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화생물학자,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새로운 천년에 대한 질문>을 즐겁게 읽었습니다. 책 제목을 보고 생물학자인데 뜬금없이 새로운 천년에 대해 이야기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보자 그런 우려는 싹 사라졌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탐구해나가는 굴드의 스타일과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까지 볼 수 있는 멋진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2000년에 맞춰 쓰인 밀레니엄의 의미와 역법에 관한 책입니다. 아래에 좋았던 부분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그러나 해와 달의 크기가 우리의 눈에 비슷해 보이는 것은 수학적 규칙성이나 자연 법칙의 결과가 아니라, 전적으로 우연의 결과이다. 해의 직경은 달의 직경에 비해 약 400배 가량 더 크지만, 해가 달보다 지구로부터 400배 정도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지상의 관찰자 눈에는 두 물체의 크기가 서로 비슷해 보이는 것이다. 


 자연에 규칙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신기한 우연은 존재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기에 해와 달의 크기는 비슷합니다. 그래서 개기일식이나 개기월식의 현상이 벌어집니다. 완전히 딱 맞아 떨어지는 크기로 서로가 서로르 가리는 신비의 순간. 이 모든 게 우연에 불과하다니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만약 우리 눈으로 보는 달의 크기가 절반에 불과하다면 개기일식은 얼마나 초라할까요? 


 

 아래는 참으로 우아하고 멋진 문단이라 소개합니다.


 그러나 구석기인 오그가 동굴 밖으로 눈길을 던지면서 문득 하늘을 보았을 때, 그리고 달의 위상이 왜 달라지는지 궁금하게 생각했을 때, 근처 바닷가의 조개를 보다 많이 줍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에서가 아니라 단지 신비한 자연의 수수께끼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반복적 질서라고 부를 수 있는(바로 그 점 때문에 아름답기도 한) 무엇인가가 변화하는 달의 저변에 깔려 있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나마 생각했을 때, 바로 그때 역법적인 질문은 숭고함마저 띠게 된다. 그와 함께 인간도 더불어 숭고해진다. -p193  


 인간은 실용적인 필요성에 따라 알고자 하는 욕구를 가집니다. 하지만 실용적인 목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호기심에 알고자 하는 욕구가 생깁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인문학, 사회과학 책에 스포일러 주의를 한 건 처음인 거 같습니다. 최근에 읽은 <물고기를 존재하지 않는다>가 생각나네요. 그 때는 스포일러를 피했지만, 이 책은 워낙 옛날 책이고 읽을 분들이 많지 않을 거 같아서 책 내용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한정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자신이 가진 특별한 재능을 이처럼 훌륭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놀라운 세상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지적인 노력을 최대한 기울이면서,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 젊은이의 감동적인 대답을 모두 인용하지는 않았다. 그의 대답을 정확히 옮기면 다음과 같다. 

 "예, 아빠. 5주이지요." 

 그의 이름은 제시, 나의 장남이다. 내가 그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p220


 책에서 굴드는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 젊은이는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날짜-요일 계산 도사이지만 자폐증 환자에 지각 능력은 보통 사람보다 뒤떨어집니다. 날짜-요일 계산이란 특정 일을 말하면 무슨 요일인지 계산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들면 "1986년 2월 16일은?" 하면 몇 초 이내에 "목요일" 하고 대답합니다. 


 책에서 그 젊은이의 이야기를 종종 꺼내는데 저는 굴드와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 젊은이가 자신의 장남이라 밝힙니다. 참 멋지고 감동적인 반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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