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은 막스 플랑크로 인해 시작된다. 그는 피아니스트가 되고자 했다. 그가 한 교수에게 음악대학의 전망을 묻자 퉁명스럽게 생각을 바꾸라고 이야기했다. 막스가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자 아버지가 그를 물리학교수에게 보냈다. 그런데 그 교수는 물리학을 전공하지 말라고 열심히 설득하는 사람이었다. 뉴턴의 운동법칙, 에너지 보존법칙의 발견이후 물리학은 전체적으로 안정된 학문이고 완성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시각이 그 당시 팽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막스 플랑크는 이런 물리학이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막스 플랑크는 혁명가라기보다 공무원같은 인물이었다. 막스는 양자를 발견했지만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몰랐다. 


 막스 플랑크는 양자에서 다시 벗어나려고 수년간 노력했다. 영국의 존 윌리엄 스트럿, 제임스 진스, 핸드릭 로렌츠 같은 다른 물리학자들도 양자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그들은 에테르의 연속체를 믿었다. 그들은 뉴턴과 맥스웰을 믿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양자는 유지될 것이다. -p29  



 시간은 흘러 1918년 스페인 독감에 관한 재미난 사실이 있어서 이야기해본다. 1918년 세계 1차대전시기에 세계를 강타한 독감이 있었다. 전세계적으로 5천만명이 이 바이러스로 인해 죽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두 배나 많은 수치다. '스페인 독감'은 스페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지만 그 당시 스페인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전쟁 선전과 보안 검열이 없었다. 그래서 스페인 신문만이 전명병 기사를 낼 수 있었다. 



 아래는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재미난 일화이다. 3년 만에 조우한 두 사람은 만자나마다 물리학에 관한 대화에 깊이 빠져들었다. 전차를 타고 보어의 연구소로 향하는데 이야기에 몰두하느라 계속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쳤다. 


 보어는 나중에 이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전차를 타고 같은 구간을 여러 번 오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안중에 없었다." -p150  

 

 두 천재의 집중과 몰입을 보여주는 재미난 일화이다. 


 

 아래는 디랙에 관한 재미난 일화이다. 나중에 밝혀졌듯이, 디랙은 자폐 성향이 있었다. 


 하루는 식사 도중 어떤 사람이 디랙과 대화를 나눠보기 위해 휴가 때 어디로 갈 생각인지 물었다. 그러나 그는 침묵했다. 후식을 먹은 뒤에 디랙이 되물었다. "그게 왜 궁금합니까?" 타인의 관심이 싫어서 이렇게 대꾸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그런 일에 관심이 있을 수 있는지 그로서는 정말로 이해되지 않아서였다. 디랙은 스몰토크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원자와 특수상대성이론이다. 그리고 위대한 시간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p190


 디랙은 뛰어난 수학자였다. 나도 스몰토크 감각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디랙에게 공감이 됐다. 



 책을 보면 재밌게도 세계의 모든 의견은 대립하는 거 같다. 물리학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할 때 기분이 상한다. 인격에 대한 공격이 아니지만 인격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아래는 파울리가 슈뢰딩거에게 보내는 사과의 편지의 내용이다. 

 

 "친애하는 슈뢰딩거 교수님, 부디 날 비난하진 마십시오. 당신의 이론은 아주 멋집니다만, 세계와 맞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티끌만큼도 인격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이 곧 인격인 사람이라면 이것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p250  



 아래는 다시 디랙에 관한 글이다.


 디랙은 코펜하겐에서 단 세 가지 표현으로 대부분의 대화를 해결했다. "네", "아니요.", "모릅니다." 그는 거의 이마누엘 칸트처럼 매우 규칙적으로 생활했다. 일주일에 5일은 이론을 작업하고, 토요일에는 기술 프로젝트를 작업했다. 일요일에는 트레킹을 했다. 매주 똑같은 리듬이 다시 반복되었다. -p259



 아래는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의 원리를 논문으로 쓴 후의 이야기다.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의 논문으로,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가 물리학의 토대라고 여겼던 인과성을 흔들었다. "현재를 정확히 알면, 미래를 계산할 수 있다'는 인과법칙의 명확한 진술에서 틀린 것은 결론이 아니라 전제조건이다." 우리는 현재를 알 수 없다. 우리는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전자의 미래 위치와 속도의 가능성 확률만을 계산할 수 있다. "양자역학을 통해 인과법칙의 무효성이 명확히 입증된다." 논문의 마지막 문장이 말한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통한 시공간혁명에서 감히 그렇게 멀리까지 가지 못했었다. 한때 뉴턴이 상상했던 시계태엽 우주는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변화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는 이마누엘 칸트의 문장도 더는 통하지 않는다. -p287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참으로 충격적이다. 물리학 세계를 굳걷히 지탱했던 인과법칙이 양자의 세계에서는 더는 통하지 않았다. 우리는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가 없다. 확률만을 계산할 수 있다.


 

 아래는 물리학자들의 모임인 제 5차 솔베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의 발표이다. 


 아인슈타인이 조심스럽게 발표를 시작했다. "나는 양자역학의 본질에 대해 충분히 깊이 숙고하지 않았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나는 몇 가지 일반적인 언급만 하고자 합니다." 이 말은 완전히 거짓말이었다. 그는 나중에 한 친구에게 "일반상대성이론보다 양자 문제를 100배나 많이 숙고했다" 고 털어놓았다. 어떤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이 약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잘못 알았다. 그는 양자역학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이해했다. 그는 그것이 불완전하다고 여겼기에 단지 동의하지 않았을뿐이다. -p317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확률론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양자역학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받아들이던지 받아들이지 않던지 둘 중 하나다. 받아들이던지 받아들이지 않던지 양자역학은 현실세계에서 아주 잘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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