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기옥이란 캣과 원기옥의 합성어이다. 물론 내가 만든 단어다. 원기옥이란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기술이름으로 여러 사람의 힘을 모아서 거대한 힘을 만드는 기술이름이다. 그러니깐 캣기옥이란 단어는 캣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을 모으고 도움을 받고 싶은 나의 소망을 드러내는 단어이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떠나간 것 같다. 도움이 필요한데,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작해버렸다. 아무튼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

 

 앞서 쓴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라는 리뷰에서 밝혔듯이 최근에 어떤 분과 동물의 권리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결과는 무승부? 혹은 협상결렬로 끝났다. 다른 생각은 결국 다른 생각으로 남는 걸까? 생각에 옳고 그름은 없는 걸까? 빌어먹을 상대주의! "너도 옳고 나도 옳아. 생각이 다를 뿐이야. 끝" 보편적 합의란 없는 걸까? 설득하지도 못했으며, 설득당하지도 않았다. '동물의 권리에 대한 문제는 이성의 문제가 아닌 감성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야기를 재구성해보자면, '캣맘'에 대한 토론이 있었고, 동물의 권리에 대한 토론으로 넘어왔다. 나의 입장은 '모든 동물은 거의 평등하다.' 이며 '동물의 생명과 권리는 지켜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와 반대되는 사람의 입장은 '동물보다 인간이 우월하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의 생명이나 권리에 대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선택은 인간의 몫이다.' 라는 입장이다. 흠, 글로 써보니 맞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 '저건 아니야!' 라고 맘 속에서는 강한 반발이 일어난다.

 

 구체적인 예로 들어가서 나눈 이야기는, 도심 속에서 고양이문제이다. 나와 반대되는 입장의 사람을 줄여서 '반캣군'이라고 하자. 반캣군의 주장은 이렇다.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인간이 방해를 받거나 다른 불편을 겪는다면, 적극적으로 그 지역의 고양이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던지, 개체수 조절을 위해서 중절수술을 하거나 안락사시켜야 된다는 주장이다. 나는 인간이 고양이를 마음대로 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으며, 고양이가 일부 인간에게는 불편을 줄 수 있지만, 일부 인간들에게는 행복을 줄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며 고양이를 보기만해도 행복하다!)

 그러면서 나는 이런 비유를 들었다. "만약에 지구에 지구인보다 강하고 우월한 외계인들이 와서 지구인을 함부로 죽이거나 몰살시켜도 되냐?" 고 물었다. 본래 내 계획은 어떤 종이 다른 종보다 힘이 우월하다고 해서 함부로 생명을 해치면 안된다는 주장을 하려고 했는데, 반캣군의 답변은 "그렇다." 였다. (제길, 실패다...) 그리고 현재 인간이 다른 동물들을 그렇게 대하고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먹기 위해서 동물을 죽이나 유희적 사냥이나 다른 목적으로 동물을 죽이나 똑같은 것이라 이야기했다. 나는 절대 그럴리 없다고 생각하고 반론을 펼치려 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랬다. 우리는 이미 살기위해서 어쩔 수 없이 동물을 먹는 것이 아니다. 이미 채식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동물을 먹으면서 동물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니, 이 얼마나 모순인가?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소, 돼지, 닭, 오리 등 고기를 엄청나게 먹어 왔고 먹고 있으며 앞으로도 먹을 것이다. 그러면서 고양이는 죽이면 안된다는 둥 고양이의 권리를 지켜줘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돼지나 닭들이 들으면 분명 엄청 서운할 것이다. '저는요?' 하고 반문한다면 할 말이 없다. 물론, 유희적으로 동물을 죽이는 것과 식용을 목적으로 동물을 죽이는 것은 다르다고 여러 논리로 반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심미적, 감정적으로 둘은 분명 다른 것일 테지만, 정말로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까? 하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속으로는 "그건 미친 생각이야!" 라고 감정적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이성적, 논리적으로는 반박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동물의 권리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얻고 싶었고, 세계적인 생명윤리철학자 피터 싱어의 책을 보게 된 것이다. 아쉽게도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란 책은 이론적 이야기가 아닌 헨리 스피라라는 동물해방운동가의 삶을 다룬 평전이었다. (물론 이론적 이야기가 없어서 아쉬울 뿐이지 아주 훌륭하고 좋은 책이었다.)

 

 요약하자면, '우리가 먹기 위해서 동물을 죽이는 것과 유희를 위해서 동물을 죽이는 것이 정말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까?' 라는 것이다. 실험실에서 그리고 식용으로 사육되는 무수히 많은 동물들이 죽어나간다. 끔찍한 환경에서 자라고 죽는다. 죽기위해 산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양의 동물을 인간은 소비하고 있으면서 모순적으로 동물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의 주인공 헨리 스피라는 동물해방운동을 실천하면서 채식으로 돌아섰다. 신념과 실천이 일치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나는 동물을 먹는다. 때문에 내게는 동물의 권리를 말할 자격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극단적인 이분법으로도 보인다. 분명 무수히 많은 경계가 존재할 것이다. 동물을 먹지만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과 동물을 먹고 개나 고양이도 함부로 죽이는 사람은 분명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둘이 얼마만큼 다를까? 먹히는 동물 입장에서는 그 둘은 똑같이 보이지 않을까? 아니면 오히려 '흥, 나는 먹으면서 개와 고양이만 좋아하는 군' 이라고 오히려 차별하는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아니면 좀더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그래 나는 먹지만 개와 고양이는 사랑해다오~.' 라고 이야기 할까? 아마도 후자쪽은 아닐 것 같다.

 

 어떤 동물은 죽여도 되고 어떤 동물은 죽이면 안되는 걸까? 우리나라는 개를 먹는다. 이는 프랑스나 서구 사회에서는 때론 경멸과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이 때 우리는 문화상대주의를 내세우며 비난하는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불교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육식을 금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생각했었다. 왜 동물은 안되고 식물은 되는 것인가? 생명을 해치지 않으려면 동물뿐만아니라 식물의 생명도 해치지 말아야지! 라고 마음 속으로 반문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비난의화살이 내게로 돌아왔다. 왜 돼지, 소, 닭, 오리, 염소, 양, 말, 물고기 등등은 먹으면서 고양이는 보호해줘야 된다고 생각하는가? 동물의 권리란 인간의 단순한 감정적 선호에 불과한 것인가? 인간과 동물이 평등하다고 했는데, 아마 어느 누구도 인간 한 명의 생명(어느정도 윤리적 인간)과 동물의 한 마리의 생명의 가치를 똑같이 여기지는 않을 것 같다.   

 

 정말 모든 동물은 평등한 것일까? 더 많은 책들을 통해 내가 해결해야 할 숙제인 것 같다. 답답한 마음에 글을 썼다. 혹시나 이런 긴 글을 읽고 조언을 해주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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