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암꽃



  호박은 암꽃이랑 수꽃이 다르다. 암꽃은 열매를 맺을 씨주머니를 통통하게 달고 봉오리를 터뜨린다. 수꽃은 씨주머니에 담을 꽃가루를 수술에 그득 달고 봉오리를 터뜨린다. 암꽃은 꽃가루를 기쁘게 맞아들이면 봉오리를 더는 벌리지 않고 씨주머니가 토실토실 자라도록 북돋운다. 수꽃은 꽃가루를 암꽃 한 송이한테만 나누어 주지 않고 여러 암꽃이 두루 받을 수 있도록 온힘을 쏟는다. 벌이 찾아오고 나비가 찾아들며 개미나 딱정벌레가 자꾸 찾아와서 꽃가루받이를 해 주기를 바란다. 더 맛난 꽃가루를 빚으려고 그야말로 온힘을 낸다. 암꽃은 꼭 한 번만 꽃가루를 받아도 된다. 암꽃은 수꽃이 나누어 준 사랑을 씨주머니에 고이 담아서 새로운 호박알을 맺는데, 이 호박알은 새로운 아기(씨앗)가 오롱조롱 모이는 보금자리(열매)로 거듭난다. 아직 덜 여물어 온통 푸른 빛인 호박 암꽃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쓰다듬는다. 4348.8.22.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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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5.8.15. 큰아이―옥수수싹



  옥수수알을 불려서 싹을 틔운 뒤 심는다. 아직 옮겨심기까지는 하지 않는다. 시골순이가 옥수수싹이 날마다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알려면 한곳에 모아 놓고 늘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따순 손길을 받아서 우리 집 한쪽에서 자랄 옥수수가 늦여름에도 무럭무럭 자라기를 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그림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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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224 : 시상詩想


시상(詩想)

1. 시를 짓기 위한 착상이나 구상

2. 시에 나타난 사상이나 감정

3. 시적인 생각이나 상념


 시상詩想도

→ 시를 쓰려는 생각도

→ 시를 지으려는 생각도

→ 시로 나타낼 생각도

→ 싯말도



  시를 쓰는 분 가운데 ‘시’라고 하는 한글로 적으면 글맛이 나지 않아 한자로 ‘詩’라 적어야 한다고 여기는 분이 제법 많습니다. 이러다 보니, ‘시상’이라고 하면 뭔 시상을 가리키는지 헷갈린다고 여겨서 ‘詩想’처럼 적어야 한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한국말을 생각한다면 ‘시생각’이나 ‘시 생각’이라 하면 됩니다. 또는 ‘글생각’이나 ‘글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를 쓰려는 생각이나 시로 나타내려는 생각이라면, “시로 써서 나타내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시상이 떠오른다”라든지 “시상을 가다듬다” 같은 말마디는 “싯말이 떠오른다”나 “싯말을 가다듬다”처럼 손볼 수 있습니다. 4348.8.22.흙.ㅅㄴㄹ



시상詩想도 기차여행 중에 많이 떠오른다

→ 싯말도 기차여행을 하며 많이 떠오른다

《전규태-단테처럼 여행하기》(열림원,2015) 15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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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731) 생래적


 인간이 생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수치감이란 것을

→ 사람이 처음부터 가진 부끄러움이란 것을

→ 사람이 타고난 부끄러움이란 것을

→ 사람이 누구나 느끼는 부끄러움이란 것을

 생래의 바보

→ 타고난 바보

→ 처음부터 바보


  ‘생래적(生來的)’은 “세상에 태어난 이래 가지고 있는”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국말로 하자면 한마디로 ‘타고난’입니다. 이야기 흐름을 살펴서 “처음부터 가진”이나 “처음부터 있는”으로 적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말사전에 실린 보기글을 보면 “생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꼴로 나옵니다. ‘가지고 있는’을 뜻한다는 ‘생래적’이라 하는데 “생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꼴로 쓰면 겹말이 됩니다. 이 말마디를 쓰려고 한다면 “생래적인” 꼴이 되어야 합니다만, 이 말마디를 자꾸 이렇게 잘못 쓰는 까닭은 한국말 전문가인 사전편집자조차 이 말마디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여느 사람도 이 말마디를 잘못 쓰기 쉬우리라 느낍니다. 4348.8.22.흙.ㅅㄴㄹ



인간이 生來的으로 썩기 마련이라 해서

→ 사람이 타고나기를 썩기 마련이라 해서

→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썩기 마련이라 해서

→ 사람이 처음부터 썩기 마련이라 해서

《김재준-죽음으로 산다》(사상사,1975) 19쪽


에로틱한 소질을 생래적으로 지닌 카사블랑카 같은 사람

→ 남을 사로잡는 재주를 타고난 카사블랑카 같은 사람

→ 남을 호리는 재주를 타고난 카사블랑카 같은 사람

《전규태-단테처럼 여행하기》(열림원,2015) 15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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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처럼 여행하기
전규태 지음 / 열림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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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01



‘죽음’ 아닌 ‘삶’을 생각하는 여행길

― 단테처럼 여행하기

 전규태 글·그림

 열림원 펴냄, 2015.7.30. 13000원



  전규태 님이 암이라는 병에 걸린 뒤 고작 석 달을 살고 죽는다는 말을 듣고 나서 한 일은 ‘집을 나서기’라고 합니다. 앞으로 고작 석 달을 산 뒤에 죽는다면, 굳이 ‘집에 머물’거나 ‘병원에 드러누울’ 까닭이 없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전규태 님은 ‘집을 나서’면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눈길로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면서 ‘석 달 남았다는 삶’은 석 달 뒤에도 끝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마 전규태 님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셨을 테지만, ‘할아버지 여행가’가 되어서 《단테처럼 여행하기》(열림원,2015)라는 책까지 선보입니다.



나는 외할머니의 빈 젖을 빨며 외롭게 자랐다. 어린 내가 어머니 생각으로 울먹일 때면 외할머니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동요와 아리랑 같은 민요를 구성지게 불러 주었다. 그리고 나를 데리고 여행을 다녔다. (18쪽)


여행을 통해 나 자신을 기쁘게 하면서, 명승고적뿐 아니라 오지도 마다 않고 넓은 세상을 만나며 문득문득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 발끝부터 머리카락 한 올까지 내 몸 곳곳에 말을 걸고 격려해 주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34쪽)




  비가 오는 날에 아이들한테 비옷을 입히고 우산을 스스로 들도록 하면서 마을을 한 바퀴 돌곤 합니다. 비옷이랑 우산이 재미있고 즐거운 아이들은 긴신을 꿴 발로 마음껏 찰방거리면서 뛰놉니다. 어느 모로 보면 ‘고작 마을 한 바퀴’이지만, ‘고작 마을 한 바퀴’를 도는 데에 한 시간이 더 걸립니다. 아이들은 비를 맞으면서 ‘비놀이’를 하느라 한 시간 남짓 보내는 셈입니다.


  가끔 아이들하고 면소재지까지 걸어갑니다. 오 킬로미터쯤 되는 길을 물 한 모금 마실 겨를만 쉬고 바지런히 걸으면 사십 분이 걸리지만, 아이들이 꽃도 보고 벌레도 보며 하늘도 보고 춤도 추면서 놀듯이 걸어가면 한 시간 남짓 걸립니다. 어느 모로 보면 ‘그냥 논둑길 걷기’이지만, ‘그냥 논둑길 걷기’를 하는 동안 올려다보는 새파란 하늘에 눈부신 구름빛과 햇살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습니다. 그리고, 싱그러운 들과 하늘하고 곱게 어우러지는 아이들 웃음을 찍은 사진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습니다.



상원사에서 암자로 가는 산길은 몹시도 가파르고 숲이 우거져 으스스할 법도 했지만 달빛이 유난히도 밝아 아늑했다 … 혼자만의 오솔길에서 홀로 만난 단 하나의 달을 숱한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우러러볼 수 있다는 것은 신비하다. (43쪽)



  여행이란 무엇일까요? ‘젊은 여행가’도 아니고, ‘문학교수 여행가’도 아니며, ‘전문 여행가’도 아닌, ‘그저 삶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려는 할아버지’로서 여행길에 나선 전규태 님이 마음으로 받아들인 여행이란 무엇일까요?


  죽음을 앞두었다고 여긴 할아버지한테 ‘무서움’이란 무엇일까요? 깊은 숲이 으스스하다고 느낄 만할까요? 깊은 숲은 으스스하고, 암은 안 으스스할까요? 처음에는 으스스하구나 싶던 깊은 숲도 걷고 걷다가 어느새 ‘혼자만 누리는 호젓한 숲길’로 다시 느끼고, 이 호젓한 숲길에서 올려다보는 달빛을 지구별 어디에서나 저마다 다른 눈길하고 마음으로 올려다보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여행이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행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완전히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90쪽)



  스스로 새롭게 거듭나려고 길을 나서기에 여행이 되리라 느낍니다. 스스로 새롭게 살려고 마음을 먹기에 여행을 하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열 몇 시간을 날아가야 여행이지 않습니다. 두 다리로 한 시간을 걸어도 여행입니다. 지구 맞은편까지 가야 여행이지 않습니다. 낯익은 마을길을 새로운 마음이 되어 걸어가도 얼마든지 여행입니다.



걷다가 숲이 있으면 쉬었다 가기도 하고, 산이 있으면 오르기도 하며, 개울을 만나면 다리 난간에 기대어 물속의 잡초나 느긋하게 노니는 물고기들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97쪽)




  요 며칠 동안 우리 집 곁님이 몹시 아픕니다. 허리가 몹시 결려서 아예 걸음을 떼지 못합니다. 여느 때에도 집일이나 집살림을 제가 도맡아 하는데, 걸음조차 못 떼는 곁님은 마룻바닥을 엉금엉금 기어서 쉬를 하러 가야 합니다. 곁에서 누가 거들거나 돕지 않으면 거의 아무것도 못 하는 몸이 됩니다.


  방바닥과 마룻바닥 사이를 겨우 기어다니는 몸이 되면, 이러한 몸인 사람한테 여행이란 무엇일까요? 자리에 드러누워 방에서 꼼짝을 못하는 사람한테 여행이란 무엇일까요?


  여행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행은 안 대단하지도 않습니다. 한국에서 일본이나 중국이나 대만쯤 가 보아야 여행이 아닙니다. 미국이나 프랑스나 영국쯤 가 보아야 여행기를 쓸 만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낯설다고 하는 나라를 다녀와야 다큐멘터리를 찍을 만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마당을 한 바퀴 돌 수 있어도 ‘대단히 고마운 여행’이 될 수 있습니다. 대문 밖을 나서서 마을을 한 바퀴 돌 수 있어도 ‘아주 뜻있는 여행’이 될 수 있습니다. 버스를 한 번 타고 이십 분 남짓 되는 길을 다녀와도 ‘몹시 새로운 여행’이 될 수 있습니다.



터널이 많고 직선으로 질주하는 KTX보다는 포물선을 그려 가며 산을 돌고 전답을 누비는 보통열차의 리듬이 생각에 잠기는 데 안성맞춤이다. 나이 들고 보니 객차 안의 혼잡이 오히려 안락의자처럼 육체와 정신을 지탱해 준다. 아이들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 되도록 KTX를 탄다는 친구도 있지만 내게는 그 소리 역시 자장가로 들린다. (114쪽)


그냥 예사롭게 돌아다니기만 해도 마음의 감각들이 되살아난다. 하지만 새롭고 값진 것을 찾기 위해, 좀더 넉넉한 기쁨을 맛보기 위해, 또는 예기치 못한 아이디어나 느낌을 떠올리고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여행을 하다 보면 스스로도 놀랄 만한 새로운 발견과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129쪽)



  전규태 님은 ‘아픔(병)’을 몸에 달고 난 뒤에 ‘집을 나서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슬픔(죽음)’을 뼛속 깊이 깨닫고 난 뒤에 ‘연필 아닌 붓을 드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기록을 남기는 전문가로 살려는 여행이 아니라, 나 스스로 되돌아보고 내 이웃을 다시 바라보려는 여행입니다. 예술가나 화가라는 이름을 얻으려는 그림그리기가 아니라, 그저 전규태 님 삶을 새롭게 되새기고 전규태 님 이웃을 사랑스레 바라보려는 그림그리기입니다. 《단테처럼 여행하기》를 보면, 전규태 님이 찾아다닌 여러 마을(한국이든 외국이든, 다만 책에 실린 그림은 거의 모두 외국이지 싶습니다)에서 마주친 아름다운 모습을 손수 그린 그림으로 담았습니다.




시간을 대하는 각자의 방식에 따라 그것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는 것 역시 여행을 통해 배웠다. 한순간이 영원이 될 수도 있고 하루가 일 년이 될 수도 있다. (213쪽)



  우리는 누구나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즐겁기 때문입니다. 즐거운 삶일 때에 웃음이 나오고, 웃을 수 있는 삶일 때에 노래가 흐르며, 노래가 흐르는 삶일 때에 사랑을 스스로 깨닫습니다.


  이 지구별에서 목숨 하나 얻어서 태어난 우리들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아닌 어떤 일을 할 만한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참말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나중으로 미루다가 끝내 한 번도 못 하지는 않는가요? 가장 하고 싶은 일,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은, 나중으로 미루고 미루다가 그만 잊지는 않는가요?


  돈을 많이 벌고 나서야 비로소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습니다. 바쁜 일을 다 끝내야 비로소 꿈으로 갈 수 있지 않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해야 할 뿐입니다. ‘석 달 시한부인생 선고’를 받고 나서야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한다면, 그래서 참말 석 달만 살고 죽어야 한다면,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은 언제 이룰 수 있을까요?



사람이 ‘떨림’을 갖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아름다운 탓이다. (145쪽)



  여든 살 나이에 돌아보는 이웃마을 모습은 마흔 살 나이에 돌아보는 이웃마을 모습하고 느낌부터 다릅니다. 스무 살 나이에 바라보는 고향마을 모습은 쉰 살이나 일흔 살 나이에 돌아보는 고향마을 모습하고 사뭇 다르기 마련입니다. 열 살 나이에 바라보는 다른 고장 모습은 서른 살이나 예순 살이 되어 바라볼 때하고 참으로 다른 모습이 됩니다.


  ‘떨림’을 가슴에 품으려고 삽니다. ‘떨림’을 온몸으로 느끼려고 여행길에 나섭니다. ‘떨림’을 사랑으로 키우려고 오늘 하루를 새롭게 맞이합니다. 아름다운 삶을 이루려는 꿈을 헤아리면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사람은 머잖아 꿈을 누리는 웃음꽃을 피웁니다. 4348.8.22.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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