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인생과 대면한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다는 사실과 맞닥뜨린 것이다. 그에게 이런 것이 무의미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이것이 삶 자체였기 때문이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삶의 반영을 다루는 공무 분야에서 전 생애를 보냈다. 그래서 그는 삶 자체와 부딪칠 때마다 매번 그것을 회피했다. 이제 그는 낭떠러지 위에 놓인 다리를 침착하게 걸어가던 사람이 문득 그 다리는 허물어졌고 그 아래에 깊은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음 직한 그런 감정을 맛보고 있었다. 이 심해는 삶 자체였으며 다리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살아온 인공적인 삶이었다. 그의 아내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는 이러한 의혹 앞에서 전율했다. -p311
정말 멋진 문장들입니다. 문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톨스토이 같은 작가의 소설을 보면 깨닫게 되는군요.
그녀는 자신의 신경이 줄감개에 조인 현처럼 점점 더 팽팽해지는 것을 느꼈다. -p223
이후로 2페이지 정도로 묘사가 이어지는데, 문장이 너무 좋습니다. 비유도 좋습니다. 생생하게 인물의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경험하는듯이 혹은 예전에 경험했던 기억이 떠오르듯이.
그녀는 눈을 뜬 채 오랫동안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눈동자가 뿜는 광채를 본 것 같았다. -p322
와. 감탄을 자아내는 문장입니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지.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지.
그의 모습은 마치 불을 끄려고 헛되이 애쓰던 사람이 자신의 헛수고에 화를 내며 '꼴좋군!' 그것도 그렇게 다 태워 버려!'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p434
역시 좋은 비유입니다.
키티가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건 말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마담 슈탈은 키티와 이야기할 때,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넋을 빼앗긴 표정으로, 자신의 젊은 날을 떠올리는 듯한 표정으로 키티를 바라보았다. 마담 슈탈은 오직 사랑과 믿음만이 인간의 고통에 위로를 주며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그리스도의 눈에 하찮은 슬픔은 없다는 말을 단 한 번 했을 뿐, 그나마도 금방 화제를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키티는 그녀의 몸짓과 말, 거룩한 - 키티의 표현대로 - 눈길, 특히 바렌카를 통해 알게 된 그녀의 일생, 그 모든 것에서 지금까지 몰랐던 것, 즉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p482
문장, 묘사, 비유. 톨스토이의 글을 보니 무엇이 중요한지 알 거 같습니다. 문장이 전부다라고 말한 하루키의 말이 점점 더 ㅇ해가 됩니다. 결국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는 수단은 문장 뿐이니까요.
화해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온 이후 키티에게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세계가 모두 변했다. 그녀는 자신이 알게 된 모든 것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가 바라는 대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속여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마치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그녀는 위선과 오만 없이 자기가 도달하고자 하는 그 경지를 고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실히 느꼈다. 그 밖에도 그녀는 그녀가 살고 있는 세계, 즉 슬픔과 질병과 죽어 가는 사람들로 가득 찬 이 세계의 무게를 느꼈다. 그녀는 이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 억지로 노력하는 것이 괴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하루빨리 상쾌한 공기 속으로, 러시아로, 예르구쇼보로 가고 싶었다. 편지를 통해 알게 된 바로는, 언니 돌리가 아이들과 함께 예르구쇼보로 거처를 옮겼다고 했다. -p508
키티가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즉시하게 되는 것을 묘사한 문장입니다.
'어차피 정점은 하나' 요즘 제 머릿 속에 자주 떠오르는 문구입니다. <안나 카레니나> 역시 최고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