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판다의엄지>를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그의 저서 <다윈 이후>를 재밌게 읽고 그의 책을 더 읽어봐야지 했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시작으로 다시 그의 책들을 읽고 싶습니다.
아래에 이 책을 읽고 좋았던 부분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재밌었던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아주 일부만 소개하겠습니다.
그러나 다윈은 만약 생물이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현재의 생물에 선조의 여러 단계의 '흔적' 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의미를 갖지 않는 과거의 흔적들, 즉 무용한 것, 기묘한 것, 특이한 것, 불균형한 것들이 역사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징후인 것이다. 그것들은 세계가 지금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증거이다. 만약 역사에 끝이 있고 세계가 완성될 수 있다면 그런 흔적들도 사라질 것이다 -p35
창조론자들은 모든 생물 종이 처음 창조된 이래 변화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윈은 이런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근거들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는 진화의 가장 인상적인 결과, 즉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한 생물을 찾지 않았습니다. 대신 정반대의 일을 했습니다. 그는 기이한 것, 불완전한 것, 쓸모없는 것들을 찾았습니다. 현재에는 필요없지만 과거에는 필요했으리라 생각되는 그런 흔적들을 찾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흔적들이 존재합니다.
자연 선택설은 자연계의 많은 사실로부터 능숙하게 귀납해서 얻은 것이 아니며, 또한 우연히 맬서스의 책을 읽은 덕분에 다윈의 잠재 의식이 촉발되어 번개처럼 떠오른 것도 아니다. 실제로 그것은 여러 곳으로 가지를 뻗었지만, 그 자체로 질서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의식적이고 생산적인 탐색의 결과였다. 그 탐색은, 다윈 자신의 생물학과는 거리가 먼, 여러 분야에서 얻은 놀랄 만큼 폭넓은 범위의 통찰과 자연학의 수많은 사실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다윈은 귀납주의와 유레카주의 사이에서 중용의 길을 걸었다. 그의 재능은 범속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가까이 갈 수 없을 만큼 비범한 것도 아니었다. -p85
그루버는 다윈이 끊임없이 여러 가지 가설을 생각해 낸 다음 그것들을 시험하고 잘못된 가설을 폐기시켰고, 그 과정에서 결코 사실들을 이것저것 맹목적으로 긁어모으는 식으로 수집하지 않았따는 것을 보여준다. 다윈은 새로운 종이 처음부터 결정된 수명을 가진다는 개념을 포함하는 기발한 공상적 가설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종이 생존 경쟁의 세계에서 경쟁에 의해 멸종한다는 개념에, 가끔 멈추기도 했지만 점차 접근해 갔다. 다윈이 맬서스의 <인구론>를 읽었을 때 느꼈던 희열에 가까운 느낌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때 이미 그 조각 맞추기 퍼즐은 한두개의 조각만 더 맞추면 완성되는 단계에까지 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p86
자연 선택설은 합리적인 경제를 추구한 애덤 스미스의 기본 주장을 생물학으로 창조적으로 옮겨놓은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자연의 균형과 질서는 고도의 외재적(신에 의한)통제나, 전체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여러 가지 법칙을 기반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오늘날의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생식에서 각 개체가 거두는 성공의 편차에 따라 유전자를 미래 세대로 전달하기 위해) 개체 사이에 벌어지는 투쟁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p89
5장 중용을 취한 다윈이란 글을 정말 멋졌습니다. 다윈이 진화론을 어떻게 발견했는지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과학의 본질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는 멋진 에세이였습니다.
과학은 무수한 사실로부터 이론을 도출하는 단순한 귀납주의가 아닙니다. 그리고 불현듯 천재적인 생각이 떠로르는 유레카적이지도 않습니다. 그 중간에 있습니다. 또한 창조성은 여러가지 분야의 새로운 사실들의 결합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윈은 맬서스의 <인구론>과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의 기본 이념을 흡수했습니다.
만약 천재성에 어떠한 공통 분모가 있다면, 나는 관심의 폭과 여러 분야 사이에서 유용한 유사성을 이끌어 내는 능력을 우선 꼽고 싶다. -p87
무척 공감가는 말입니다. 저도 100% 동의합니다. 폭넓은 호기심은 천재의 징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위대한 통찰의 일차적 원인을 행운이라는 막연한 현상으로 돌리기 위해 이렇게 주장한다. 즉 다윈이 부유한 집에 태어난 것은 행운이며, 비글 호에 동승하게 된 것도 행운이며, 우연히 맬서스 목사의 저서를 읽게 된 것도 행운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는 시기적절하게 적재적소에 있었던 것뿐이다. 그렇지만 사물을 이해하려고 애쓴 다윈의 개인적인 고투, 그의 관심과 연구의 폭넓음, 진화의 메커니즘에 대한 그의 탐구의 방향성 등에 대한 많은 문헌을 읽으면서, 우리는 왜 루이 파스퇴르가 "준비된 사람에게는 운이 따른다." 라는 유명한 경구를 만들어 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p90
아래는 저자가 도킨스의 이론에 대해 비판한 글입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와 도킨스는 앙숙이였습니다. 진화론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견해가 상충했습니다. 저는 한 때 도킨스의 책만 읽어서 도킨스의 주장만을 받아들였었습니다. 굴드의 책을 읽으니 도킨스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제 견해는 굴드 쪽에 더 기울어져 있습니다.
결국 나는 도킨스의 이론이 주는 매력이 서구의 과학적 사고에 얽혀있는 몇 가지 악습(우리가 원자론, 환원주의, 결정론 등으로 부르는 태도를 말한다. 이런 전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전체란 모두 '기본' 단위로 분해시킬 때에만 이해할 수 있다는 식의 사고 방식, 미시적 단위가 가지는 고유한 성질이 거시적 결과의 거동을 낳으며, 동시에 설명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 그리고 모든 사건이나 사물은 명백하고 예측 가능하고 결정론적인 원일을 가진다는 사고 방식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몇 개의 작은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과거 역사의 영향을 받지 않는 단순한 현상을 연구하는 데에는 유효했다. 지금 나는 가스 스토브의 손잡이를 돌리면 불이 붙을 것이라고 확신한다.(실제로 불이 붙는다.) 여러 가지 기체 법칙은 분자에서 시작해서 그것보다 큰 예측 가능한 부피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그러나 생물은 서로 합병한 유전자들 이상의 무엇이다. 생물은 역사라는 중대한 요소를 가지고 있고, 몸의 여러 부분은 복잡한 상호 작용을 한다. 생물의 몸은 협동하며 작용하고,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선택에 노출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번역된다. 물과 그것의 물리적, 화학적 성질을 결정하는 분자들이라는 비유는 몸과 유전자의 관계와는 빗댈 수도 없는 형편없는 것에 불과하다. 내가 나 자신의 운명에는 정통하지 못할 수 있지만, 최소한 전체성에 대한 나의 직관은 생물학적 진실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p125
아래는 과거의 잘못된 과학들을 비판하는 글 중에 좋았던 부분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시각으로 우생학이나 골상학을 어리석은 해프닝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판단하면 사태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과거의 시점에서 다시 이해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지식들, 믿고 있는 사실들이 먼 훗날에는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판단될 수 있다는 사실또한 명심해야 됩니다. 아래의 해프닝이랑 과거의 인류학자들은 뇌의 크기가 지능에 비례한다고 보았고, 그로 인해 동료 학자 모자의 크기를 지능의 판단 근거로 보고 벌어진 격론을 이야기합니다.
겉으로 보연 이 이야기는 한바탕 웃어넘길 해프닝처럼 들린다. 프랑스 최고의 인류학자들이 세상을 떠난 동료 학자의 모자가 가지는 의미를 둘러싸고 격론을 벌였다는 사실은 역사에 대해 가장 범하기 쉬운 위험한 추론, 즉 과거를 소박한 얼간이들의 영역으로 보고, 역사의 글을 진보로 보고, 그리고 현재를 세련되고 개화된 세계로 보는 관점과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런 이야기를 그저 비웃어 넘겨 버리면 우리는 결코 사태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지금 단계에서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지적 능력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옛날의 지적인 사람들이 현재의 우리에게는 어리석어 보이는 문제에 엄청난 정력을 기울였다면, 잘못된 것은 그들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이지 그들의 왜곡된 인식 자체가 아니다. -p200
절반을 읽고 좋았던 부분들을 소개했습니다. 나머지 절반 재밌게 읽고 재밌난 이야기들을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