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언급되어서 읽게 되었다. 이어령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 인터뷰했던 기자 김지수씨는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의 저자 케이틀린 도티를 인터뷰했다. 인터뷰 내용도 찾아 읽어보고 싶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장의사의 일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읽었다. 3분의 2쯤 읽었는데 만족스럽다. 생각보다 훨씬 유쾌하고 유머가 있다. 저자는 중세를 전공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역사적인 이야기들도 많아 더욱 좋았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병원의 위생적인 환경에서 죽는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개념이다. 19세기 말에,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은 가진 것 없고 식구도 없는 궁핍한 사람에게나 있는 일이었다. 누구나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집에 있는 침대에서, 친구들과 가족에게 둘러싸여 죽고 싶어 했다.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미국인의 85퍼센트 이상이 집에서 죽었다. -p80


 지금도 모두가 병원보다 집에서 죽고 싶어하리라 생각한다. 친구들과 가족에게 둘러싸여 죽는 것만큼 좋은 죽음이 또 있을까? 하지만 한 편으로는 핵가족화, 맞벌이로 인해 집에 있는 환자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진 건 아닐까? 



 오늘날, 시체를 억지로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선진국에서만 누리는 특권이다. 바라나시의 보통날, 인도의 갠지스 강둑 위에는 80개에서 100개쯤 되는 화장터가 자리 잡고 불이 타오른다. 매우 공개적인 화장(때로는 인도의 불가촉천민 계급의 어린 아이들이 담당하는)이 끝나면 뼈와 재는 성스러운 강물 속으로 흘려보낸다. -p89 


 나는 20대 초에 인도 바라나시를 여행했다. 바라나시의 화장에 대해 몰랐다. 그래서 굉장히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시체를 봤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화장을 봤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의도적으로 보는 것을 회피했던 거 같다. 단순 관광객의 시선으로 구경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래도 기억이 생생한 장면은 있다. 화장터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웃으며 뛰어노는 장면이다. 그 모습을 보며 '죽음과 생이 그다지 멀지 않구나. 인도에서는 이렇게 가깝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느꼈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죽음과 생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느낌. 그 둘이 그렇게 다른 것이 아니라는 느낌. 


 

 아래는 지하철에서 자살을 한 제이콥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제이콥 쪽으로 질주하는 열차를 제때 멈출 길이 없어 그의 두 눈을 들여다봐야 했던 열차 기관사 입장에서 입은 피해는, 금전적인 것이 아니다. 열차 기관사들은 일하는 동안 본의 아니게 평균 세 명을 치어 죽인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안정적이고 심지어 바람직하기까지 한 이 직업에서 가장 정 떨어지는 지점은 누군가(혹은 여러 명)를 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p94  


 저자는 제이콥의 자살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그의 자살 방식에는 공감하지 못한다. 금전적인 피해와 더불어 수많은 사람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주는 그의 방식은 나도 좋지 못하다 생각한다. 


 

  1800년대 후반, 파리 시민들은 매일 수천 명씩 시체 보관소에 와서 신원 미상의 시체를 구경했다. (중략) 시체 보관소 전시가 파리 시민들 사이에서 '너무' 인기가 많아지는 바람에, 결국 나중에는 비공개로 전환되었다. -p95

 

 우리는 시체를 보지 못한다. 죽은 자의 프라이버시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우리는 너무 죽음과 시체로부터 격리되고 멀어졌다. 



  티베트 고산 지대에서는 땅에 바위가 너무 많아 매장을 하지 못하는 데다 나무마저 드물어 화장에 필요한 장작을 만들 수 없다. 티베트인들은 망자를 처리하는 색다른 방식을 발달시켰다. 직업적인 로규빠(시신을 부수는 사람)가 시신에서 살을 잘게 자르고, 남은 뼈는 보리 가루와 야크 버터와 함께 밯는다. 시체는 높고 평평한 바위 위에 놓아두어 독수리들이 먹도록 한다. 새들이 날아들어 그 시체를 파먹고 하늘로 날아올라 사방팔방으로 실어 나른다. 이렇게 남은 살을 다른 짐승들이 먹도록 놔두는 것은 시체를 처리하는 너그러운 방식이다. -p130

 

 예전부터 궁금했던 티베트의 장례, 천장의 이유에 대해 알게 되서 좋았다. 역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만약 브루스 같은 장사꾼이 자기 친어머니한테는 결코 하지 않을 짓이 방부처리라면, 왜 우리는 아무에게나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나는 궁금했다. -p131 


 브루스는 저자가 함께 일하는 방부처리사다. 이 책에서는 방부처리에 대해서도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저자는 자신의 어머리를 직접 화장할 수는 있겠지만, 어머니를 방부처리를 못하겠다고 브루스에게 말한다. 브루스 역시 동의한다. 



 영아 화장은 성인 화장과 대부분 같은 방식으로 행해진다. 혹시 이름이 있다면, 우리는 아기들의 이름을 기입했다. 종종 아기들의 이름은 그저 '존슨네 아기' 혹은 '산체스네 아기' 이런 식으로 라벨이 붙여진다. 그들에게 완전한 이름이 있는데, 심지어 원래 이름인 'Caitline'을 잘못 적어 ' KateLynne' 으로 쓰는 식으로 뭔가 고약한 일이라도 있으면 더 슬프다. 완전한 이름을 보면, 아기가 태어나 가족의 일원이 되기를 그 부모들이 얼마나 바랐는지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p141

 

 이 책을 보면서 가장 슬펐던 부분이다. 아이들의 죽음은 다른 죽음보다 항상 더 슬프게 느껴진다. 



 웨스트윈드에서 배운 모든 것에 대해 나는 지붕 꼭대기에 올라가 외치고 싶다. 매일 죽음을 되새기다 보면 날마다 더 생생해지는 색채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p184


 날마다 죽음을 되새기면 현재의 삶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죽음을 가까이에서 이해할수록, 

우리 자신을 좀 더 이해하게 된다."


 -케이틀린 도티,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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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0 00: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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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0 19: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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