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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선을 넘는다 - 나와 당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11개의 시선
오후 지음 / 사우 / 2020년 2월
평점 :
오후의 책을 벌써 3권 읽었다.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를 읽고 <아주 공적인 연애사>를 읽었다. 두 권 모두 유쾌하고 재밌었다. 이번 책도 그럴 줄 알았다. 재밌고 유쾌한 영화이야기를 생각했었다. 예상과 달랐지만 오히려 더 좋았다. 이번 책은 유머가 없다. 유쾌하지도 않다. 니체가 말했던가? 오직 피로 글을 쓰고 피로 쓴 글만 읽으라고. 이 책은 피냄새가 난다. 독기와 배짱이 느껴진다.
오후 그는 자신을 아나키스트라고 말한다. 아나키스트를 글로 만나긴 처음이다. 그의 사회, 정치적 입장이 굉장히 급진적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정도 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의 주장과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원래 세상이 미쳐있을 땐 바른 소리를 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 마련이다. 내가 보기엔 11개의 시선 모두 타당하다. 미쳐있는 건 우리 사회다. 나도 평소 자주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세상은 분명 정상이 아니라고, 후손들은 분명 우리 사회의 모습과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이 책에 명나라 시대 유학자 이탁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탁오는 54살에 평생을 몸담았던 관직을 그만둔다. 그리고 자신이 이제까지 인생을 개같이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따라 짖는 개였다는 것이다. 그는 유학이 금기시했던 모든 것에 대해 반문하기 시작한다. 또한 학교를 세워 제자를 육성했는데 남녀 구분없이 가르쳤다. 유학은 여성을 천시했기 때문에 여성의 교육과 토론은 용납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미래의 영혼이 이탁오의 몸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일까? 그렇게 그는 76세에 감옥에 투옥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저자는 영화를 마중물로 11개의 시선으로 이 시대를 비판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그의 글은 차갑지 않다. 뜨겁고 거침없다. 그는 이 시대의 이탁오다. 다행히 요즘은 현재 사회의 모순이나 시스템을 비판한다고 잡혀가거나 하지는 않는다. (불과 몇 십년 전에는 잡혀갔다.)
그의 시선 덕분에 나도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깨닫고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는 이상을 말한다. 현실주의자들은 그의 이상이 실현불가능하다고 비판할 것이다. 이상을 제시하는 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달을 가리켰는데 손가락만 바라보는 것은 정말 답답한 일이다.
주인공은 선을 넘는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주인공이다. 일단 이 책을 읽고 우리를 둘러싼 선들이 어떤 선들이 있는지 깨달아보자. 선을 넘을지 말지 선택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