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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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9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읽었다. 읽으면서 기억이 살아나는 부분도 있었고 처음 읽는듯이 새로운 부분도 있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처음 읽었을 때보다 깊은 감명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왜 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요즘 피곤하고 컨디션이 안 좋은 탓일까? 나이가 든 만큼 감성이 무뎌졌나? 9년 전에 느꼈던 환희,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 때는 책을 다 읽고 눈이 반짝였는데, 이번엔 그렇지 못했다. 감정이 메마른 탓일까?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알라딘 책소개에는 6편이라고 되어있는데 7편이 맞다.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가 어째서 인지 빠져있다. 하나하나 짧은 감상을 적어본다. (스포 있습니다.)


 표제작 <렉싱턴의 유령>은 처음 읽었을 때는 굉장히 충격적이고 인상적이었다. 마치 직접 경험한 일을 서술하는 듯이 이야기해서 더욱 기묘하게 느껴졌다. 한 밤 중 대저택을 찾아와서 파티하는 유령들. 공포와 호기심으로 이 사건을 경험하는 주인공. 처음 읽었을 때는 정말 생생하고 신기했다면 두번째로 읽었을 때는 이미 알던 내용을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잊고 있었지만 유령이야기만이 아니었다. 저택의 주인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어딘가 쓸쓸한 이야기였다.


 두 번째 작품은 <녹색 짐승>이다.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이 소설이 언급되서 <렉싱턴의 유령>단편집을 찾아보게 되었다. 상당히 기괴하고 예상 밖이고 약간 난해하다. 집에 홀로 있는 여성의 집에 땅 속에서 온 녹색 짐승이 침입한다. 처음에 여성은 공포스럽지만 이 녹색 짐승과 텔레파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리 나쁜 짐승은 아닌 거 같다. 오히려 녹색 짐승은 여자를 좋아해서 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여성이 거절하고 잔인한 상상을 할 수록 녹색짐승은 작아지고 괴로워한다. 이윽고 녹색 짐승은 소멸한다. 이게 무슨 이야기지 싶었는데, 굳이 의미나 교훈을 찾으려면 못 찾을 건 없지만 그러면 이야기가 시시해진다. 그냥 기존 클리세를 여러 번 비트는 독특하고 재밌는 이야기다.


  세 번째 작품은 <침묵>이다. 책은 세번째 작품부터 더 재밌어졌다. 어린 시절 학교 따돌림을 경험했던 남자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작품인데 상당히 재밌었다.


 네 번째 작품은 <얼음 사나이>다. 얼음사나이와 결혼한 한 여자의 고독함 체험담이다. 결혼하면 어찌됐든 한 쪽이 희생하게 되는 것일까?


 다섯 번째 작품은 <토니 타키타니>다. 처음 읽을 때는 몰랐는데 다시 읽으니 매우 좋았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다. 옷을 광적으로 구매했던 아내가 죽은 이야기이다. 일본에서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어 호평을 받았다. 처음에는 이 소설이 영화화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왜 이 소설을 영화화했지? 내용도 별로고 영화화 하기에는 할 이야기도 없지 않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읽으니 충분히 영화화할 만했다. 재발견해서 기뻤던 소설.


 여섯 번째 작품은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이다. <상실의 시대>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소설이다. 한 쪽 귀가 잘 안들리는 사촌동생과 병원을 방문하는 이야기다. 처음 읽을 때는 사촌동생도 사랑스럽고 은근히 사촌동생을 아끼는 주인공도 사랑스러웠는데 두번째 읽을 때는 그런 부분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감정이 메마른 걸까?


 일곱 번째 소설은 <일곱 번째 남자>이다. 이 소설이 가장 따뜻한 소설이었다. 일생 동안 끔찍한 기억으로 괴로워했던 남자의 이야기다.      

 


 <렉싱턴의 유령>을 첫 번째로 읽기 전에 나는 이미 하루키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였다. <렉싱턴의 유령>을 읽고 하루키가 더 좋아졌으며 하루키의 단편소설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좋았던 기억이 있었는데 두 번째로 읽으니 그런 느낌이 안나서 다소 아쉬웠다. 그래도 이렇게 리뷰를 쓰면서 하나하나 떠올려보니 역시나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는 <TV피플>과 <도쿄기담집>을 읽어야겠다. 이 책은 처음보다 좋기를. 하루키는 이런 기묘한 단편을 참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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