 가뿐하게 뛰어넘었다. 마치 모든 것이 자신에게 허용된다는 듯이. 자신에게 잠재된 폭력성을 그는 억제하지 못했다. 그 폭력성이 그에게서 점점 자라났다. 아니 잉태되었다. 마침내 살인도 할 수 있을 만큼.

 

 그는 살인을 하기 전에 이미 교도소에도 한 번 다녀왔었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기독교에 귀의하여 잠시 종교에 몸 담아보지만, 속세에 나와서는 그럴 수 없었다. 속세에는 '밤'과 '술'과 '여자'가 있기 때문이다. 살인을 하고 다시 교도소에 들어간 그는 다시 기독교에 귀의한다. 그리고 회개한다. 양순자 어른이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만약, 너가 사면되어 밖으로 나간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러자 박철웅은 답한다. "죽을 죄를 지었으니 죽겠습니다." 양순자 어른은 한편으로는 이 말을 이렇게 받아들인다. '속세에 나가면 자신은 다시 죄를 저지를 수도 있으니, 이대로 죽음으로서 죄값을 치르고 싶습니다.' 나또한 양순자어르신의 의견에 동의한다. 박철웅은 정말 진심으로 회개했지만, 그것은 교도소 안에서 그리고 죽음 앞에서 회개한 것일 뿐일 수도 있다. 인간이란 본래 유혹에 약하다. 오죽하면 오스카 와일드는 "나는 유혹을 제외한 모든 것에 저항할 수 있다." 라고 했겠는가. 다시 속세의 물을 먹게 되고, 예전의 '향락'을 접하게 되면, 그는 교도소 안의 박철웅, 그리스도인으로 남을 수 없을 것이다. 예전에도 그는 한 번 독실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 이었지만, 속세에서도 그 신념을 지킬 수는 없었다. 종교인들이 속세를 멀리하고 산 속에, 수도원에, 절에 틀어박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과연 현실에서도 자신의 순결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니깐 클레오파트라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느냔 말이다.

 

 몇 번 박철웅에게도 제대로 된 삶을 살 기회가 있었다. 성실한 세일즈맨으로 생활하며 재혼한 여성과 진실한 사랑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그는 여자를 사랑할 때는 정말로 진실되게 사랑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여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아무튼 재혼한 여성이 갑작스럽게 암으로 죽게 되고 그는 몇 일 밤낮을 먹지도 자지도 않으며 슬퍼한다. 그 후에도 직장에 취직해서 아랫사람을 감싸주기도 하고 제대로 살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비켜간다. 아니 그가 그런 평범한 삶을 유지하고 지탱하지 못했다. 그는 너무도 충동적이고 격정적인 남자였다. 그에게는 내적 브레이크도 외적 브레이크도 없었다. 남들은 참고 삭이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은 그에게 무리였다. 분노조절장애인 걸까? 어쨌든 그것은 그의 정체성의 한 일부였고, 그것이 그의 파멸을 부추겼다.

 

 소설 <빅 빅처>가 생각난다. 그 소설도 살인자의 이야기이다. 그 또한 매우 평범한 사람이다.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다. 자신이 처한 환경과 운명이 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이는 위험한 생각이다. 하지만 이성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개인과 환경,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중요치 않다. 둘 다 중요하다.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 어떤 환경에 자신을 내맡길지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악에 속하면 악에 물들 것이고, 선에 속하면 선에 물들 것이다. 그리고 충동적이고 격정적인 반응은 자제해야 한다. 한 번의 실수가 커다란 재앙이 될 수 있다.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 죄를 짖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죄와 벌' 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사형수의 진솔한 고백이었다. 그를 두둔하거나 안타깝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운명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다른 운명의 여신이 그를 인도했다면, 그는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가 원한 인생도 그가 원한 결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읽는 우리는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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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0 22: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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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0 22: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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