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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터키까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마쓰무라 에이조 사진 / 문학사상사 / 2015년 7월
평점 :
이 책은 <우천염천>의 개정판이다. 개정에 맞춰 여행사진도 수록되어 있다.
하루키의 매력의 끝은 어디인가? 장편소설도 좋고, 단편소설도 좋고, 에세이도 좋고, 여행기도 좋다. 어느것 하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모든 작품이 다 좋다. 정말 손에 잡히는 확실한 행복을 내게 선사해주는 하루키씨가 너무 고맙다.
이 책에도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문이 있어서, 굉장히 감동스러웠다. 정말 하루키의 글을 읽다보면 순간 나도 이런 멋진 글을 쓰고 싶다는 그런 불같은 욕망이 솟을 때가 있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좋아.' 라는 다소 과격한 생각까지 떠오른다. 생각해보니 너무 과격하다. 오로지 하루키의 글들만이 나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끔 한다. 이번이 2번째였다. 첫번째는 아마도 <스프트니크의 연인>이었던 것 같다.
마치 그리스와 터키에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다. 하루키씨는 너무도 생생하게 그리스와 터키의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그 공기까지 그려내서 나의 머릿 속에 어렴풋이 그 전경이 떠오르는 느낌이다. 그리스와 터키 꼭 여행가리라.
아름다운 미문을 담아보며 글을 마친다.
거꾸로 말하면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예상대로 풀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것, 이상한 것, 기막힌 일들과 조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127p
이것으로 우리의 아토스 여행은 드디어 끝이 났다. 우라노폴리스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제일 먼저 한 것은 타베르나에 들어가 차가운 맥주를 마음껏 마신 것이다. 맥주는 한순간 정신을 잃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그리고 마음 내키는 대로 세속적인 식사를 즐긴다. 생선 수프와 감자튀김, 무사카, 정어리, 오징어, 샐러드를 주문한다. 그리고 차에서 라디오 카세트를 꺼내와 비치보이스를 들으면서 천천히 식사를 한다. 리얼월드다. 이제 누가 곰팡이가 핀 빵 따위를 먹을까 보냐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이상할 정도로 아토스가 그리워졌다. 사실을 말하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왠지 모르게 그곳이 그립다. 그곳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과 그곳에서 본 풍경과 그곳에서 먹은 것들이 너무나 실감 나게 눈앞에 떠다닌다. 그곳의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조용하고, 농밀한 확신을 갖고 살고 있다. 그곳의 음식은 단순하지만 생생할 정도로 실감 있는 맛으로 가득했다. 고양이조차 곰팡이가 핀 빵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쓴 것처럼 종교적인 관심이라고는 거의 없는 인간이고 그렇게 쉽사리 사물에 감동을 하지 않는, 굳이 말하자면 회의적인 타입의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아토스의 길에서 만난 야생 원숭이처럼 지저분한 수도사로부터 “마음을 바꿔서 정교로 개종을 한 뒤에 오시게” 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일을 묘하게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물론 내가 정교로 개종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수도사의 말에는 이상한 설득력이 있었다. 아마 그것은 종교를 운운하는 것보다는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한 확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확신이라는 점에서는 전 세계를 찾아봐도 아토스처럼 농밀한 확신에 가득 찬 땅은 아마 없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들에게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신에 가득 찬 리얼 월드인 것이다. 캅소카리비아의 그 고양이에게 곰팡이가 핀 빵은 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인 것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어느 쪽이 현실 세계인가?
-14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