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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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욕이 많다. 한나 아렌트의 훌륭한 책이 번역으로 욕을 봐서 안타깝다. 못 읽을 수준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좋은 번역은 아니다. 뒤로 갈수록 화가 나는 번역이다. 다른 좋은 번역판으로 나와야할 책이다.


 최악까진 아니지만 나쁜 번역 중 하나로 '악의 평범성' 이란 번역이 있다. 많이 인용되는 단어다. 이 번역은 한나 아렌트의 뜻을 왜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악의 진부성' 이 더 좋은 번역이라 생각한다. 아이히만은 평범하지 않았다. 아이히만은 진부하고 천박했다. 평범이하였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악의 평범성' 이라고 나도 사용하고 그 개념도 오독했었다. 악은 평범하다. 평범한 사람도 악인이 될 수 있다 등.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 한나 아렌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다. 다른 데에서는 어떻게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는 확실히 아니다. '악의 진부성' 에 대해 유튜브나 네이버에 좋은 글들이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보시기 바란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다. 실제로 홀로코스트가 어떻게 벌어졌는데 디테일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히만이 어떤 인물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아이히만과 같은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사유의 무능성,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아이히만을 떠올렸다. '아, 이 사람은 아이히만과 같은 위치에 있었으면 600만 명을 학살하는데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사실은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들과 아이히만이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아이히만은 이럴꺼야라고 생각했던 모습들을 한나 아렌트의 글을 통해 확인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독서 모임 인원은 6명이었다. 모임 마지막 쯤에 나는 질문을 던졌다. 만약 자신이 아이히만과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히만처럼 명령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사표를 쓸 것인가. 결과는 어땠을까? 내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아이히만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 답했다. 그 수는 3명이었다. 나를 포함한 2명은 사표를 쓸 것이라 했다. 


 악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우리 주위에 있을 수도 있고 우리 안에 있을 수도 있다. 생각하기를 멈출 때, 무관심할 때, 타인의 입장과 고통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때 언제나 악은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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