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책은 도끼라는 말은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 그 이상이다. 가끔 이런 책처럼 기존의 패러다임을 뒤집고 확장시켜주는 책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그 때가 독서를 하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나의 편협한 세계관, 사고관을 확장시켜줘서 정말 감사하다.
세상은 유물론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이 책은 유물론의 교리에 빠져 모든 것을 유물론 안으로 구겨넣고 들어가지 않은 것들을 무시하고 버려오지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과학은 그동안 모든 것이 유물론, 즉 원자와 입자로 설명가능할 거라는 희망과 신념을 가진채로 독단과 오만에 빠져있진 않았는지 자성해보아야 한다. 그런 유물론의 신념이 무너질 때 과학은 훨씬 상상력이 넘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유물론에 일격을 가하는 책이다.
우리는 DNA 안에 생명체의 발생이나 본능, 습성 등 모든 것이 암호화되고 프로그램화 되어 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저자는 형태발생장, 형태공명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물론 아직 가설의 단계이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은 아니지만 기억이라는 것을 물질이 아닌 장의 개념으로 이해해 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것은 실험으로 입증 혹은 반증 가능하다.
기계론자들은 늘 활력 요소나 영혼과 같은,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들지만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한 말들로 생명의 신비를 설명하려 한다며 생기론자를 비판해왔다. 하지만 그들의 기계론적 가면에 숨어있는 생명 요소들은 생기론자들의 활력 요소와 전혀 다를 바 없다. 천수국은 어떻게 천수국 씨앗에서 자라나는 것일까? 이것은 천수국이 그렇게 되도록 유전적으로 프로그램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미는 어떻게 본능적으로 거미줄을 칠 수 있을까? 이것은 거미의 유전자에 정보가 암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것도 마찬가지다. -p227
부모 키를 측정함으로써 80~90퍼센트의 정확도로 아이의 키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과학자들이 찾아낸 키와 관련된 50개의 유전자들은 키의 유전 가능성 중 75~85퍼센트를 설명할 수 없다. 키와 관련된 유전자들이 더 있는 것인지, 유전자 외에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과학 저술에서는 이 현상을 '사라진 유전 가능성의 문제' 로 불리고 있다. 유전자를 파고 들면 들수록 유전자로는 설명이 어렵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유전자와 인간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유전자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어쩌면 잘못된 투자가 아닐까? 저자가 말하는 형태공명, 형태발생장 같은 것도 좀 더 투자해서 연구해보면 좋지 않을까?
과학이 본질적인 답들을 알고 있지 못하다는 인식은 오만보다는 겸손을, 독단보다는 개방을 이끌어오게 한다. 발견되어야 할 것들, 재발견되어야 할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지혜를 포함해서. -p469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한의학 이론들, 침법 이론, 한약의 이론들, 사주, 관상, 꿈의 예지력 등등을 과학적으로 실험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하는 것이다. 이들이 정말 아무 가치없고 미신에 불과한 것일까? 오랜 경험과 통계, 혹은 아직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은 것들과 관계되어 있지 않을까? 내게 돈이 많다면 이런 저런 실험을 해볼텐데하고 혼자 공상을 할 때가 많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현재 과학에 투자되는 돈의 1퍼세트만이라도 이런 쪽의 연구에 투자한다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우리의 지식과 지혜가 더 넓어지고 깊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