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에 언제부터 흥미를 가지게 되었을까? 잘 모르겠다. 언뜻 떠오르는 이야기는 크게 2가지 이다. 첫번째는 대학생 때 본 만화 <기생수>. 만화 <기생수>에는 사람을 재미로 죽이는 연쇄살인범이 나온다. 그 캐릭터가 너무 기괴하고 무서워서 강렬한 인상이 남았었다. 두번째는 대학생 때 본 영화 <조디악>이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이고 조디악이라는 실존했던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역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였다. 이후에 영화, 소설, 만화 등에서 수많은 연쇄살인범들을 만났다.
이 책은 오래 전에 중고서점에서 책 제목이 인상깊어서 구입한 책이었다. 오랫동안 책을 펼치지 않았다가 <마인드 헌터>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이 책을 펼쳐들게 되었다.
<마인드 헌터>는 동명의 책을 소재로한 드라마다. 공교롭게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연쇄살인범에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세븐>, <조디악>, <마인드 헌터> 같은 연쇄살인범을 소재로한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었다. <마인드 헌터> 드라마를 보고 동명의 책도 보고 마침내 <살인자들과의 인터뷰>까지 봤다. 드디어 연쇄살인범과 FBI 프로파일러에 대한 이야기가 막을 내렸다. <마인드 헌터> 시즌 3는 없을 거라고 한다. 무척이나 아쉽다. 높은 제작비 대비 시청자 수가 적다고 한다. 내겐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인데 인기가 많지는 않은가 보다.
아래는 드라마에서도 그랬고 책에서도 가장 긴장감있고 몰입감 있는 장면이다.
"교도관이 와서 당신을 꺼내주려면 적어도 15분, 아니면 20분은 더 걸릴 거요."
그가 말했다. 나는 냉정하고 태연해 보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지만 그만 확연하게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고 말았는데 캠퍼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난장판을 만들어버리면 당신은 무척 곤란해지겠지. 안 그래. 선생? 당신 머리통을 잡아뜯어서 탁자 위에 올려놨다가 교도관한테 보여줄 수도 있다고." -p93
(중략)
"그냥 장난이었다는 거, 당신도 알죠?"
"당연하지."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나 자신은 물론이요 다른 FBI 면담자 역시 다시는 이런 상황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이후로 유죄가 확정된 살인범이나 강간범, 혹은 아동 성폭행범을 면담할 때는 절대로 혼자 가지 않는 것이 우리의 방침이 되었다. 다시 말해 면담을 갈 때면 늘 짝을 지어서 함께 들어갔다. -p96
이 책의 저자이자 FBI요원, 최초의 프로파일러 로버트 K. 레슬러는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실수가 됐을지 모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대담하게도 혼자서 캠퍼의 면담을 진행한 것이다. 에드먼드 캠퍼는 키 2미터 5센티미터에 몸무게는 135킬로그램을 육박하는 거구이다. 놀라운 지능의 소유자로 외조부와 자기 어머니를 포함해 8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다.
4시간에 걸친 면담이 끝나고 레슬러는 교도관을 호출하는 벨을 누른다. 그런데 15분이 지나도록 교도관이 오지 않는다! 아마도 식사 중이거나 근무 교대 중이었던 모양이다. 밖에 교도관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밀폐된 방에 거구의 연쇄살인범과 둘이 남게 된 상황, 결코 침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캠퍼는 장난인지 진담인지 레슬러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둘은 레슬러의 죽음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무사히 교도관이 나타나서 다행이지 정말 아찔했을 거 같다.
아래는 캠퍼에 관한 정신과 의사의 진찰 기록이다. 캠퍼는 외조부모 살해 후 4년 동안 정신병원에서 지내다 조건부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가석방 후 계속 정신과 검사를 받게 된다. 캠퍼는 정신과 검사를 받으면서 연쇄 살인을 저질렀다. 1972년 봄, 외조부모 살인 후 첫 살인을 저질렀다. 어느 날은 시체의 머리를 트렁크에 넣어 둔 채 정신과 의사에게 검사 받으러 가기도 했다.
1972년 9월 캠퍼를 검사했던 정신과 의사 두 명은 캠퍼가 아타스카데로 정신병원에서 지내면서 병세가 많이 호전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중 한 명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이 환자의 과거 기록을 읽지 않았거나 환자가 그런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본인은 정신병력이 전혀 없고 창의적이며 지성적인 젊은이를 상대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요컨대 과거에 살인을 저질러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15세 소년과 현재의 23세 청년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본인은 이 환자가 수년간 치료를 받고 회복기를 거쳐 병세가 상당히 호전되었으며, 자기 자신에게나 사회구성원 누구에게도 위험이 될 만한 정신의학적 사유가 없다고 판단한다.
두 번째 정신과 의사는 다음과 같이 추가했다.
이 환자는 예전의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자아분열에서 훌륭히 회복된 듯 보인다. 이제 한 사람의 훌륭한 사회인이며 감정을 언어, 일, 운동 등으로 표출하고 스스로 신경증이 더는 발달하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는 듯하다. 성인으로서 가능성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어린 시절의 전과를 영구 말소해 좀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다. 최근 환자가 오토바이를 '끊은'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오토바이가 다른 사람에게 위협을 주기보다는 그 자신의 삶과 건강에 더 위험하므로 이후로도 계속 타지 않기를 바란다. -p395
이렇듯 캠퍼는 정신과 의사의 검사를 통과해서 1972년 11월 29일 그의 전과기록은 공식적으로 말소되었다. 캠퍼는 소년시절 정신병원에서도 정신과 검사에서 매번 좋은 결과를 받았다. 훗날 그는 당시 28가지 검사와 그 정답을 모두 암기했었다고 말했다.
정신과 의사들을 욕하고 싶진 않다. 의사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전반적인 시스템의 문제였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여전히 의심스럽다) 정신의학은 캠퍼와 같은 사람들의 위험성을 결코 감지할 수 없었다. 환자의 진술만으로 진찰하는 것은 정신의학의 가장 큰 오류가 아닐까 싶다.(환자가 거짓말을 해도 곧이 곧대로 믿는다면 문제가 아니겠는가) 실제로 이와 같이 정신과 검사와 정신의학의 틈새를 이용해 빠져나간 범죄자가 많다. 그리고 그 범죄자는 또다시 범죄를 일으킨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싸이코패스 살인마를 척하면 척하고 알아챌 수 없다. 그들은 주위의 평판이 좋은 경우도 많다. 실제로 캠퍼는 지역 경찰관들과 친하게 지냈다. 경찰관 중 아무도 그를 의심한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그가 자백을 했을 때도 좀처럼 믿지 않으려 했다.
아래는 정신과 의사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다.
그 사이 나는 리셀이 정신과 상담을 받는 중에도 강간 살인을 저질렀고, 그 정신과 의사는 리셀이 거짓말을 한다는 걸 간파하지 못하고 증세에 호전을 보인다고 진단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나는 이것이 조직적 살인범들이 쓰는 속임수의 한 예라고 설명하면서, 내 생각에 이런 문제는 정신의학계가 전통적으로 환자 자신의 이야기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즉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가 과거사를 털어놓으며 치료 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부분에 지나치게 기댄다는 얘기였다. 나는 법 정신의학자들은 환자의 고백에만 의존하지 말고 외부 보고나 법원 기록 등을 참조해야 하며, 범죄를 저지른 환자가 자기 삶과 행동에 대해 털어놓는 이야기가 정확한지 끊임없이 검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p414
이런 시행착오들을 통해 개선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책 속에 심령술사 르니에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런 심령술사가 근처에 있으면 보러 가고 싶다.
르니에르는 1981년 초에 콴티코를 방문했다. (중략) 그날 르니에르는 경찰들 앞에서 월말에 레이건 대통령이 저격당하겠지만 미수로 그칠것이라고 예언했다. 대통령은 왼쪽 가슴에 총을 맞을 테지만 죽지 않고 회복될 것이며, 국민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고 더 큰 일을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중략)
르니에르는 어떤 FBI 요원 친척의 시체가 숨겨져 있던 비행기를 찾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나에 관한 예언을 하기도 했다. 내가 6주간의 독일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그녀는 검은머리 여자와 관련된 일 때문에 곧바로 돌아와야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독일에 도착하고 사흘 뒤, 나는 정말로 검은머리 여자 때문에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내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p420
저자는 토머스 해리스란 소설가에게 자문을 줬다. 그로 인해 탄생한 소설이 <레드 드래곤>과 <양들의 침묵>이다. 저자는 한니발 렉터라는 등장인물의 탄생에 큰 기여를 했다.
<마인드 헌터>로부터 시작된 연쇄살인범과 프로파일러에 대한 대장정이 마무리됐다. 개인적으로 <마인드 헌터> 드라마와 책은 강추하고 싶다.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도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