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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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지금까지 본 책 중에서 가장 슬픈 책이었다. 눈물이 나진 않았다. 하지만 자주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책읽기를 멈춰야했다.

 

 사람이 전쟁보다 귀하다.

 

 이 명제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있다. 때문에 인류 역사상 전쟁이 없던 때는 없었다. 내가 혹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분명 사람이 전쟁보다 귀한 것 같은데, 한 사람의 생명이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가치보다 귀한 것 같은데, 막상 전쟁 앞에서 이런 생각은 감상적인 생각으로 여겨진다.

 

 이 책은 2015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가의 작품이다.

 

 "다성악 같은 글쓰기로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담아낸 기념비적 문학"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어보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빌렸다. 가벼운 마음이었다. 체르노빌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왜 이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서문을 읽고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유를 알 수 있었고, 책의 내용이 가차없이 슬퍼서 80p를 채 못 읽고 책을 덮었다. 논픽션이 가지는 힘을 느꼈다. 만약 <체르노빌의 목소리>에 실린 글이 사실이 아닌 허구였다면, 그렇게 순식간에 몰입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어쩌면 지나치게 슬픔을 자아내고 너무 신파적이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진실이기 때문에 슬펐고, 피로 쓴 글이기에 읽기가 고통스러웠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너무 슬퍼서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구입했고, 두려운 마음을 간직한 채 책을 읽어나갔다.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예방접종이 된 탓인지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전쟁의 민낯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전쟁의 풀메이크업 된 상태만을 봐왔던 것이다. 전쟁의 민낯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훨씬 잔혹했으며 훨씬 구체적이었으며 훨씬 안타깝고 슬펐다.

 

 전쟁하면 우리는 이순신, 알렉산더 대왕, 칭기스칸, 나폴레옹, 시저 등 영웅들을 떠올리거나, 숭고한 희생, 국가에 대한 충성 등을 떠올린다. 그 전쟁을 겪는 당사자들을 쉽게 떠올리지는 못한다. 전쟁에 참전한 병사 한 명 한 명, 그리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약탈과 굶주림을 겪는 국민들을 떠올리지는 못한다. 병사 한 명 한 명은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이며, 혹은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였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고, 그런 경험들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많은 영화나 책에서 전쟁을 다루지만, 그 치부를 모두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도 그것을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말하고 싶어 하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그 누가... 젖을 먹이는 어미에게서 갓난아기를 빼앗아 내동댕이쳐서 머리가 터지는 이야기를 보거나 읽고 싶어할 것인가? (책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잔혹한 장면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을 사람도 불쌍하고 읽지 않을 사람도 불쌍하고, 그냥 모두 다 불쌍해......"                        -본문에서

 

 

 이 책은 저자가 세계 2차대전에서 독일의 침략에 맞서서 참전했던 200여 명의 구소련 여성들을 한 명 한 명 직접 찾아가서 인터뷰한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문학이다. 독일의 전차와 전투기는 거침없이 진군했고 순식간에 러시아를 초토화 시켰다. 러시아의 남자들은 총을 들수만 있으면 전쟁터에 나가야 했다. 총보다 키가 작은 소년, 소녀 병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러시아 남자들이 전쟁에 참전했지만 열세였고, 뒤이서 여성들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진해서 전쟁에 뛰어들었다. 분명 전쟁은 슬픈일이다. 살기 위해서 죽으러 가는 상황. 모두 살아남고 싶어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쉽게 쉽게 죽어나간다. 구소련은 200만 명의 여성이 전쟁에 참전했다고 한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하는 역활도 용감히 수행했고, 간호병, 통신병, 취사병 등 전쟁의 후방에서 지원하는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에서 돌아온 여성들은 사회로부터 냉대를 받게 된다. 전쟁터에서 남자들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전쟁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대우와 꼬리표를 달게 된다. 전쟁에서 돌아온 남성은 용감한 남성으로 추앙받지만, 여성은 참전 사실을 숨겨야만 했다.

 

 여성의 시각으로 기록된 목소리는 전쟁의 참상을 더욱더 생생하게 들려준다. 남자들이 전쟁이야기를 할 때 등장하는 영웅담이나, 전술, 승리는 사라지고, 슬프고 가련한 이야기가 그 자리는 차지한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그럼 전쟁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최근에 IS의 파리 테러가 있었다. 전쟁은 지금 이순간에도 또다시 시작된다. 그리고 반복된다. 전쟁은 인간이 가진 또 다른 얼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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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2015-11-24 0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있는 리븅^^ 감사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15-11-24 09:29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이야기꾼 2015-11-25 0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주변에서 다들 추천을 해서 장바구니에는 담겨있는데...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 예상되서 아직까지 구매버튼을 누르진 못하고ㅠ있네요. 멋진 리뷰 감사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15-11-25 10:38   좋아요 1 | URL
그 마음 이해가 가네요. 저도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다시 읽기가 두렵습니다. 하지만 먼가 읽어야 할 의무감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저자가 피땀흘려 쓴 책이고, 200명의 소중한 목소리가 담긴 책임에는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