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의 말씀과 분자생물학, 면역학의 발전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역시나 다치바나 다카시씨는 전무후무합니다. 이렇게 수준 높은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다치바나 다카시씨 외에 또 있을까 싶습니다.
굉장히 오래전에 출간된 책인데 2020년에 한국에서 재출간되었습니다. 1970년대의 과학자의 연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가능한 한 연구를 하지 마라'고 얘기해요.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자주 얘기 하지요. 그래요. 한 사람의 과학자가 평생 쓸 수 있는 연구 시간은 극히 한정돼 있습니다. 연구 주제는 얼마든지 있지요. '꽤 재미있겠는데'라는 정도로 주제를 정하면 정말로 중요한 주제를 연구할 짬이 없고, 그러다 일생이 끝나버려요. 나는 '이게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라면 평생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주제를 찾을 때까지 연구를 시작하지 말라고 말하는 겁니다.
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 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아이디어이지요.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은 곧 '무엇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입니다. 젊을 때 가장 필요한 점은, 정말 중요한 것을 중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익히는 일입니다. 젊을 때 이 능력을 익히지 못한 사람이 많아서, 어떻게 되는 상관없는 것을 하고 있음에도 자신은 뭔가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일생을 마치는 과학자가 많은 겁니다." -p104
시간관리 능력입니다. 과학자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중요한 일입니다. 무엇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지 판단하는 능력을 먼저 키워야 합니다. 그 후에 무엇을 하지 않을지. 무엇을 해야할지 결졍해야 합니다.
그 시절에 한 동료 과학자와 얘기를 나눴는데, 그도 수재 타입이 아니라더군요. (웃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과학자 쪽을 택한다고 해요. 그의 말인즉, 인간의 머리 용량은 대체로 모두 정해져 있어서 기억력이 엄청 좋은 수재 타입은 거꾸로 번뜩이는 능력이 없답니다. 수재 가운데 좋은 과학자가 좀처럼 나올 수 없는 이유가 절대 기억력이 방해를 하기 때문이랍니다.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에 머리 어딘가에 구멍이 뻥 뚫려 있는 셈이지요. 이 때문에 이따금 이상한 생각을 한답니다. 이런 게 과학자에게는 중요하다나.... -p132
저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창시절 기억력이 매우 좋은 친구들을 그렇게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억력이 좋지 않지만 이해력, 사고력 등 다른 능력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점은 치열하게 보고 치열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일주일 걸려 한 실험이 실패했다면 그 일주일을 그냥 날려버리고 싶지 않아서, 쓰러질 때 쓰러지더라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열심히 들여다봐요. 왜 이게 실패했을까, 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합니다. 관찰과 고찰에 쏟는 집중력이지요. 이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p176
역시 중요한 것은 집중력입니다. 자신의 모든 능력을 한 곳에 쏟을 수 있는 힘입니다.
실패가 연속되면, 실험이 싫어진 적은 없었습니까?
"그런 사람은 과학자가 되려고 하지 않겠지요. 아무리 실패해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계속 탐구하는 것이 과학자의 기본 조건이라고 봅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돼' 하면서 계속 쫓겨 다니다가 어딘가에서 돌파구를 찾게 됩니다. 그 때까지는 계속 '이것도 아니야, 저것도 아니야' 라며 생각을 이어가지 않으면 돌파구를 만날 수 없어요."
그렇게 '안 돼. 안 돼'가 계속되면 의기소침해지지 않습니까?
"그럴 때가 다소 있습니다만, 그것을 떨쳐버릴 정도의 낙천가가 아니면 안 되겠지요. 나는 상당히 낙천적이어서 어떤 실패를 해도 하룻밤 자도 나면 금방 기운을 회복하고, '자, 다음 실험을 해볼까' 하는 기분이 돼요. 아무리 안 되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아요. 나와 함께 노벨상을 받은 초전도의 뮐러도 그런 것은 될 턱이 없다고 모두가 얘기한 세라믹에 의한 초전도를 몇 년이고 실패에 실페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성공시켰어요. 분야는 조금 다르지만 프랙털이론의 수학자 망델브로도 그 이론을 완성하기까지 40년간이나 날이면 날마다 한 가지만 계속 생각한 모양이에요. 세계의 여러 연구실을 3년 내지 4년마다 전전하면서 달리 업적도 별로 올리지 못했지요. 그래서 교수가 되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오로지 자신의 연구를 40년간 뚜럭뚜럭 홀로 이어갔지요. 실패에 기죽지 않는 낙천성과 정신적 강인함이 필요해요." -p179~180
이 역시 과학자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필요한 자세입니다. 실패에도 굴하지 않은 자세. 낙천성과 정신적 강인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면역계와 신경계의 유사성은 표면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더 실질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들이 최근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얘기냐면, 예컨대 이제까지 뇌 특유의 것이라고 했던 단백질이 몇 가지 있지요. 그것은 뇌 이외에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잘 조사해보니 면역계에도 있었어요. -p236
요즘은 대장의 면역계와 뇌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상식이 되었습니다. 한약이 정신과 치료에도 효과가 탁월한 것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이런 수많은 밀접한 관계들을 모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