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앞



  어릴 적부터 누군가를 만날 적에 으레 “책방 앞”에서 보자고 했다. 참말 “책방 앞”에서만 기다리기도 하지만, “책방 안”으로 들어가서 책을 보며 기다리기도 했고, 책방에서 책을 장만하기도 했다. 시계조차 없이 돌아다니면서 동무를 만나던 때에는 책방 시계를 보기도 했지만, 굳이 시간을 따지지 않았다. 늦든 이르든 대수로울 일이 없고, ‘동무하고 함께 있는 겨를’이 즐거울 뿐이었다. 늦게 오더라도 서로 마음으로 함께 있으니 걱정할 일이 없기도 하고, “책방 앞”에서 그달에 새로 나온 잡지 겉모습을 구경한다든지, “책방 안”으로 들어가서 ‘가벼운 주머니로 장만하지 못하는’ 책을 몇 쪽씩 읽는다든지 하면서 재미있었다.


  언제 어디에서든 “책방 앞”에 서면, 또 “책방 앞”을 보면, 어린 마음으로 돌아간다. 앞으로 내 나이가 몇 살이 되든 “책방 앞”에 서거나 “책방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면, 나는 늘 풋풋한 마음이 되어 삶을 노래할 만하리라 느낀다. 4348.9.1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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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9-15 09:09   좋아요 0 | URL
책방 앞이라고 하시니 문득 저도 항상 친구들과 약속했던 서점이름이 떠오르네요!
부산의 서면쪽 영광도서 앞,(동보서적?도 있었던 것도 같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그리고 남포동의 남포문고 앞!!(대형 남포문고 옆에 오래된 다른 서점이 있었는데 바로 앞이 버스정류장이라 친구들,지금의 신랑과 늘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가 그서점이었는데 오래되어 이름이 생각나질 않네요ㅜ 그서점은 없어진지가 십여 년이 넘어 제일 아쉬운 서점이에요)
그시절엔 그곳들이 명소였었는데~~옛추억들이 새삼 떠오르네요^^

숲노래 2015-09-15 10:28   좋아요 0 | URL
사람들마다
책방 앞하고 얽힌
멋지면서 애틋한 옛이야기가 있을 테지요?

그 이야기가 옛이야기만이 아니라
오늘도 새롭게 누리는 이야기가 되어서
작은 마을에서도
언제나 고운 노래가 흐를 수 있기를 빌어요 ^^
 

아이 그림 읽기

2015.9.5. 큰아이―비행기가 된 집



  그림순이가 ‘우리 집’을 그리는데, 집이 차츰 커지면서 종이 한 장으로 모자란다. 그림순이는 종이를 더 가져와서 이리저리 그림을 잇는다. 그림순이가 그린 우리 집은 어느새 ‘비행기 집’이 된다. 커다란 비행기에 우리 살림살이와 이야기가 있고, 우리는 어디로든 마음껏 날아다니면서 삶을 즐기는 보금자리를 누린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그림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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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 가장 많이 있는 책



  헌책방에 가장 많이 있는 책은 두 갈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새책방에서 아주 많이 팔려서 헌책방에도 쏟아지는 책이다. 다른 하나는 새책방에서 거의 안 팔리는 바람에 헌책방에만 쏟아지는 책이다.


  새책방에서 아주 많이 팔려서 헌책방에도 쏟아지는 책 가운데에는 헌책방에서도 잘 팔리는 책이 있으나, 헌책방에서만큼은 도무지 안 팔리는 책이 있다. 새책방에서 거의 안 팔린 책 가운데에도 헌책방에서조차 도무지 안 팔리는 책이 있지만, 헌책방에서는 제법 잘 팔리는 책이 있다.


  헌책방 팔림새로 본다면, 두 갈래로 책이 팔린다고 여길 수 있다. 하나는 곧바로 읽히는 책이 팔리고, 다른 하나는 두고두고 읽힐 책이 팔린다. 알차고 재미있어서 곧바로 읽히는 책이 있고, 알차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으나 그때그때 처세와 경영과 학습에 맞추어 읽히는 책이 있다.


  책은 사랑받고 싶다. 책은 한 번만 읽힌 뒤 불쏘시개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느 책이든 사랑받고 싶다. 숲에서 아름드리로 자라다가 책으로 거듭난 나무는 두고두고 푸른 숨결을 나누어 주는 즐거운 이야기꾸러미가 되고 싶다.


  오늘날 한국 헌책방에는 학습지가 가장 많이 있다. 아니, 새책방부터 학습지를 가장 많이 다룬다. 학습지를 일부러 안 다루는 헌책방이 있으니 ‘모든 헌책방에 학습지가 많다’고 할 수는 없다. 굳이 학습지를 안 다루려 하는 헌책방이 아니라면, 어느 헌책방이든 학습지가 차지하는 자리가 매우 넓을 수밖에 없다. 학습지 가짓수와 갈래도 많고 부피도 권수도 대단히 많기 때문이다.


  이 많은 학습지는 누가 볼까? 아이들이 보고 어른들이 본다.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보고, 중·고등학교 교사와 학부모가 본다. 싱그러운 나이인 아이들은 학습지에 길들고, 싱그러운 아이들을 돌보는 어른들도 학습지에 젖어든다.


  왜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책이 아닌 학습지를 읽힐까? 왜 우리 어른들은 스스로 책이 아닌 학습지만 자꾸 들여다보려 할까? 책이 아닌 학습지만 들여다보는 아이와 어른이 자꾸자꾸 늘면서 삶과 사랑과 사람을 보는 눈이 흐려지지 않나 싶다. 책하고 멀어진 채 학습지에 파묻혀 싱그러운 나날을 보내는 아이들이 늘면 늘수록 삶과 사랑과 사람이 아름다이 거듭나거나 슬기롭게 깨어나는 길하고도 멀어지지 않나 싶다. 헌책방에 가장 많이 꽂히면서 널리 사랑받을 책은 ‘학습지’가 아닌 ‘그냥 책’이어야 하리라 느낀다. 4348.9.1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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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앞에 늦여름 노란 꽃송이



  헌책방 앞에 조그마한 노란 꽃이 핀다. 사람들 발길에 채이거나 짓이겨질 만하지만, 이 아이는 씩씩하게 살아남았고, 노랗게 꽃송이를 터뜨린다. 곧 꽃이 지면서 씨앗까지 맺어서 바람에 훨훨 날릴 수 있겠지.


  커다란 잎도 커다란 꽃도 아닌, 그예 작은 잎에 작은 꽃이다. 아무도 이 아이를 이곳에 심지 않았으며, 어느 누구도 이곳에 꽃씨를 심을 생각을 품지 않았다. 그러나 작고 노란 꽃은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먹으면서 바로 이곳에서 곱게 꽃송이를 터뜨린다.


  쪼그려앉거나 무릎을 꿇어야 비로소 꽃을 알아볼 수 있다. 헌책방에서도 책탑 앞에서 쪼그려앉거나 무릎을 꿇어야 비로소 구석구석 깃든 책을 하나하나 알아볼 수 있다. 헌책방 문간에 피어난 노란 꽃송이는 헌책방에서 책을 어떻게 살펴야 즐거운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는지 모른다. 오늘 이곳을 찾아온 모든 사람한테 낮은 몸짓과 목소리를 넌지시 알려줄는지 모른다. 4348.9.1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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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5.9.5. 작은아이―안 아픈 아버지



  작은아이가 아버지더러 오른무릎 얼른 나으라면서 “안 아픈 아버지”를 그려 준다. 고맙구나. 안 아픈 아버지는 무엇을 하는 아버지일까? 아파도 안 아파도 언제나 웃고 노래하는 아버지로 살 때에 우리는 다 함께 즐거우면서 재미날 테지. “안 아픈 아버지”를 넘어서 “늘 씩씩하고 튼튼한 아버지”로 살게.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그림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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